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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알라비 교수
아저씨 알라비 교수
  • 의사신문
  • 승인 2017.09.2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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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71〉

지난 9월 중순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세계 분자영상 학술대회(World Molecular Imaging Congress)가 열렸다. 우리 과에서 십여 명의 교수와 대학원생이 참석하였다. 분자영상은 질병에서 인체의 형태학적인 변화 전에 생기는 분자와 유전자 수준의 변화를 영상화하는 미래의학이다. 나는 이 학회에 참석하면서 학문적인 관심과 더불어 펜실베니아 대학의 알라비 아저씨를 만날 예정으로 가슴이 설렜다.

알라비 교수는 세계적인 핵의학자이자 양전자단층촬영법(PET)을 이용한 분자영상의 대가이다. 80세의 알라비 교수는 구글 위키피디아에도 수록되어있지만 아직도 현역이다. 이란 출신의 미국인으로 테헤란 대학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1966년 미국에 와서 내과와 핵의학을 수련받았다. 1971년 펜실베니아 대학에 펠로우로 온 후 지금까지 같은 대학에서 수많은 업적을 쌓아오고 있다.

특히 1976년 8월에 스승인 데이비드 쿨 교수와 함께 사람에게 최초로 포도당 유도체인 F-18 FDG(Fluordeoxyglucose)를 사용하여 전신 촬영 PET를 시작하였다. 이 FDG PET은 현재 암환자, 뇌신경질환, 심근질환 같은 주요 질환에서 당 대사 이상을 영상화하여 수많은 환자한테 도움을 주고 있다. 알라비 교수는 `PET는 나의 종교'라는 신념으로 몰두하여 빛나는 업적을 쌓아오고 있다. 고령의 나이에도 은퇴는 생각도 없고 여전히 병원에서 매일 연구와 진료에 열중하고 있다. 나는 조만간 이 연구팀이 PET 기계, FDG 시약 개발자와 공동으로 노벨상을 받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알라비 교수는 질병에 관한 풍부한 내과 지식을 바탕으로 천재적 능력을 발휘하여 핵의학 분야에서 여러 중요한 검사법과 치료법을 개발하였다. PET의 개발 전에 핵의학 단층촬영법인 SPECT를 임상에 이용하였다. 그 외에도 갑상선 암에서 방사성 옥소 123, 갈색세포종에서 MIBG, 감염환자에서 백혈구를 이용한 영상진단법을 개발하였다.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이 현재 2300개에 이르고 5만 6000번 이상 인용되었다. 특히 업적을  정성, 정량적으로 나타내는 H-index가 117이다. 이는 117번 이상 인용된 논문이 117개 있다는 의미로 경이로운 숫자이다. 참고로 나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제법 높다지만 56이다.

학문적인 탁월성 이외에도 그는 교육과 인재양성에 관심이 많다. 미국에 이민 온 1세대로 소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람이지만 자기 과거를 자랑만 하기 보다는 좋은 선례로 보여 주면서 외국인 제자들의 사기를 북돋는다. 그의 지도하에 공부한 펠로우와 레지던트는 전 세계에 걸쳐 5백 명에 이르고 우리나라에서는 김천기 교수, 윤미진 교수가 그에게 배웠다. 한편, 젊은이들을 위한 Alavi-Mandell Awards, Bradly-Alavi Award 등을 만들어 재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나와 특별히 가깝게 된 사연이 있다. 20년 전 우리 학회에서 특강을 하기 위해 알라비 선생이 내한하였다. 대한핵의학회 학술이사였던 나는 저녁 식사를 대접하면서 당시 유행하던 폭탄주를 주고받았다. 그는 평소에 음주를 안 한다면서도 거침없이 다섯 잔을 연달아 마시는 것이 아닌가! 대화하면서 학문에 대한 특히 핵의학에 대한 깊은 애정을 서로 확인하고 알코올로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의기가 투합하여 아저씨와 조카로 삼기로 하였다. 그 후 주고 받은 이메일이나 대화에서 가족 명칭을 사용하고, 또 이 사실을 즐기고 있다. 2003년 내가 뉴욕에서 단기연수 중에 필라델피아를 방문하여 강의를 하고 그의 집에서 하루 밤을 지냈다. 부인은 같은 대학 혈액학 교수이고 아이가 없어 필라델피아 교외에 있는 아담한 2층 집에서 수많은 화초를 키우고 있었다.

이번에 알라비 아저씨의 환대를 지극하게 받았다. 우리 열 명의 참석자를 차이나 타운에 있는 좋은 중국집에서 배부르게 대접하였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지만 우리를 자기 차에 태우고 펜실베니아 대학을 구경시켜주었다. 펜실베니아 대학은 학회장 근교 넓은 대지에 대학건물로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는 그의 열정에 대학과 병원 건물을 다리 아프게 돌아다녔다. 처음 FDG PET을 시행했던 연구실을 구경하고 현재 진행하고 있는 새로운 임상 연구도 소개해 주었다. 주말인데도 모든 연구원이 나와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알라비는 토요일, 일요일을 근무하면 인생을 20년 더 사는 셈이라고 웃으며 강조하였다. 80세의 노인임에도 우리보다 빨리 걸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그의 말을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많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걸음이 빠르다는 것이 내가 평소에 관찰한 사실이다.

학회 마지막 날 만찬에는 제인 숙모님을 동반하여 나와 오래간 만에 만났다. 변함없이 유쾌하고 똑똑해 대화를 즐겼다. 알라비 교수는 우리와 인연이 많다. 미국 핵의학회 학술대회에서 우리 대학과 펜실베니아 대학이 한 때 발표 논문 숫자로 선두 경쟁을 하였다. 수년 전에는 가천대 조장희 교수와 공동연구를 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내한하였다. 한국에 오는 길에 우리 과와도 공동연구를 제안하여 세가지 연구주제를 수행한 적이 있다.

식사를 하면서 어릴 적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이란의 대도시인 타브릿즈에서 태어난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학교에서 공부한 후 집에 와서 다른 일보다 제일 먼저 등잔불 밑에서 숙제를 하였단다. 부지런하고 엄격한 어머니에게 어려움을 이기고 노력하는 자세를 배웠다. 이란에서 전국 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한 지적 능력에 더하여 꾸준한 자기 연마가 상승작용을 하여 이 같이 뛰어난 업적이 나온 것이다. 2004년 미국 핵의학회에서 가장 명예로운 `헤베시 핵의학 선구자상'을 받을 때 휠체어를 타고 나온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고 하면서 시상식 무대에서 그와 포옹하였단다. 아저씨는 이 감격적인 장면을 회상하면서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목이 메었다. 

알라비 교수의 인품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우리가 아시아지역 핵의학협력체(ARCCNM)를 만들어 후진국을 도와줄 때였다. 알라비 선생은 가끔 심포지엄 강사로 참여해 아시아 핵의학 진흥에 한 역할을 하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은 방콕에서 열린 연수교육에 자비로 와 강의하고 귀국할 때였다. 비행기 이코노미 석에 14시간 동안의 여정을 걱정하는 나에게 평소처럼 논문을 교정하면서 가면 쉽다고 말하며 해맑게 웃었다. 세계적인 원로학자가 이렇게 열심히 소박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대가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보기에도 탁월한 사람이다. 지적 능력에 더하여 뛰어난 감성적 능력과 인성이, 몇 가지 말과 행동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번에 알라비 교수와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그가 위키피디아에 나올만한 인물인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와 비교하니 60대 중반의 나이에 조로해진 내 자신이 부끄럽다. 정말 내가 존경하는 아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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