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 탈북 병사의 총상과 의사의 길
귀순 탈북 병사의 총상과 의사의 길
  • 의사신문
  • 승인 2018.01.1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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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인 호한국의사수필가협회장대한의사협회 고문

삶과 죽음의 경계는 넓지 않다. 생사의 갈림길은 30분 정도이다. 스산한 늦가을 11월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총성이 요란하며 북한 병사 O씨가 목숨 건 탈출을 시도했고 그 와중에 5발의 총상을 입었다. 두 발은 복부를 관통했다. 극적으로 구출된 병사는 미군 헬기로 응급 외상센터로 옮겨졌고 과다 출혈 쇼크 상태의 환자는 장시간에 걸친 수술로 살아났다.

“병사의 몸에는 대한민국 국민이 자기 팔을 찔러가며 헌혈한 피 12000cc가 흐르고 있습니다” 엄청난 양의 수혈을 해가며 죽어가는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집도의는 생명 구출 경과를 한 마디로 압축했다. 사람이나 동물은 심장과 호흡이 유기적으로 작동하여야 연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호흡과 심장 운동을 멈추게 할 수 없을 뿐 더러 멈춘 것을 스스로 가동시킬 수도 없다. 누군가가 그 운동을 가동시켜 주어야 살 수 있다. 골든 타임은 이 경계를 넘지 않으려 분초를 다투어 의사의 영역으로 넘기는 시간이다. 의사는 인간이 위기를 극복하는 맥을 찾고 생명력을 부활시킬 기술을 배우고 익혔다. 탈북과 생존은 드라마처럼 펼쳐졌고 이 일련의 응급 처치와 수술로 생명을 건진 병사 때문에 지금 권역 외상 외과의사 이국종 신드롬이 생겨 야단이다. 그는 2011년 소말리아 해적선 피랍 `아덴만의 여명작전' 당시 다발의 총상으로 죽을 뻔한 석해균 선장의 생명을 대수술로 살려낸 바로 그 의사이다.

그는 북한병사의 복부 총상으로 손상된 소장으로부터 장내에 수 십 마리의 회충과 옥수수가 드러났다는 수술 후 브리핑으로 큰 곤욕을 치루었다. 한반도의 같은 민족이 갈라져 살아 온 수 십 년 동안, 실제 30센티 이상의 기생충이 수술장에서 육안으로 생동하는 것을 목격하였다는 진술은, 육 칠십 연령대는 향수를 느낄 일이었지만,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20년 넘게 외과 수술을 해 왔지만 이런 기생충은 볼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최대한 제거하는데 까지 제거 했습니다” 동족이지만 북한에 거주하는 주민의 실상을 백 마디 말보다 한 장면으로 리얼하게 보여 준 셈이다. 이 인터뷰 후에 현직 한 국회의원은 환자의 인격 모독이고 환자 정보 유출로 의료법 19조 위반이라며 공개 비난하게 이르렀다. 생명을 담보하며 수술로 살려낸 의사에게 환자의 인격 테러라고 폄하한 그 국회의원은 어떤 의도 였을까.

북한 병사를 포함한 북측 인민들의 영양실태와 치부를 숨겨주고 옹호해 주려 한 것일까. 비난이 쏟아지자 뒤늦게 사과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그래도 북측 인민들 중에서 가장 양질의 식사를 하고 있다는 공동경비구역(JSA) 병사의 몸 속에 기생하는 회충들은 적어도 인격으로 포장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진료팀은 병사가 회복 순간 벽면에 붙은 태극기를 눈에 띄게 해 심적 안정을 느끼게 했다고 한다. “아주대 선생님들이 치료를 잘 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싸늘한 북핵의 소용돌이로 불안한 민심 속에 인간적인 감사표시와 순수함을 내비친 자필 감사 메모는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그는 또 “국민들의 피로 살아났으니까 앞으로 헌혈도 많이 하고 열심히 일해 세금도 잘 내겠다” 라고 말했다. 그 어디에도 인격적 모욕감을 느낀 감정의 변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

깊은 밤 중증 외상 센터에 으스러진 뼈와 터진 살점이 피투성이로 이송되어 온 생명체, 수술실의 사투로 생명의 줄을 잇는 긴박함은 또다른 의료 현장이다. `왜' 가 필요 없고 `어떻게' 가 중요하지 않다. 죽음과 삶의 틈새에 보이는 가느다란 가능성을 찾아 신속한 몸놀림으로 그 사선(死線)의 경계를 넘지 말아야 한다. 잘 훈련된 의사의 판단과 그를 따르는 보조의료인만 필요할 뿐, 시술행위의 당위성과 경제성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순간 그들은 신의 작업을 대신 하고 있을 뿐이다. 수술장의 무영등은 세심한 그들의 손놀림에서 생명의 변곡점을 보고 있을 것이다. 비록 꼬여 있기는 하지만 삶의 길을 찾아가는 숙련된 동작은 결코 험난하지 않았다. 다만 그 작업이 밤과 밤사이에 일어나 수면부족으로 집중력을 흐리게 할 뿐.

“한 밤의 헬리콥터(닥터헬기) 소음에 잠을 이룰 수 없어요. 외상응급센터를 외곽으로 이전해 주세요” 도심의 병원 인근 주민의 민원이 접수되었다. 안락한 잠은 언제 였던가. 저녁이 있는 삶은 또 언제 였던가. 아늑한 분위기에 젖은 행복감은 감성의 사치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는 골든 타임은 항상 한 밤에 열리고 그 시간의 단축은 대기하는 응급처치팀에게 얼마나 빠르게 넘기느냐에 걸려 있다. 전속 헬기가 없어 소방 청 헬기에 부탁하는데 야간 비행의 조종사 마저도 기피하려 한다. 세계 경제 부국 10위 국민이 타인의 생사나 극한 상황을 동정하기에는 이기심이 녹녹하지 않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감당하기에는 그 수준이 아직 이르다는 뜻 인가.
“지난달, 밤새 응급 수술한 환자들의 처치 중 상당 치료비가 삭감되었습니다. 누적 삭감액이 일억이 넘었고, 3년전 아덴만 석 선장 수술 치료비 3억은 아직 미수금으로 남아 있습니다” 야간 수술 후 옷도 갈아입기 전에 호출된 병원장실에서 원무행정가가 통보서를 보여준다. 원장은 답답한 듯 쳐다볼 뿐 말이 없다. 모든 의료행위를 심사 평가원에서는 규정에 의해 진료의 타당성 여부를 서류로 점검하고 있다. 불필요한 검사나 처치 처방투약은 삭감을 당한다. 이의 있으면 재심을 요청하라고 통보한다. 의사와 심사 평가자 간의 불편한 관계는 제도와 규정만이 존재할 뿐 생명, 삶과 죽음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은 없는 셈이다. 갈등이 있다고 해도 피해자는 의사들임을 알고 있기에 그 규정과 제도에 맞도록 의료를 행하는 것이 순리이고 또 편하게 느끼므로 굳이 당위성을 설득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없다. 그 숱한 세월 속에 익혀 온 경험과 분석 진단 처치의 평가는 한 줄로 명시되므로 나도 이미 길들여져 있어 속 상하지 않으려 애쓴다.

이 시대에 이런 의료제도와 환경에서 밤 새며 수술하는 이국종 의사의 줄기찬 의료행위를 보면 의사의 눈에도 그는 영웅처럼 보인다. 의사의 눈과 국민의 잣대는 다르지만 죽음 직전의 환자 생명을 제도에 구애 받지 않고 그 동안 습득한 의술로 의료의 본질에 접근한 그의 의로움은 이 시대의 나약한 현실 타협주의 의사들에게 작은 등불이 되고 있다.

사람 사는 사회에 타인의 삶을 지켜주는 전문 직종이 의사이고 국가는 면허로 그 자격을 부여하고 나 역시 그 길을 가고 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학문이기에 그 길은 길고도 험하고 어렵다. 기원 전 의성(醫聖) 히포크라테스는 그 길에 대한 지침으로 선서(宣誓 Oath)를 하게하여 전문의라고 하여 기술자는 아니라고 의사의 윤리적 순수함을 덕목으로 세워 놓았다.

의사의 길로 들어 선지 50년, 제도권에 묻혀 느림의 여유와 관성에 젖어 있는 나는 감동하고 있다. 요즈음 이국종 외과의사의 행보와 언행에 그 순수성을 따지지 말자. 그게 의사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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