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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의 의미
늙음의 의미
  • 의사신문
  • 승인 2017.09.0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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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1〉
[편집자 주] 의사 시인이자 수필가로 `서울시의사회 의학문인회장'을 맡고 있는 유형준 한림의대 내분비내과 교수(필명 유담)가 이번 호(5237호, 9월4일자)부터 `늙음 오디세이아'라는 칼럼을 연재한다. 서사적으로 연재될 유 교수의 `늙음 오디세이아'는 `늙음의 얼굴과 속마음을 독자 회원들과 함께 공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연재될 소제목은 `늙음의 얼굴들'을 비롯 `늙음의 의학적 의미' `늙음의 의료화' `늙음 그리고' `노인인구' `노인의 인문을 읽다' `노인병학' `아름다운 노년' 등이다. 〈연재 순서는 유동적일 수 있음.〉 특유의 문체로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유형준 교수의 신작 `늙음 오디세이아'의 열독을 전국 독자들에게 권한다.
유형준 한림의대 내분비내과 교수 시인·수필가

사물에는 `낡다'를 쓰고 사람엔 `늙다'를 쓴다. 영어의 `늙다(old)'는 어원이 `자라다, 위로 잡아당기다, 영양을 공급하다'라는 뜻의 동사로 `먹여 살리다, 키우다(alere)'에서 파생한 라틴어 `높다(altius)'와 연관되어 본디는 긍정적 의미다(`인문학자, 노년을 성찰하다' 채영희 등).

그러나 세월이 쌓임에 따라 수많은 곡절들이 곧 수없는 자극이 되어 늙음은 점점 기세등등하여 점차 쇠퇴하며 스스로 지탱하기 어려울 만큼 줄어간다. 쇠하여 사그라지는 항상성은 질병, 기능이상 및 약물 부작용으로 더 흔들리고 생리적 능력의 감소와 함께 노인들로 하여금 여러 질병에 걸리게 한다. 어떤 병은 낫고, 어떤 병은 만성화되어 세월 쌓이듯 질병이 쌓여간다. 이런 의학적 형편에 더하여 경제적 어려움과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 상실에 의해 소외감이 커지고 퍽 우울해진다. 이를 노인병 의사의 어조로 다시 읊조리면 다음과 같다. “늙으면 병이 쌓인다. 아프면 기능이 떨어지고 역할이 줄어들어 경제능력이 수그러들면서 가난해지고, 남들과 만나고 어울리는 기회가 뜸해진다. 소통이 궁핍해져 늙음은 외롭고 우울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읊조림도 단 하나의 표현일 뿐 어느 누구도 늙음을 한 마디로 이를 재간을 지니고 있지 않다. 혹시 한 문장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서 세월이 쌓이며 조직과 장기가 변화하여 일어나는 대체적으로 현저한 급성장애를 일으키지 않는 해부학적, 생리학적 변화(들)'이라고 의기양양하게 정의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통계학적 수사일 뿐이다. 늙음은 쉼 없이 움직이는 과정이며 현상이다.

늙음은 두 가지 관점으로 바라 볼 수 있다. 하나는 `얼마나 망가졌는가?'로 결과 된 결손을 들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모 있는 부분이 꽤 남아 있지 않은가?'로 남아 있는 쓸 만한 기능의 유용성을 추스르는 것이다. 전자가 노쇠의 개념이고 후자가 성공한 늙음의 시각이다. 즉, 성공한 늙음은 노쇠의 최소화다.

그러나 성공한 늙음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기준이 없다. 질병 건강에 관심이 있는 의사들은 건강이 성공한 늙음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 강조하는 경향이 있고, 인본주의자들은 대개 야망의 실현, 봉사 구현 등을 보다 중요한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 명쾌한 구별법이 없다보니 “어떠한 내부적인 감각도 우리에게 노화로 인한 쇠퇴 현상을 드러내주지 않는다. 바로 이점이 질병과 노화를 구별지어주는 특성 중의 하나다. 병은 자기 존재를 예고해 준다. 병은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주위 사람들보다 아픈 당사자에게 더욱 명백하게 존재한다. 반면 노화는 당사자에게보다 남에게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노화는 생리적 균형의 새로운 상태이다. --중략-- 사람들은 회복이 가능한 병과 회복이 불가능한 노화를 은근히 혼동하고 싶어 한다.”(`노년' 보바르 /홍상희, 박혜영 역)

그래서인지 늙음을 질병이라 우기는 이가 있다. 개중에는 아예 `늙음은 질병'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늙음 자체를 막아 젊음을 되돌려주겠다는 노화 방지의 `질병 장사'를 벌이는 이들도 있다. 이는 삶을 의학적 정상과 의학적 비정상으로만 이분화 하여 그 대책을 의료의 몫으로 독차지하려는 의도다. 늙음이 질병과 다른 점은 비가역적이라는 것이다.

만일 이제까지 비가역적이라 여기던 것이 연구를 비롯한 여러 방편에 의해 가역적인 것으로 판명되면 그 때부터 그것은 이미 늙음이라 불리지 않는다. 아직도 늙음을 질병이라고 강변하는 이가 있다면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의 시 `80세 노인에게' 몇 구절을 보태어 `늙음과 질병은 다르며 늙음은 늙음이다'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그대 가난하고 친구도 없이 / 동년배 중에 홀로 살아남아서 / 하늘은 나이가 맞는 독한 고독에 맞설 / 애도의 역할을 점지해 준 / 그대의 마음 한 구석에도 / 생명이 있는 것에 대한 사랑할 자리가 마련되어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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