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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비히 반 베토벤 현악4중주 제16번 Op.135
루드비히 반 베토벤 현악4중주 제16번 Op.135
  • 의사신문
  • 승인 2010.04.2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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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념무상의 평온함으로 채운 마지막 작곡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베토벤은 그의 마지막 현악4중주인 제16번의 마지막 악장 첫 페이지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그는 이 문장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어렵게 이루어진 결심'이라는 설명도 덧붙여 놓았다. 이 표현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베토벤은 이 두 문장에 각각 3개의 음표를 붙였고, 그것은 이 마지막 악장전체의 중요한 동기가 된다.

그는 마지막 대곡인 이 현악4중주 제16번 이후로 더 이상 작곡을 할 수 없었다. 이 곡은 1826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 6개월 전에 완성되었다. 스스로 `휴식과 평화를 위한 달콤한 노래'라고 칭하였던 이 곡을 그는 인생에 대한 끊임없는 갈등이 해결된 평온한 상태에서 작곡을 했다. 그야말로 굴곡 많은 삶을 살아온 그가 모든 것을 해탈한 무념무상의 평온함으로 가득 채운 그의 마지막 곡이다.

후기 현악 4중주곡이 작곡되던 만년의 시기, 인간 베토벤은 처절하리만치 비탄에 잠기게 하는 육체적 결손만이 쌓여갔지만, 그의 음악은 불굴의 의지에 의해 승화되고 있었다. 그의 귓병은 더욱 악화되어 이 세상의 소리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게 되었고, 내면의 고독 속에서 오히려 신의 소리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저 깊은 어둠으로 영원히 가라앉아 버릴 듯한 소리의 심연으로부터 한 음씩 떠오르는 음의 상념을 통해 `삶의 고백'을 찾아가고 있다.

베토벤은 평안하고 안락한 삶에 머무르기보다는 세상을 짊어진 아틀라스처럼 역경에 기꺼이 맞섰고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을 택했다. 그는 깊은 고뇌와 삶과의 투쟁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은 언제나 헤어나기 힘든 고통을 그에게 안겨주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그 삶의 산물인 모든 고난과 역경이 사그러진 후에 찾아온 고요함은 호수처럼 맑고 청명한 음색으로 태어나게 된다. 마지막 4중주곡의 마지막 악장은 최후의 최후라는 낭만적 의미와 함께 베토벤이 악장의 첫머리에 써놓은 해석하기 어려운 힘든 메모 때문에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제1악장 Allegretto 간결함 속에 치밀하고 유기적인 짜임새로 이어지는 구성력이 돋보인다.

제2악장 Vivace 바이올린이 위 아래로 3옥타브를 옮겨 다니며 해학감과 발랄한 약동감이 신선한 바람으로 귓가에 멤돌게 하는 놀라울 정도의 단순한 구성이다. 기지에 넘치는 악상전개로 생의 정리를 뜻하려는 듯 베토벤의 엄격한 상징이 변해 초탈한 자세가 느껴진다.

제3악장 Lento assai cantante e tranquillo 유현한 리듬이 담담하게 이야기하듯 전개되는 매우 인상적이고 관조적인 그의 정신이 표출된다.

제4악장 `어렵게 이루어진 결심'이라는 템포지시보다 문학적인 표제는 이 악장의 수수께끼를 해명하지 않은 채 작곡가의 인생에 대한 신비로 남게 만든다. 12마디의 의문의 두 문장을 엄숙하게 연주하면서 힘차고 빠르게 마지막을 향해 전개해가는 찬연히 빛나는 악장이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주인공 토마스의 뇌리에는 항상 이 마지막 악장에 적힌 두 문장이 맴돌고 있었다. 토마스의 가벼운 사랑을 포장하는 세속적인 변명이 될 수도 있고, 살아가면서 우리가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떠오르는 중요한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가벼운 것에서 무거운 것으로 무거운 것에서 가벼운 것으로 전이되는 삶의 단면을 베토벤은 그의 마지막 곡 마지막 악장의 그 질문을 통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마치 베토벤의 삶이 실루엣처럼 우리의 삶과 겹쳐져 이 노래를 듣고 있는 우리의 삶을 회상하게 한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 음악을 듣고 있는 우리 안에 있는 듯하다.

■들을만한 음반 : 부다페스트 현악4중주단(CBS, 1960); 바릴리 현악4중주(Westermister 1956); 부쉬 현악4중주단(EMI, 1936); 알반베르크 현악4중주단(EMI, 1981); 아마데우스 현악4중주단(DG, 1968); 스메타나 현악4중주단(Supraphone, 1985)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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