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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학(Geriatrics), 그 이름의 탄생
노인의학(Geriatrics), 그 이름의 탄생
  • 의사신문
  • 승인 2017.12.1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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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14〉 
유 형 준 한림의대 내분비내과 교수 시인·수필가

1909년 이그나츠 레오 내셔(Ignatz Leo Nascher, 1863∼1944)는 다음과 같은 설명과 함께 〈The Medical Record of New York〉에 실린 논문에서 `노인의학(geriatrics)'이라는 용어를 제창한다.

“소아를 다루는 의학 분야를 `소아과학(pediatrics)'이라 부르듯이 늙음과 그에 따른 질병들이 청장년기의 그것들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노인을 다루는 의학 분야를 따로 정하여 가리키는 용어인 `노인의학(geriatrics)'을 사전에 새롭게 추가하고자 한다. `Geriatrics'는 `노인'을 뜻하는 `geras'와 `의사, 의료와 관련'을 의미하는 `iatrikos' 두 단어를 합성하여 조어한다.”

용어에 관하여 글을 보탠다. `Geras'는 밤의 신격화인 눅스의 아들로서 노령의 심벌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geras'의 단어는 `상(賞)'이란 의미와 동시에 `강탈'의 뜻도 담고 있다. 혹시 늙음을 바라보는 은총과 쇠퇴의 두 가지 시각을 깨우치려는 의도는 아닐까. 덧붙여, 의약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의 딸인 이아소는 의료를 담당했는데 바로 이아소(iaso)의 이름에서 파생한 단어가 iatrikos다.

이름을 짓는 일은 추상의 구체화다. 구체화는 여럿이 동일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하여 진전의 방향과 목표를 명확하게 하는 힘이 있다. 호칭의 힘이다. 내셔의 조어는 드디어 현대적 의미의 노인의학이 싹트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용어를 제시함과 함께 내셔는 두 가지 의견을 피력했다. 하나는 `노년기는 삶의 다른 시기다. 마치 아동기가 생리적으로 다른 시기인 것처럼', 또 하나는 `노인의학은 의학의 고유한 특별전문 분야'라는 견해였다. 그는 이러한 견해를 증명하고 실천하기 위해 열심히 연구하고 실천하였다. 그러한 연구와 열성적 실천의 결과물들로 내셔는 1914년에 단행본 〈노인의학, 노인의 질병과 치료, 생리학적 노년, 가정과 시설 요양, 그리고 의료-법 관계〉를 발간하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노인병에 관한 기록들은 드물지 않다. 그 중에서 세계 최초의 노인병 관련 본격적 저작물은 1489년 로마에서 발간된 가브리엘 제브리가 쓴 〈Gerontocomia〉다[필자 주: comia의 뜻은 `보호소'].

제브리는 첫 장에서 노년기를 둘로 구분하여 30∼60세는 `senectus prima(잠재 노인)'이며 목성의 영향 아래 있고 그 이후는 `senectus decrepita (노인)'으로 토성의 영향을 받는다고 적고 있다. 이어서, 조로, 주름살, 대머리와 백발의 원인, 노인이 되는 징후 등을 보태고 있다. 그는 인간의 수명은 별자리와 개인의 체질에 의해 결정되며, “수명은 자연적 한계를 넘어 연장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흥미롭다.

바로 이러한 노인병에 대한 개념과 실제를 재정립하는 역사적 실마리인 `노인의학 geriatrics'조어를 해낸 내셔는 1863년 10월 11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나 1882년 약학을 수료 후 1885년 뉴욕대학에서 의사가 되었다. 그의 노인의학에 관한 관심과 치료법의 개발 노력은 대부분이 출생지인 오스트리아 방문을 통하여 북돋아지고 커진 것이다. 당시에 오스트리아에선 노인 요양 등이 활발하였다. 그러나 그의 노인의학에 대한 열정적 헌신의 씨앗은 훨씬 오래전 학생시절 받았던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회진 중에 한 급성 질환 노인의 병상 앞에서 환자를 휘리릭 보고 거의 마지막 상태라고 진단한 교수가 말했다.

“늙어서 그래.”
내셔가 질문하였다.
“뭘 해야 합니까?”
교수가 답했다.
“아무것도 없네.”

내셔의 노인의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그가 윌리엄 오슬러와 동시대 사람이라는 점에서 더욱 빛난다.
당시에 볼티모어 존스홉킨스 내과 주임교수로 당대의 가장 유명한 의사였던 오슬러는 잘 알려진 노인차별주의자였다. 당시 의학계를 좌지우지하던 오슬러의 노인차별 분위기 아래 놓여있던 형국에서 노인의학을 그렇게 열성적으로 싹 틔우고 뜨겁게 키운 내셔의 의지와 용기는 대단했다.

현재 세계 노인의학을 주도하는 노인병의학자 중의 한 명인 몰리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에서 `노인의학(geriatrics)'이란 용어가 생겨나는 동안 영국에선 노인의학의 기본 원칙이 창안되고 있었다. 한 가지 사실로, 웨스트 미들섹스 카운티 병원에서 외과 의사로 근무하였던 와렌(1897∼1960)은 영국 노인 의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특히 총합평가, 조기 재활, 여러 전문분야 협력 접근 등의 개념 정립과 실제 적용에 기여하였다. 영국에서 제시된 방법들을 과학적으로 확인하고 더 발전시킨 것은 미국 연구자들의 업적이었다. 그래서 내셔를 `노인의학의 아버지', 영국의 와렌을 `노인의학의 어머니'라 부른다.

아버지의 이름도 어머니의 이름도 `노인의학(geriatrics)'이란 용어의 탄생에 그 시발을 두고 있다. 이름 지어 부르는 호칭의 힘이다. 내셔가 이름을 불러 세운 호칭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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