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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토르의 나이를 보게나.”
“네스토르의 나이를 보게나.”
  • 의사신문
  • 승인 2018.01.0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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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16〉
유 형 준 한림의대 내분비내과 교수 시인·수필가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친구의 행복과 장수를 축원할 때에 이렇게 인사말을 했었다.

“네스토르의 나이를 보게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장수한 인물로 유명한 네스토르(Nestor)는 에게해에 사는 바다의 신 네레우스와 클로리스 사이에 태어난 12명의 아들 중 한 명이다. 헤라클레스의 습격을 받아 네레우스와 11명의 아들이 살해당하고 마침 다른 곳에 가 있던 네스트로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필로스의 왕이 되어 7명의 아들과 2명의 딸과 함께 상당히 오래 살았다고 한다. 알려지는 바에 의하면 일반인보다 3배 정도 살았다고 하니 만약 그가 현재 우리나라에 산다면 평균수명이 250세 정도로 어림된다.

네스토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름난 모험들을 차례로 겪었다. 예를 들면 이아손의 황금 양털 원정대의 일원으로 참가하였고, 칼리돈에서 멧돼지 사냥에 참여하였고, 라피타이 사람들과 반인반마(半人半馬)의 켄타로우스 사이에 벌어진 결혼식 피로연 싸움의 현장에도 있었고, 트로이 전쟁에도 90척의 배를 이끌고 참전하여 뛰어난 분별력으로 좋은 전과를 냈다고 한다. 아카이아 동맹군의 일원으로 트로이 전쟁에 참전할 당시 그의 나이가 110세였지만 대단히 용감하고 언변이 뛰어났다고 한다. 호머가 트로이 전쟁을 읊은 서사시 `일리아드'에 의하면 그는 뛰어난 말솜씨로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의 여종인 브리세이스를 뺏으려 하면서 불화가 일자 원만히 중재하여 지혜롭고 현명하고 유능한 갈등 중재자로도 널리 알려졌다. 세월이 지나며 전쟁에 직접 참전할 수는 없었지만 그때에도 그는 전투마차를 타고 필로스 군대를 통솔하였다. 예를 들면 부족과 씨족으로 군대를 배치하거나 전투에서 병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나이의 한계를 넘어선 그의 탁월한 기마 실력에 감탄한 호머는 그에게 일리아드에 나오는 도시의 이름을 따서 `게레니아(Gerenia)의 기마병'이란 별칭을 붙여주었다.

네스토르는 특히 유능한 조언 상담자로 알려져 있다.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자신의 아버지 오디세우스의 운명을 물어보러 올 정도로 그의 지혜는 뛰어났었다. 호머의 `오디세이'에서 텔레마코스가 네스토르를 찾아갈 것을 권유받는 대목과 네스토르를 만나는 장면을 옮긴다.

“텔레마코스, 자네는 전혀 소심할 필요가 없네. 자네가 배를 타고/바다를 건너온 것은 대지가 자네 부친을 어디에 감췄는지/그분이 어떤 운명을 맞았는지, 그분에 관해 알아보기 위함이었네./자, 자네는 이제 곧장 말을 길들이는 네스토르에게 가게나./그가 가슴속에 어떤 계책을 감추고 있는지 알아보는 거야./사실대로 말해달라고 자네가 직접 간청하게나. 그러면 그가/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네. 그는 매우 슬기로운 사람이라네.”

“네레우스의 아들 네스토르여, 아카이오이족의 위대한 영광이여!/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그대가 물으시니 내가 말씀드리겠습니다./우리는 네이온 산 밑에 있는 이타카에서 왔습니다./그리고 내가 말씀드리는 용무는 사적인 것이고 공적인 것이 아닙니다./나는 혹시 들을 수 있을까 해서, 나의 아버지 참을성 많은/고귀한 오디세우스의 자자한 소문을 좇아 이리로 왔습니다.”

오디세우스가 누구인가. 이타카의 왕이며, 목마를 이용해 트로이를 점령하였고, 뛰어난 지혜와 언변, 그리고 용기와 인내까지 갖춘 그의 모험을 주제로 쓴 서사시가 바로 `오디세이'다. 네스트로의 판단 능력과 평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호머는 그를 지혜롭고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과 완벽한 성품의 소유자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그의 판단력은 늙음과 상관없이 출중하여 평론가들은 세계적 대문호 윌리엄 세익스피어를 `판단은 네스토르 같고, 천재성은 소크라테스 같고, 예술은 베르길리우스 같은 사람'이라고 평한다.

그러나 네스토르가 모든 면에서 호평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일리아드'에 따르면 그는 많은 나이와 풍부한 경험으로 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지만 때로 허풍스러운 자기 자랑 때문에 칭송이 깎이곤 했다. 특히 과거에 자신의 영웅적 행동을 장광설로 늘어놓았다. 네스토르의 조언도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진 못했다.

이 불일치에 대해 `일리아드'에서 호머는 `결과는 궁극적으로 임의의 변덕스럽고 변덕스러운 신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라며 조언-결과의 불일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네스토르를 이렇게 칭하고 있다. `선명한 목소리의 웅변가', `목소리가 꿀보다 더 달콤한 훌륭한 상담자.' 즉, 네스토르는 본질적으로 훌륭한 상담자이며, 그의 충고의 결과는 그와 관련이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오늘날 상담의 결과만으로 상담자의 능력을 따지는 저울질과는 퍽 다르다.

지금도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에는 네스토르가 필로스에서 사용했던 한 쌍의 황금 비둘기 장식이 붙은 네 귀가 달린 대형 금박 포도주잔이 보관되어 있다. 자, 넉넉한 잔에 포도주를 따르자. 오래 장수하면서 지혜롭고 건강하게 삶을 영위한 네스토르의 이름을 빌어 건강장수를 위해 건배 제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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