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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4번 C단조 작품번호 43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4번 C단조 작품번호 43
  • 의사신문
  • 승인 2017.12.1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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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421〉 

 

■구소련 공산당의 압력에 눌려 22년 만에 빛을 본 진취적인 걸작
창작에 있어서 개성의 반대는 보편성이 아니라 익명성이다. 구소련 시절이 가차 없는 `개성 숭배'반대 캠페인이 당시 생산된 음악의 얼굴이 없어진 주요 배경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당시 러시아 작곡가의 `개성'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쇼스타코비치의 `개성'은 교향곡 제4번에서 확실히 드러나 있고 교향곡 제5번에 가서 비로소 의문의 여지없이 확실히 드러난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폐쇄공포증과 비슷한 상황을 유도한다. 실제 구소련의 정치적 현실도 인민들에게 폐쇄공포를 불러일으킬 만한 상황을 제공하고 현실을 구축했으니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일지 모른다. 제한된 진보성, 제한된 불협화음, 숨어있는 장치들이 얽혀 있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마치 암호문과도 같다. 한 사람의 비밀을 감추는 장소로는 그 틀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쇼스타코비치는 거기에 많은 것들을 감추는 동시에 드러낸다. 비명소리, 신음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학살을 의미하는 총격, 그리고 집요할 정도로 반복되는 군홧발 소리. 이 군홧발 소리는 쇼스타코비치의 개인 서명 모티브인 `DSCH' 못지않게 곳곳에서 집요할 정도의 반복으로 듣는 이를 세뇌시키기 직전까지 가며, 쇼스타코비치의 다른 동기들도 그 군홧발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집요한 반복으로 가득하다.

1월 28일 구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 서명이 생략된 사설이 `음악이 아닌 혼돈'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바로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었고 서명이 생략된 것은 공산당의 공식입장이라는 의미였다. 더구나 그 사설이 다름 아닌 스탈린의 직접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소문마저 돌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쇼스타코비치는 1935년부터 진행해왔던 교향곡 제4번의 작곡을 강행하여 이듬해 5월에 완성했다. 그로서는 6년 만에 야심차게 도전한 새 교향곡이었고 스스로 `작곡가의 신앙고백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을 정도로 각별한 애착과 자부심을 담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 스스로도 “나는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미 다져진 길을 가는 것이 더 쉽고 안전하겠지만, 그것은 우둔하고 지루하고 무익한 일이다.”라고 천명했듯 새 교향곡은 전위적이고 난해하며 위험한 작품이었다.

그는 12월 11일로 초연 날짜까지 잡아놓고 리허설도 했지만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단원들은 작품을 별로 내켜하지 않았고 공산당과 작곡가연맹도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결국 리허설 취소를 알리는 기사가 게재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그 후 이 교향곡의 초연은 오랫동안 미뤄졌다가 전쟁 중에 유실되는 수모를 겪으면서 결국 1961년에서야 키릴 콘드라신의 지휘로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해 초연되었다. 이처럼 기구한 사연 끝에 빛을 본 이 작품은 쇼스타코비치가 남긴 가장 진취적이고 괄목할 만한 걸작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작품은 거대한 오케스트라에 20개의 목관악기, 17명의 금관주자, 7명의 타악주자, 2대의 하프 등이 포함되어있고 연주시간도 한 시간이상으로 길다. 기존 교향곡의 체계와 형식을 재해석하여 독창적인 양식으로 일정한 주제의 논리적인 발전 대신, 다양한 성격과 특징을 가진 부가적인 요소들을 다량 도입하여 극도로 복잡하고 변화가 심한 극적 흐름을 빚어내고 있다.

△제1악장 Allegretto poco moderato 곡의 원동력은 멜로디이다. 여기서 멜로디는 그럴듯한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폭발한다. 그 폭발은 곡을 이끌고 나갈 동력인 동시에 동력이 사라지면 곡은 유성처럼 죽어갈 것이다. 폭발이 더 큰 폭발을 이끌어내고, 그 사이에서 발작적인 현악 악상이 나타난다. 얄궂게도 이 악상은 더 강하게 달리고 있다. 쇼스타코비치의 독창성은 경이적이다. 감정을 극한으로 몰고 가는 현악 푸가토와 마주하면 거대한 압력이 내면에 응어리로 남아 있다 예기치 못한 채 밖으로 폭발한 후 불균형적이고 짤막한 코다로 끝을 맺는다.

△제2악장 Moderato con moto 불안한 렌틀러 풍의 간주곡이다. 3개의 악장이 모두 불균형적이고 풍자적인 뉘앙스가 강하게 풍긴다. 코다는 계속 무엇인가 말을 하려 하지만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그만큼 그가 지탱할 수 있는 기반이 불안정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제3악장 Largo-Allegretto 음울한 장송행진곡이 길게 이어지다가 가차 없는 동기들의 전진이 이어지면서 계속 곡을 극한으로 몰고 가기 직전, 갑작스럽게 부드러운 춤곡이 그 전진을 잘라버린다. 악장은 이제 다채로운 콜라주로 채워진다. 한 가지 색상이 지배하던 곡에 온갖 음악이 끼어든다.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 팀파니의 강주를 앞세운 금관악기 코랄은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파괴를 위한 파괴를 반복한다. 이 코랄이 지나가고 나면 토막 난 사지가 잘려나간 후에도 잠시나마 꿈틀거리는 것처럼, 남은 부분들은 발작적으로 꿈틀대다가 곧 멈춘다. 마지막에 역설적으로 향긋한 첼레스타의 음향이 들려오며 의미심장한 끝맺음을 한다.

■들을 만한 음반
△키릴 콘트라신(지휘),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Melodiya, 1962) △마리스 얀손스(지휘), 바바리안 방송 심포니 오케스트라(EMI, 2004) △네메 예르비(지휘), 로열 스코티시 내셔널 오케스트라(Chandos, 1988) △막심 쇼스타코비치(지휘),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Supraphon, 1988) △정명훈(지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DG,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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