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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핵의학자 김의신 교수
세계적인 핵의학자 김의신 교수
  • 의사신문
  • 승인 2017.12.2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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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77〉 

정 준 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

 

나보다 11년 대학 선배인 김의신 교수님은 미국 엠디앤더슨 암센터의 종신교수로 세계 최고의 핵의학자이자 암 전문가이다.

우리 대학 융합과학기술대학원 World Class University Project로 매년 봄, 가을에 각각 2∼3개월을 초빙교수로 오신다. 이번에도 3개월 동안 대학원생과 수련의 교육을 담당하고 어제 미국으로 떠나셨다. 선생님에게 물심 양면으로 도움을 받고 있는 서울대학교병원 핵의학과를 대표하여 감사의 글을 쓴다.

선생님이 세계를 선도하는 학자가 된 과정은 험난하였다. 전라북도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영특하여 군산중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였다. 그를 눈 여겨 본 교장선생님은 동급생인 아들 공부를 위해 자기 집으로 입주시켰다. 그 후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계속 입주 가정교사가 되어 학업과 병행하였다. 이러한 특이한 경력을 통해 나중에 발휘할 그 만의 장점을 만들어 갔다. 어느 음식도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으며, 하루에 다섯 시간의 숙면이면 충분하고, 겸손과 인내를 습득한 것이다. 그가 한 말이다. “고생도 인생의 좋은 자산이 된다.”

의과대학을 졸업 후, 잠시 예방의학을 전공한 그는 월남에 군의관으로 참전했다가 미국으로 건너 간다.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내과와 방사선과를 수련 받고 다시 핵의학을 전공한 후 미네소타 대학을 거쳐 마침내 엠디앤더슨 암센터에 스카우트되어 30년 넘게 근무하였다. 학문적으로 1970년 중반에 이미 방사성 표지 항체를 이용한 암의 영상진단 및 치료에 대한 첨단 연구를 수행했다. 또, PET과 MRI 초창기부터 암 영상분석에 대한 업적을 발표했다. 이 결과로 350편의 논문과 15번의 책자를 집필하였고 지금도 수많은 논문에서 그의 업적을 인용하고 있다.

학자로서 김 교수님의 장점은 새로운 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열정이다. 핵의학을 전공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참석하는 모든 학회나 집담회에서 앞줄에 앉아 중요한 내용을 노트 필기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 모임이 끝나면 반드시 컴퓨터에 입력하고 정리한다. 공부가 즐겁고 습관화된 진정한 학자의 모습이다. 또 다른 특출한 능력은 3∼4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술 논문을 심사하면서 한편으로는 한국 TV 연속극을 보고 또 한편으로는 악력기로 손 운동을 한다. 한정된 시간에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습득한 좋은 버릇이다.

내가 보기에 김 교수님은 좋은 일, 착한 일하는 것을 습관화한 사람이다. 병원에서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핵의학, 방사선 진료를 수행한다. 한국에서 찾아와 도와준 암환자도 천 명이나 된단다. 때로는 집에서 같이 지내면서 항암제 치료를 도와 주기도 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학문적 명성이 높으니 아시아 국가에서 연수생이 많이 오고 한국에서만 750명의 젊은 교수들이 공부하고 갔다. 심지어는 이 곳 경찰들은 한국인이 곤경에 처해 있으면 우선 김의신 교수에게 협조를 의뢰한다고. 현재 우리나라 핵의학이 세계 정상급이 되는 데 그의 도움이 컸다. 내 개인적으로도 미국 NIH에서 연구생활을 하도록 연결하여 주었다.

`미국 최고의 의사'로 뽑힌 교수님은 국내에서 암 환자와 가족을 위한 강의를 자주 한다. 암 환자에 대한 조언은 명확하고 독특하다. 우선 암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갖추고, 의사의 진료를 믿고 따르라는 것이다. 핵심은 암과 삶에 대해 겸손해지라는 것. 수많은 여러 유형의 환자를 보면서 얻은 지혜이다. 신앙도 큰 도움이 된다. 암환자들에게 의식의 전환을 돕기 위해 〈암에 지는 사람, 암에 이기는 사람〉 책도 출간하였다. 음식에 대한 그의 지견, 특히 삼겹살을 피하고 소화가 잘되는 개고기를 선호하는 발언으로 전세계적으로 곤혹을 치렀다.

미국과 유럽의 동물 애호가들한테 천 여 통의 항의 이메일을 받았다고 하며 천진스럽게 웃는다.

김 교수님이 칠순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뉴욕에 살고 있는 따님 부부가 10만불을 축하금으로 가지고 왔다. 그는 마땅히 쓸 용도가 없으니 서울대학교병원 핵의학과에 기부하라고 권했다. 그 후 그가 서울대에서 받은 수당과 다른 친지들의 기부가 더해져 이제 35만불이 되었다. 우리 과에서는 이 자금으로 매년 세계적인 핵의학자 한 명을 초청하여 강의를 듣고 협력을 다지고 있다. 이외에도 International Young Fellowship 등 선생님이 관여하는 장학사업이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선생님이 밝히지 않으니 다른 쪽 손이 하는 선행을 짐작만 할 뿐이다.

정 준 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

 

그는 여가생활도 열심히 한다. 우리 가곡을 좋아해 파티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래한다. 또 55세 나이에 골프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는데 여기에서도 긍정적인 태도가 나타났다. 공을 잘 못 치면 화를 내는 다른 사람과 달리 그는 이를 극복하는 것이 도전과 성취감을 준다고 오히려 재미있어 한다. 그 결과인지 모르나 다른 골퍼들은 일생에 한번 하기도 힘들다는 홀인원을 무려 다섯 번이나 하였다. 특유의 호기심으로 현재 그림도 그리고 색스폰 연주도 배우고 있다.

김 교수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과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평온하고 겸손한 표정과 소박한 차림새가 언뜻 보면 시골 중학교 선생님 같다. 이런 모습이 젊은 의학도나 환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옆에 있으면서 그의 인품과 생활태도에 젖어 들어 어느덧 우리도 선행(善行)에 대한 낙천적인 노력가가 된다.

김의신 교수는 “인생에서 성공이란 크고 작은 일에 관계없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이 나비 바람이 되어 또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게 만들어, 점점 이 세상이 밝아지고 따뜻해 지기를 바라는 뜻일 것이다.

선생님, 연말연시를 뉴욕에서 가족들과 즐겁고 보람 있게 보내세요. 내년 봄에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면서 두서 없는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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