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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노화
성공 노화
  • 의사신문
  • 승인 2017.09.26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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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4〉
유형준 한림의대 내분비내과 교수시인·수필가

세월이 쌓여가면서 근육량이 줄어 기력이 떨어지고, 수정체가 혼탁해져 시력이 흐려지고, 몸의 균형 유지 능력이 둔해져 잘 넘어져 부러지고, 기억과 사고의 속도가 처지는 등의 현상들을 `정상노화'에 따른 변화로 본다. 그러나 통계적인 의미가 강한 `정상노화'란 용어 보다는 일정연령에서 대다수의 사람이 그 기간 동안 경험해 온 생리적 변화들의 축적을 의미하는 뜻으로 `보통노화'라는 단어가 더 정확할 수 있다. 이에 맞대어 `성공노화(successful aging)'는 나이에 따른 변화가 상대적으로 최소한인 노화를 가리킨다. `보통노화'를 `평범 노화', `성공노화'를 `힘찬 노화'란 말로 바꾸어 사용하기도 한다. 더러 `성공적 노화'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영어 `successful'을 제대로 번역하겠다는 의도는 성실하다고 평가하지만, 명사와 명사가 잇닿으면 앞의 명사가 형용사형 명사가 되는 우리말의 기본을 모르는 부족함이다.

이처럼 여러 표기를 지닌 노화를 자세히 캐고 따져 제시된 이론은 대단히 다양하여 흘낏 보아서는 그 갈피조차 잡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이론들의 바탕이 되는 기본 개념은 결국 다음의 다섯 가지다.

첫째, 노화는 발달 현상이다. 우리는 갑자기 늙지 않는다. 65세가 된다고 시계가 멈추지도 않는다. 우리는 더 발달하여 늙지만 생활연령[생일을 기점으로 세는 나이, 역연령이라고도 함]대로는 아니다. 청년 같은 70세가 있고, 90세 같은 50대가 있다.

둘째, 의학과 과학 기술의 발달 덕택으로 더 오래 살고 이에 따른 모든 현상은 과거엔 상상조차 못했던 새로운 것이다.

셋째, 질병에 의해 생기거나 남겨진 감퇴는 생리적 노화 현상이 아니다.

넷째, 몇몇 노화 이론은 주목을 받곤 하지만 어느 이론도 결정적인 것은 없다.

다섯째, 노화가 질병과 다른 점은 비가역적이라는 것이다. 만일 이제까지 비가역적이라 여기던 것이 연구를 비롯한 여러 방편에 의해 가역적인 것으로 판명되면 그 때부터 그것은 이미 노화라 칭해지지 않는다. 대표적 예가 골다공증이다. 과거엔 할머니는 허리가 구부러져 `꼬부랑'해야 어색하지 않았다. `성공노화'라는 말 역시 이러한 다섯 가지 기본에 철저히 기초하고 있다. 되풀어 이르면, 성공노화는 `세월의 축적에 따른 변화 자체이며 동시에 드러나는 현상으로서 쓸모 있는 부분이 비교적 넉넉한 늙음'이다. 이는 세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의 하나인 `뜻대로 하세요'에 등장하는 애덤이 늙음을 대하는 시각과 다르지 않다. 그는 주인공의 형인 올리버의 하인으로 여든이 다 되도록 종노릇을 해오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내 나이는 활기찬 겨울로서 서리가 내렸지만 온화합니다. 함께 가게 해주십시오.”

아직, 객관적으로 성공 노화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구체적 기준은 없다.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 여러 가지 기준들이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그 중에서 노인학자들이 그나마 가장 선호하는 것이 로우 교수와 칸 교수가 공동 발표한 성공 노화 개념이다. 그들은 병적 상태의 최소화, 육신 기능과 정신 기능의 양호, 사회성 등 3가지 결정 요소를 토대로 성공 노화를 이해하려고 한다. 로우와 칸의 성공노화 3요소는, 잠깐만 생각해보아도, 매우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우커 교수가 제시하는 성공노화의 요소들을 살펴보면 그 부족함은 더욱 뚜렷해진다.

“두드러진 질병이 없고, 신체 기능과 인지기능이 좋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의존성이 없고, 생활 참여를 넓게 하고, 임종기간이 길지 않고, 평온한 임종을 맞으면 성공노화다.”

바로 늙음과 임종의 평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영성(靈性)이 로우와 칸의 제안엔 빠져 있다. 영성과 건강, 영성과 사망률 등의 연구 결과들을 세세히 인용치 않더라도 늙음에서 영성의 자리매김은 확고하다. 이런 까닭에 최근에는 크라우더 교수 등을 필두로 노인 학자들이 `개정 로우와 칸 성공노화 요소'를 제시하고 있다.

노화를 막을 순 없다. 단지 덜 하거나 또는 늦출 가능성이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노화를 조절할 수 있는가를 따지기 전에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볼 것은 “노화는 무조건 막아야 하는가?”이다. `모든 인간이 모두 오래 살고 싶어 한다'를 마치 불변의 진리로 여기고 있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오히려 삶의 길이보다 삶의 질을 더 값지게 살아가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건강하고 생산적 신념을 지니고 있는 걸 드물지 않게 본다. 그래서 필자는 `노화방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에 `노화수정'이라고 한다. 겸손을 과시하기 위한 억지가 아니다.

늙음에 의한 심신의 퇴화는 자연적이고 생리적 순응이다. 늙어가는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이득(진정한 절대 이득인지 당장 알 수는 없지만)을 바라는 소망에서 `노화수정'이라 한다. 성공노화는 늙음을 막아 없애는 환상이 아니라 쓸모있는 잔여를 수정하여 추스르는 현실적 소망이며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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