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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념수필 - 치매에 대해서
[특집] 기념수필 - 치매에 대해서
  • 의사신문
  • 승인 2017.12.0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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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아버지, 행복한 기억만 간직하세요”
백대현 서초 방배성모정형외과 원장

내가 즐겨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최근 소개된 사연이다.

“지난주에 엄마께 전화가 왔습니다. 혼자 지내고 계시는 할아버지께서 주방에서 넘어지셔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말을 맞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와 함께 할아버지를 뵙고 왔습니다. 다행히 요양병원 시설은 너무도 좋았습니다. 깔끔하고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에, 식사도 아주 맛있게 잘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할아버지가 계신 6인실 병실에 도착하고, 할아버지는 어떤 모습일까 하고 들어갔는데….

설에 뵙고 처음 뵙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실로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까치집 지은 머리칼에 수척해진 얼굴…. 틀니를 끼지 않아 발음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할아버지는 저희 엄마를 빼고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셨습니다. 침대 옆에 수북히 쌓인 새 기저귀들…. 저를 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여 엄마는 제 이름 석자를 종이에 써서 손자에요. 아버님하고 알려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나지막한 음성으로 제 이름 석자를 읽고 또 읽고 계셨습니다.

제 기억 속 할아버지는 방학 때마다 일하는 부모님을 대신해서 할머니 댁에서 지낼 때마다 저와 동생을 번갈아가며 목마도 태워주시고. 풀로 풀피리도 불어주시고, 풀로 우산도 만들어주시고, 겨울이면 비닐 포대로 멋진 눈썰매를 태워주시던….

정말 맥가이버 같은 분이었는데…. 한없이 아이 같은 모습의 할아버지를 눈앞에 마주하고는 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7살 우리 아들 또한 증조할아버지의 낯선 모습에 구석에 조용히 앉아만 있더군요….

할아버지의 모습에 가슴이 너무 먹먹해져서 오래 있을 수가 없어서 조용히 할아버지 손을 잡아드리고, 맛난 거 사드시라고 용돈을 조금 드리고 돌아왔습니다. 가슴 아프게도 잠깐씩 정신이 드시는지 나이가 들면 얼른 얼른 죽어야 되는데…. 죽지도 않고 낫지도 않고… 이렇게 있는구나. 미안하다라고 이야기를 하시는데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돌아오는 차에서 말 한마디 없던 우리 아들이 아빠, 증조할아버지가 아빠 기억하지 못해서 속상했지? 잠깐 까먹었을 거야. 다음에 가면 기억해 줄거야라고 저를 위로해주시더군요. 7살 아이의 찡한 위로에 눈물이 핑 돌더군요. 나도, 우리 부모님도, 언젠가는 저렇게 나이가 들어 소중한 기억들을 잃는 그런 때가 오겠지요. 아들과 두 손 꼭 잡고 훗날 좋은 기억만이 마지막까지 남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하고 왔네요. 할아버지…절 알아보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할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을 선물해 주셨으니까요. 사랑합니다”

2016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치매 환자는 68만6000명으로 노인 10명 중 1명꼴이라고 하며, 80∼84세 노인을 기준으로 하면 100명 기준으로 치매 유병률은 약 25명이라고 하며,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는 속도를 보면 치매 환자는 지금보다도 훨씬 늘어날 거라고 예상된다.

사실 나의 아버지도 치매를 앓고 계시다. 얼마 전의 일이다. 아버지 댁에서 하룻밤을 묵으려고 자고 있는데, 새벽 4시경 출입문 쪽에서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서 깼다. 나도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즉시 그쪽으로 뛰쳐나갔다. 아버지께서는 집 문 밖에서 당신의 부하들을 구해야 해서 빨리 가봐야 한다며 어머니와 실랑이를 하고 계셨다. 옷차림은 양복 차림으로 외출 복장으로 제대로 하고 계셨다. 내가 아버지 손과 몸을 붙잡고 못가시게 만류했지만 아버지께서 지금 꼭 가봐야 한다며 아들인 나를 뿌리치던 화가 대단히 나신 모습을 지금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는 고 2때인 18세 때 6·25 한국 전쟁이 나서 군에 입대하셔서 장교로 복무중 많은 부하를 잃으셨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고등학생이 웬 장교냐고 이해가 도무지 되지 않지만 그때는 정말 그랬다. 부하를 구하러 가야한다고 새벽에 나가시려고 하신 행동은 내가 생각컨대 아마도 전쟁의 후유증이실 것이다. 6·25 전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란 것이 나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그 이후로는 치매가 있으신 아버지께서 간밤에 외출하시지 못하게 문안에 잠금 장치를 해 놓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주 후에 어머니께서 잠금 장치를 깜빡 잊고 해놓지 않은 사이에 아버지께서는 문을 열고 집을 나가셔서 새벽에 실종되신 사건이 일어났다.

다행히 경찰에 신고해서 집으로 부터 두정거장 정도 떨어진 재래시장에서 혼자 슬리퍼를 신으신 채 서계신 아버지가 3시간 만에 발견되신 적도 있었다. 바로 얼마 전 아버지께서 우리 병원에 와서는 여기가 누구 병원이냐고 해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신적도 있다.

요즘 아버지께서는 평일 아침에는 아이들의 유치원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노인들이 다니는 유치원이라하여 소위 노치원에 다니고 계시다. 치매는 참 힘든 병이다. 집에 한분이라도 치매 환자 분이 계시다면 온 가족이 환자에게 매달려야 한다.

아버지 실종시 아버지 손목에 있었던 팔찌에는 집이나 가족 연락처가 아닌 치매와 관련된 기관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이는 실종된 노인들을 대상으로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나쁜 짓을 하는 일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예방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치매 환자들을 포함한 노인 복지 대한 제도가 옛날보다는 많이 나아진 듯은 하다. 그러나 지금보다는 훨씬 더 효과적이고, 체계적으로 나아져야한다. 우리 모두도 이 다음에 노인이 된다. 노인이 되었을 때 나는 치매가 없을 거라고 어찌 예상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차치하더라도 휴머니즘을 황폐하게 만드는, 내 아버지에게도 67년 전에 있었던 전쟁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듯 비극만이 남는 어떠한 형태의 전쟁이라도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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