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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6>
다산 정약용<6>
  • 의사신문
  • 승인 2010.05.0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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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잎이 눈처럼 내리던 주말에 가족들과 야외 나들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남양주에 있는 다산 정약용 생가에 들렸다.

평소 한 번은 가보려 했으나 기회가 없었는데 오는 길가에 서있는 표지판을 보고 최근에 읽고 있는 다산의 글들이 떠올라 생가 쪽으로 차를 돌렸다. 주변에 실학박물관이 있어 아이들과 같이 구경하기에도 좋았다.

생가주위를 걸으며 내가 존경하는 다산 정약용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위대한 천재였으나 자신의 능력을 펼칠 기회가 없었고, 귀양지에서 힘든 시간들을 보내면서도 훌륭한 글들을 남겼다. 조선 사회의 다양한 방면에 대한 많은 글들을 남겼는데 의학에 관한 글들도 있어 내게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글들 중 질병의 진단방법인 진맥에 대해 논한 글을 짧게 요약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맥은 혈기의 쇠약하고 왕성함과 병세의 허와 실을 살필 수 있는 것인데 이는 망령된 말이다. 〈중략〉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어찌 반드시 오장과 육부로 하여금 그 모습을 손목 위에 환희 벌여놓게 하여 이를 진맥하도록 하였겠는가. 맥에 대해서는 그 맥경을 저술한 사람부터 벌써 자기가 저술한 맥경을 믿지 않았고, 그 후에 무릇 의술의 이치를 약간 통한 사람도 반드시 맥경을 믿지 않았다.

〈중략〉 맥이 오장에서 명령을 받아 팔다리와 몸에 통하는 것은 마치 물이 여러 산에서 발원하여 하류에 도착하는 것과 같다. 무릇 한강의 근원이 한 가닥은 속리산에서 나오고 한 가닥은 인제에서 나오고 한 가닥은 금강산에서 나와 용진에 이르러 합쳐지는데 땅을 맡은 사람이 말하기를 “양화도는 속리산에 속하고 용산포는 오대산에 속하고 두무포는 인제와 금강산에 속한다” 하여 이에 양화도에서 물이 용솟음치면 “이는 속리산에서 산이 무너져 사태가 날 이변이 있다” 하고 용산포의 물이 혼탁해지면 “이는 오대산에서 물이 범람할 재앙이 있다” 하며 두모포에서 물결이 잔잔하면 “이는 인제와 금강산에서 비 오고 볕 나는 것이 꼭 알맞은 때문이다” 한다면 그 기후를 점치는 법이 과연 정밀하여 틀림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맥을 가지고 오장육부를 진찰할 수 없는 것이 그 이치가 바로 이와 같은데도, 사람들은 오히려 깊고 어두운 가운데 마음을 붙여, 그 이치 밖에 또 이치가 있는가 하고 의심하니, 또한 미혹된 것이 아니겠는가. 촌, 관, 척이 한 길이 아니라면 그만이겠지만 그것이 한 길인데다가 한계만 나눈 것이라면, 그 이른바 오장육부가 각기 따로 부위가 있다는 것을 나는 선뜻 믿지 못하겠다.'

평소 환자를 진료할 때 환자가 한의학적 진단을 제시하면 나는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도 고민스럽다. 무시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존중하기도 힘든 것이 한의학을 대하는 의사의 입장일 것이다.

정약용의 글을 읽으며 나도 그처럼 좀 더 논리적으로 확고한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단지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두루뭉술하게 정확하지 않은 모호한 얘기를 환자에게 했던 내 모습을 반성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옛 성현들도 했던 고민이었다면 의사인 나 또한 깊은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다.

조재범<성애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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