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터와 수평대향엔진
박스터와 수평대향엔진
  • 의사신문
  • 승인 2010.04.2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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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밸런스 우수…경량화ㆍ응답성 뛰어나

대치동 은마 아파트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재미있는 차들을 자주 보게 된다. 아주 오래된 차들부터 최근의 차들까지, 낮은 배기량의 신기한 차들부터 수퍼카 수준의 차들까지 정말이지 다양하다.

얼마 전에는 구형 박스터를 만났다. 운전자는 뜻밖에도 알던 친구였다. 오랜만에 보았지만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얼마전까지 박스터는 관심권 밖에 있던 차였다. 특별히 강력하지도 않고 로드스터는 원래 좋아하지 않았다. 드물지만 사고가 나면 정말 피곤한 물건이다. 박스터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프라이버시라고는 아예 없다. 너무 잘 보여서 운전자와 탑승자를 도로에 광고하고 다닐 정도의 전시효과가 있다.

그날 만난 박스터는 호로를 걷은 상태였으니 차에 탄 사람은 그냥 보인다. 그래서 선글라스를 꼈어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껌을 씹으며 여유있게 앞을 바라보고 있다가 역시 옆에 서서 창을 내린 나를 알아보았다. 인사는 서로 “하나도 안변했구만” 정도였다. 하지만 어쩐지 오픈카는 그 친구에게 정말 잘 어울린다.

그리고 원래의 달리기 본능은 신호가 바뀌자 나타나고 말았다. 바로 경쟁모드로 변한 달리기에 양보는 없었다. 결과는 박스터의 날렵한 칼질을 당해내지는 못했다. 실력도 좋지만 박스터 엔진의 레스펀스는 아주 좋아 보인다. 이것은 수치로 나타내기 어려운 성질이다. 차들을 중량대 추력비로 생각하면 필자가 크게 불리할 것은 없었다. 약 30% 정도 뒤진다. 엔진은 랠리에 바로 사용해도 좋을 레스폰스의 엔진을 갖고 있다.(1.9L 순정 엔진으로 뉘르버그링 코스에서 경량차체로 8분45초의 기록을 갖고 있다) 그러나 박스터 엔진의 레스폰스는 무엇인가 달랐다. RPM이 쭉- 올라가고 내리는 것을 도로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주관적으로는 30% 보다 더 큰 차이를 느끼고 말았다.

포르세의 엔진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빠르게 가속될 수가 없는 것이다. 박스터의 엔진은 H6형의 수평대향 엔진이다. 박스터라는 이름은 `Boxer 엔진 +로드스터'를 합쳐서 줄인 이름이라고 한다. 사촌격인 911 역시 전통적으로 수평대향 엔진이다. 이 차들의 놀라운 응답특성의 많은 부분이 H 구조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평대향 엔진에는 구조적으로 장점이 있다. 우선 밸런스추의 존재를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크랭크축 구조가 가능하다. 일반적인 엔진은 피스톤이 위에, 크랭크축이 밑에 있다. 엔진의 폭발력을 부드러운 회전으로 바꾸려면 피스톤과 컨넥팅로드의 무게를 정확히 상쇄하는 밸런스 무게가 필요하다. 예상보다는 묵직하다. 그리고 피스톤이 움직이는 거리(행정)의 2배 가까운 지름을 갖는 운동공간이 필요하다. 크랭크를 한번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가벼운 역기를 드는 것 정도의 무게가 나간다, 조금이라도 진동이 생기면 차는 마구 떨고 만다.

그러면 고성능차가 6000rpm을 내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피스톤이 10cm 정도를 왕복하면 크랭크의 밸런스추의 끝은 거의 20센티가 조금 안되는 원을 그린다. 1번 회전에 60cm 정도의 운동을 한다. 6000rpm은 초당 엔진이 100회전 하는 조건이므로 크랭크축은 60cm 정도를 움직이면서 점도가 높은 엔진오일속을 헤엄친다, 이런 식으로 보통 4개에서 6개의 밸런스 웨이트가 고속으로 돈다. 진동이 생기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BMW는 직렬 6기통의 긴 엔진 크랭크에서 떨리지 않는 조건을 찾기 위해 컴퓨터 설계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서 간신히 성공했다. 그 전까지는 진동 때문에 길지 않은 엔진을 만드는 것은 V형 엔진을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만들기가 쉽지는 않지만 수평대향 엔진을 만들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사진은 스바루의 6기통 엔진이다. 밸런스 웨이트가 거의 없다. 구조를 잘 모르더라도 아무튼 훨씬 간단한 크랭크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포르세의 크랭크도 거의 비슷한 구조다. 크랭크축의 반대편에 같은 무게의 피스톤이 무게를 상쇄하고 있어 가능한 구조다.

상식적으로 초당 100 회전 정도의 엔진이 추가 있는 경우에 가속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것은 자명해 보인다.

그리고 엔진의 구조가 밸런스가 잘 맞는 것으로 생기는 이점은 또 있다. 가벼운 플라이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엔진의 회전불균형을 잡기위해, 부드러운 회전을 위해 10Kg이 넘는 20에서 30cm 정도의 원판이 크랭크축 끝에 붙어있다.

가속이나 감속을 빠르게 하려면 플라이휠의 무게를 줄여야 한다. 스포츠카나 튜닝차에는 몇 Kg을 줄이기위해 많은 비용을 치룬다, 그러나 수평대향 엔진의 플라이휠은 아주 가볍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차의 플라이휠을 본 독자라면 사진의 수평대향 엔진용 플라이휠은 너무 얇고 가벼워보인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런데 구조가 좋으면 이 정도로도 충분한 것이다.

지인과 달리기를 한 이후 응답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빠른 것과 민첩한 것은 조금은 다른 것인데 튀는 차는 싫어하는 이유로 실용적인 차에서 응답성이 좋은 차를 타보고 싶어졌다. 지금 타는 차도 만족하지만 나중에 작은 스바루차들이 들어온다면 이런 점들을 만족시켜줄 것 같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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