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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쇠
노쇠
  • 의사신문
  • 승인 2017.10.1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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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6〉

 

`늙어서 몸과 마음이 쇠약함'을 의미하는 노쇠는 영어로 프레일티(frailty)다. 노인의학 영문 용어로도 프레일티다. 셰익스피어 비극 `햄릿'의 명대사 덕분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어 단어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 (Frailty, thy name is woman!)”

아버지가 죽은 후 어머니 거트루드가 아버지의 동생 클로디어스와 결혼하여 상심에 빠져 있던 덴마크 왕자 햄릿 앞에 아버지의 망령이 찾아왔다. 그는 아들에게 클로디어스에 의해 자신이 독살당한 사실을 알려 주며 복수를 당부한다. 햄릿은 오열하며 울부짖는다.

기억해야만 하나?
왜, 어머니는 그토록 아버지 곁에 매달리곤 했는가
마치 마실수록 갈증 나는 사랑처럼
그런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아, 생각하지 말자….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
- `햄릿' 1막 2장에서

안팎의 형편에 따라 망가지기 쉽고 깨지기 쉬운 무른 상태를 가리키는 프레일티가 `늙어서 여러 장기와 시스템의 생리적 예비능력, 기능 그리고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 등이 쇠약해져 장애, 질환병발, 사망 등에 퍽 취약해진 임상 상태'인 노쇠의 영문 이름인 것은 퍽 마뜩하다.

팔십오 세 이상 노인의 4분의 1내지 2분의 1이 노쇠 상태다. 다른 말로 이루면 늙더라도 절반 보다 많은 경우엔 노쇠가 아니다. 즉, 어떤 노인에선 노쇠가 발병하고 반대로 어떤 노인에선 노쇠가 안 생긴다. 이는 노쇠의 발생 여부에 늙음 이외의 다른 인자들이 관여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과음, 흡연, 활동 부족, 우울, 사회적 고립, 건강 문맹, 만성질환 등은 노쇠의 이환 가능성은 증가시키나 반드시 노쇠의 발병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분자생물학적 수준에선 산화 손상, 텔로미어 단축, 유전자 발현 변화, 세포 노화 등에 의해 염증성 조절 능력 부조화와 신경내분비계 시그널링 조절 불량, 인슐린저항성, 아포지단백E의 간여 등이 제시되기도 한다.

임상적으로 죽상경화, 심부전증, 불현성 심혈관 질환, 비만증, 빈혈, 만성신부전, 만성 사이토메갈로바이러스 감염 등의 발병 연관성이 보고되기도 하였다. 한 마디로 연구 중이다.

일반적으로 노인병을 청장년 때부터 갖고 있던 병들과 늙음이 자아내는 노인특유질환 두 가지로 정리한다. 그러나, 과거 어느 시대와 견줄 수 없이 늘어나는 수명에 따라, 노인의 질병에는 이 두 가지 범주의 병명들로는 진단과 치료와 예방을 담아낼 수 없는 질환들이 적지 않다. 여기에 속하는 하나가 노쇠다.

노쇠는 청장년기부터 가지고 있던 병들과 노인이 되어서 새로 생긴 병들과 생리적 노화가 복합적으로 엉켜 전연 새로운 병적 상태로 드러나는 질환 내지는 증후군이다.

아직 명쾌하지는 않으나 계량적 진단과 치료의 측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노쇠 개념 모델은 `표현형 노쇠'와 `결손 축적 노쇠'다. `표현형 노쇠'는 노화와 관련이 깊은 생물학적 변화들에 의해 노쇠의 특징과 그에 뒤따르는 딱한 결과들이 초래된다는 견해이고, `결손 축적노쇠'는 건강, 영양 및 사회관계 등의 다양한 결손에 의해 노화가 가속되어 노쇠가 발병한다는 생각이다.

이와같이 정의도 개념도 두루뭉술한 까닭에 노쇠를 측정하여 진단할 수 있는 일치된 방법이 아직 없다. 다만 대략 일흔 아홉 가지가 넘는 방법들이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체중이 줄고, 힘이 떨어지고, 쉬이 기진맥진하고, 걸음 속도가 느려지고, 신체 활동력이 감소하는 상태를 살펴 계측하는 방식을 그나마 흔히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형국에도 불구하고 다음 제안만은 대체적으로 의견 일치를 이루고 있다.

“70세를 넘기면 노쇠에 관한 스크리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치료와 예방이 어느 정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노쇠가 연속체이기 때문이다.

즉, 멈춰 서있는 `정적 노쇠'가 아니라 기능적으로 계속 변하는 `다이내믹 노쇠'로만 존재한다. 이는 진행, 악화 또는 개선이 모두 가능함을 의미하며 노인의학자들이 노쇠에 관심을 갖는 이유의 바탕이다.

요즈음 노쇠는 노인의학자들의 주요한 관심거리다. 노쇠가 노인병의 의학적 정량화를 위한 더 알맞은 기준과 치료의 실마리를 제공할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 관심과 기대의 결과에 따라 노쇠는 늙음의 무르지 않은 노인의학적 기표(記表)가 되지 않을까.

유형준
한림의대 내분비내과 교수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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