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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브람스 〈네 개의 엄숙한 노래〉 작품번호 121
요하네스 브람스 〈네 개의 엄숙한 노래〉 작품번호 121
  • 의사신문
  • 승인 2017.09.18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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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411〉

■소박하고 엄숙한 브람스 음악의 마지막 방점

클라라 슈만은 1896년 5월 20일 세상을 떠났다. 〈네 개의 엄숙한 노래〉의 작곡을 막 끝낸 직후 브람스는 오스트리아의 온천 도시 바트이슐에서 클라라의 사망 소식을 5월 21일에 전해 듣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정신없이 독일 본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은 그는 장례식이 끝난 후 시신이 무덤에 매장되기 직전에야 간신히 장례식에 도착하여 영원한 작별을 해야만 했다. `엄숙한 노래'라는 곡의 제목뿐 아니라, 수록된 네 곡의 가사에 담긴 의미와 분위기가 인생의 허무와 죽음에 대한 관조를 선연하게 드러내고 있어 아마도 이 곡을 작곡하던 때 이미 클라라와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이 곡을 화가인 막스 클링거에게 헌정함으로써 클라라와 자신의 관계 속에서 음악이 해석되고 유추되는 것을 피하려 했다. 스승의 아내이자 열네 살 연상의 그녀를 40여 년 동안 마음속으로 연모했던 그는 클라라의 죽음 이후 같은 해 9월 간암 진단을 받고 이듬해 4월 3일 결국 향년 63세로 생을 달리 했다. 이 작품은 같은 해 작곡했던 〈11개의 코랄 전주곡〉과 함께 브람스 음악의 마지막 방점으로 기록되었다.

브람스의 가곡들은 중후한 표현법으로 장식음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소박함을 보여준다. 피아노 반주를 최대한 간결하게 처리하면서 노랫말의 의미에 집중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네 개의 엄숙한 노래〉의 가사를 모두 성서 〈전도서〉, 〈고린도전서〉, 〈집회서〉에서 텍스트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 음악은 종교를 초월한 엄숙하고 순결한 기도의 노래이다. 그는 자주 성서를 인용해 성악곡을 만들면서 수준 높은 텍스트와 음악성을 보여주었다.

이 가곡집은 이전의 음악을 한 차원 뛰어넘는다. 그가 발췌한 텍스트와 음악은 여러 면에서 그의 걸작 〈독일 레퀴엠〉을 떠올리게 한다. 두 음악은 본질적으로 같은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 모든 인간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인 죽음 앞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고찰하고 있다. 〈독일 레퀴엠〉에서도 그랬듯이 단지 죽음의 고통과 어두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이들의 평안과 남겨진 이들에 대한 위로와 사랑을 말한다.

죽음에 초연한 `사랑'이지만 죽음 속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 곡의 위대함은 그 어려운 목표를 극히 브람스다운 방식으로 짙은 음영을 보이면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는 그만의 방식으로 해냈다는 점에 있다. 그는 사도 바울의 고백으로 유명한 고린도전서의 구절로 가곡집을 끝맺고 있다. 이 마지막 곡은 고통을 초월한 곳에 있는 아가페적인 사랑이다. 첫 곡에서 세 번째 곡까지 인간의 괴롭고 우울한 감정들을 모두 맛본 후에서야 마지막 곡에서 사랑을 논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제1곡 Denn es gehet dem Menschen(사람에게 임하는 바는 짐승에게도 임하나니)(전도서 3:19∼22) “인간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짐승이 죽는 것처럼 인간도 죽는다/ 모든 것은 하나의 목숨을 가지고 있으니/사람도 짐승보다 더 나을 것이 없으니/모든 것은 헛되다/모든 것은 한 곳으로 가고/모든 것은 먼지로부터 만들어졌고/다시 먼지로 돌아가느니/사람의 영혼이 위로 올라가는지/동물의 호흡이 땅 밑으로 가는지 누가 아리오. 그래서 나는 인간이 자신 일을 할 때/기뻐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것을 보았다/그것이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니/죽은 뒤에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보려고/누가 다시 그들을 데려 오겠는가”

△제2곡 Ich wandte mich und sahe na alle(나는 모든 학대를 보았노라(전도서 4:1∼3) “나는 해 아래 모든 억압을 보았다/보라, 억압받는 이들의 눈물을/그들에게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학대하는 자들의 손엔 권세가 있다/억압받는 이들에게는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나는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이들이/아직 살아 있는 이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하였느니/그들보다 더 행복하기로는/아직 태어나지 않아/해 아래 자행되는 악한 일을 보지 않은 이라고 말하였다”

△제3곡 O Tod, wie bitter bist du(죽음이여, 고통스러운 죽음이여)(집회서 41:1∼2) “오 죽음이여/너를 기억하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자기 재산으로 편히 사는 인간에게/아무 걱정이 없고 만사가 안락하며/아직 음식을 즐길 기력이 남아 있는 인간에게/너를 기억하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가. 오! 죽음이여, 얼마나 좋은가/궁핍하고 기력이 쇠잔하며/나이 많이 먹고 만사에 걱정 많은 인간에게/반항적이고 참을성 잃은 자에게/너의 선고가 얼마나 좋은가”

△제4곡 Wenn ich mit Menschen und mit Engelzunge reget(내가 인간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고린도전서 13:1∼3, 12∼13) “내가 인간의 방언과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해도/나에게 사랑이 없다면/나는 요란한 징이나 꽹과리 소리에 지나지 않다/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모든 비밀과 지식을 깨닫고/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다 하여도/사랑이 없으면/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모든 재산을 나눠주고/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해도/사랑이 없으면/아무 소용이 없다/우리가 지금은/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이지만/얼굴과 얼굴을 마주볼 것이로되/지금은 온전히 알지 못하지만/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이다/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로되/그 중 으뜸은 사랑이라”

■들을 만한 음반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바리톤), 외르그 데무스(피아노)(DG, 1957) △캐서린 페리어(알토), 존 뉴마크(피아노)(Decca, 1953) △한스 호터(베이스), 제럴드 무어(피아노)(EMI, 1955) △마티아스 괴르네(바리톤), 크리스토퍼 에센바흐(피아노)(Harmonia mundi,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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