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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수술·치료 도구, `더 편하게 더 안전하게'
불편한 수술·치료 도구, `더 편하게 더 안전하게'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7.10.16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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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발명왕'을 만나다 〈3〉 - 순천향대부천병원 신경외과 김범태 교수

메모 습관·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성격이 발명하는데 큰 도움
국자 두개골 성형도구·수술용 테이블·색전증 방지 장치 발명
“환자 치료하며 얻은 생각 환자 위해 쓸 수 있도록 개발 최선”

작은 습관이 `인생'을 바꾼다는 말이 있다. 여기 `메모' 하는 습관으로 인생을 바꾼 두 사람이 있다.

관성의 법칙, 힘과 가속도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 등 역학(力學)의 기본 3대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세계적 위인 `뉴턴'과 순천향대부천병원 신경외과 김범태 교수다.

뉴턴과 김범태 교수는 비슷한 점이 많다. 어린 시절과 메모하는 습관이 비슷하다. 뉴턴은 `메모광'이었다고 한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노트에 모두 적어 놓는 습관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어린 시절 발명을 좋아해 아이디어만 생기면 무조건 메모했다.

뉴턴의 `메모' 습관은 그가 태어나기 3개월 전 아버지의 사망으로 할머니 손에서 자라게 돼 다른 아이들과 떨어져 혼자 지내면서 내면세계에 빠졌고,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키워나가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김범태 교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온 이후 서울 학교에서 차가운 시선에 상처를 받았다. 그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처럼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는 동안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들을 글로 풀어내며 버텼다.

그는 시골학교를 다닐 때부터 글짓기 대회에 나가면 상을 받곤 했지만 문과적 소질을 타고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오랜 세월 자연스럽게 기록하는 습관일 뿐이라고 한다. 이런 기록하는 습관은 `컴퓨터'를 통해 얻은 지식들로 유용한 도구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범태씨”

김범태 교수의 메모 습관은 컴퓨터를 만나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김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다.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지 전공의를 마친 뒤 군의관 시절, 많지 않았던 월급으로 컴퓨터 한 대를 구입했다. 아마도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성격'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도스(DOS)라는 컴퓨터 운영체계와 씨름하며 컴퓨터를 정복해 나갔다. 그러면서 기록과 관리를 체계적으로 하게 돼 자료를 쉽게 수집하고 보관할 수 있게 됐다.

김 교수는 “컴퓨터 운영체계를 이해하면서 데이터를 나누고 보관하고 찾는 개념을 가지게 됐다. 책상에서 배운 의학의 이론과 실기, 수술대 위에서 배운 경험들을 컴퓨터에 차곡차곡 기록하고 그때 그때 생각난 아이디어가 사라지지 않게 컴퓨터에 저장해 효율적으로 쉽게 찾아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 검색으로 관련 정보를 얻어내면서 이를 통해 `도구'를 만들어 냈다. 이것이 그의 첫 발명품으로, 주사기 바늘을 드라이버로 납작하게 눌러 개발한 `미세수술용 칼'이다.

■수술실에서 피어나는 `idea'

김범태 교수의 아이디어는 `수술실'에서 나온다. 외과의사이다 보니 환자를 수술할 때 불편한 수술 및 치료 도구를 사용하면서 비롯된다.

그는 “환자를 수술하다보면 불편한 점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수술기구는 물론, 환자에게 사용하는 장비들까지 다양하다. 그럴 때 마다 `이런 것이 있으면 좋을텐데', `이런 것이 있으면 잘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리고 `환자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 `이런 도구나 장비가 있으면 환자가 안전하겠구나'라는 생각에 무언가를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수술실에서 끊임 없이 나온 그의 생각은 신경외과 수술에 필요한 수술도구로 재탄생되고 있다.

■`범태국자'로 재탄생한 부엌 국자

순천향대부천병원 수술방 창고 한 구석에는 `범태국자'라는 스티커가 붙은 `재래시장표' 국자가 보관돼 있다. 범태국자는 김범태 교수가 `두개골 성형술'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한 발명품이다. 이 국자는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국자다.

김 교수는 `두개골 성형술'을 하면서 항상 아쉬움을 가졌다. 인공보조물이나 뼈시멘트를 이용해 시술할 경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두개골이 함몰된 경우 머리뼈를 새로 만들어 넣어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환자의 뼈를 이용하는 것이다. 자기 뼈를 사용하지 못할 경우 인공보조물을 이용하는데 `감염'을 주의하는 한편 `환자 두상'이 예쁘게 유지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려운 부분은 두개골 골절이 작은 경우 어렵지 않게 처치가 가능하지만, 두개골 결손이 클 경우 환자가 만족할 만한 모습을 보이기가 조금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김 교수는 환자에 대한, 환자를 위한 고민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IMF 외환위기가 터진 당시에는 병원은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어려운 시기라 값비싼 수술도구를 사들이기가 애매했다.

그러다 우연히 재래시장에 들른 어느 날, 그의 눈을 사로잡은 물건이 있었다. 그건 다름아닌 `국자'였다. 김 교수는 “국자를 보는 순간, 국자의 둥근 면을 이용하면 두개골 결손 부위가 큰 환자에게 두개골의 둥근 굴곡을 자로 잰 듯 예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자의 손잡이를 잘라내고 둥근 부분을 소독해 두개골 성형술 수술세트에 넣어 환자에게 사용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쓰이지 않고 있지만, 이 국자는 `김범태 교수'가 만들었다는 이유로 의사와 간호사들 사이에서 `범태국자'로 불리게 됐다.

■“좋은 건 함께 `특허' 신청∼”

김범태 교수는 `범태국자'를 시작으로 발명에 더욱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는 진료나 수술할 때 오직 환자에게 좀 더 좋은 결과를 주기 위한 고민과 연구를 거듭했다. 이런 그의 노력은 `수술용 보조테이블'과 `하이브리드 오퍼레이션 테이블', `혈관내수술 중 색전증 방지 장치'등 특허라는 값진 열매를 얻었다.

수술용 보조테이블은 수술 도구를 수술 부위에 가깝게 배치할 수 있도록 돕는 보조 도구다. 과거 수술용 보조테이블은 수술 부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의료진(수술자)이 수술 도구를 다루는데 불편함이 있었다.

김 교수는 이 점에 착안해 가벼운 재질로 제작, 수술자가 원하는 위치로 쉽게 옮겨 안전하고 편리하게 수술을 진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제품은 현재 순천향대부천병원 혈관조영실과 수술실에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오퍼레이션 테이블은 혈관조영술과 뇌혈관 수술을 동시에 하게 되는 경우, 수술실 이동 없이 한 곳에서 수술할 수 있게 고안한 수술대다. 머리 부분 폭을 좁게 해 혈관 조영술과 함께 뇌혈관 개두술에도 용이하도록 설계된 것으로 수술테이블이 고정되지 않고 이동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혈관내수술 중 색전증 방지 장치는 의사가 수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식염수 주입 여부를 감지해 주는 보조 장치다. 색전증은 뇌혈관내 수술 시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이다. 색전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카테터 안으로 식염수가 지속적으로 주입되는지 계속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수술이 그렇듯 뇌 수술의 경우 고도의 인내력과 집중력을 요한다. 더욱이 김범태 교수가 하는 뇌혈관내수술, 즉 머리를 열지 않고 뇌에 생긴 질병을 뇌혈관 속을 타고 들어가서 하는 수술은 인공지능 로봇이라도 할 수 없는 고난이도의 기술이다.

그는 의사가 오직 환자 치료를 위한 수술에 신경 쓸 수 있도록 제품을 고안해 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혈관내 수술 중 색전증 방지 장치는 그가 세 번째로 받은 특허다. 범태국자 다음으로 상품을 만들고 특허를 신청했지만 특허 신청 기간이 짧으면 1년, 길면 2∼3년까지 걸리다보니 뒤늦게 인정받아 3등이 된 제품이다.

■“제4, 제5의 특허 릴레이는 ing”

김범태 교수의 발명은 우연히 다가왔다. 김 교수는 “발명은 `나 자신은 물론 환자'를 생각하고 만드는 것이다. 머리로 생각하고, 환자의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제품으로 실현시키는 것이 발명"이라고 말한다.

그는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얻은 생각들을 환자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항상 고민한다”며 “25년간 진료실과 수술실에서 환자를 통해 얻은 아이디어를 고민과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교수는 “특허 받은 제품들 모두 특허를 내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단지 환자를 통해 배운 것을 환자를 위해 돌려주고 싶다는 작은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었다”라며 “생각을 실현시켜 제품화하고 상용화 될 때 오는 만족감에 계속해서 발명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장치들이 실제 현장에서 쓰이는 것을 볼 때마다 생각의 힘이 갖는 위대함을 실감한다. 앞으로도 생각을 현실로 바꾸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라며 “제4, 제5의 특허 릴레이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까지는 특허만 냈지만 제품을 상용화해 많은 의료진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 교수는 “나는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 및 수술을 하는 `의사'다. 프로 발명가가 `돈'을 쫓는다면 나는 아마추어로 `재미'로 발명을 하고 있다”며 “대학에서 지원해 준 덕분에 의료진들이 환자를 위한 진료와 치료, 수술과 개발 등에 더욱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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