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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배롱나무
  • 의사신문
  • 승인 2017.08.2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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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風書風 〈64〉

탑산 공원에 배롱나무 꽃(紫微花)이 한창이다. 꽃잎은 초여름 더위와 함께 시작하여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 초입이면 서서히 스러져 자취를 감춘다. 중부 이남에서 여름을 대표하는 꽃나무는 아마도 배롱나무가 아닐까 한다.

열흘 이상 가는 꽃은 드물다(花無十日紅). 목련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꽃망울이 모질고 긴 겨울을 보내듯이, 대부분의 꽃은 한 번 피기는 어려워도 지는 건 금방이다. 그러나 배롱나무 꽃차례(花序)는 6월 말부터 9월까지 연이어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가지 끝에 중심의 화서축이 발달하고, 밑에서부터 위로 꽃이 피어나는 전체가 원추모양을 이루는 꽃차례(圓錐花序), 멀리서 보면 배롱나무는 무수한 꽃묶음이 어우러져 진홍빛 등불 축제를 벌이는 듯하다. 배롱나무는 습한 장마기를 거쳐 때로는 거센 태풍의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여름의 찌는 듯 혹서(酷暑)의 날을 견뎌가며 꽃을 피운다.

언제부터인가 배롱나무가 공공기관과 공원의 정원수로 자리를 잡더니, 요즘은 아파트 단지나 주택가에도 조경수로 심어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배롱나무는 수피(樹皮)가 붉고, 한해살이 풀꽃인 백일홍처럼 꽃이 석 달 열흘을 핀다하여 `나무 백일홍'이라고도 불린다. 조선의 선비들은 뒷뜰의 양지 바른 곳에 배롱나무와 향나무를 심어놓고 꼿꼿한 지조와 강직한 삶을 되새기곤 했다.

동향(東向) 집의 아침저녁 뜨거운 햇살이 싫어 근처의 다른 곳으로 집을 옮겼다. 이사하던 날, 아파트 언덕길의 커피숍 화단을 물들이던 진분홍, 연분홍, 하얀 접시꽃… 며칠을 지나지 못해 모두가 시들어 버렸다. 시든 꽃만큼 애처롭고 안쓰러운 게 또 있으랴.

무심코 지나치던 7월의 어느 날, 화단 울타리에 붉은 꽃이 화들짝 피어 있다. 접시꽃 옆에 나지막이 서 있던 어린 나무를 가지와 잎사귀만 보고 어찌 배롱나무임을 알겠는가. 가지 끝에는 터질 듯이 부푼 꽃망울, 수박 향기가 은은한 꽃잎이 더미를 이룬다. 가까이서 보면 만개한 꽃잎들 중심에 수술대 노란 꽃밥(葯胞)은 천방지축 손주 놈의 해맑은 미소처럼 부르며 손짓한다. 그제야 나는 이 나무가 낯익은 배롱나무임을 깨닫게 된다.

비와 눈이 적은 바닷가 도시, 포항에 온 지도 벌써 5년이다. 재작년부터 들이 닥친 더위는 해가 갈수록 기승을 부린다. 올해는 전국이 가뭄에 시달렸고, 포항과 경주를 비롯한 경북의 동남부 지역은 마른장마까지 겹쳤다. 오이와 상치 값이 폭등하고, 7월 초반의 낮 기온이 38도에 이르렀으니 내륙이 아닌 동해의 바닷가 도시로선 가히 기록적인 초죽음의 폭염이다.

영일만 수평선이 바다안개에 가려 물빛조차도 우중충하게 비치고, 30분 출근길의 뙤약볕이 온몸을 땀으로 적신다. 아침의 무력감이 하루 종일 이어지니 직장의 업무도 힘들다. 더위에 쉽게 지치는 것이 나이 탓은 아닐까, 집중력이 떨어지니 책을 읽기도 글을 쓰기도, 체계적인 사고도 어렵다. 게다가 열대야까지 더 하니 퇴근 후의 휴식과 야간 산책 등, 초저녁의 일상조차도 더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름의 도시는 꽃나무가 귀하고, 주택가 공터에는 돼지풀만 무성하다. 시골 풀숲에 흔하디흔한 나팔꽃조차 구경하기가 어렵다. 저녁의 한적한 골목을 산책하다가 담장을 넘나드는 덩굴나무에서 주황색 능소화(凌?花)를 보면 아주 운이 좋은 날이다. 그러기에 탑산과 아파트 언덕길의 나무 백일홍, 병원 후문 앞 작은 뜨락에 핀 사철 채송화(松葉菊)는 더위에 지친 도시생활의 열기와 삭막함을 적잖이 삭여준다.

누군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랴. 꽃은 사람의 정감을 돋우고 순수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꽃이 오롯이 사람을 위해 피는 것은 아니다. 꽃이라는 객관적 대상과의 존재적 관계, 오래 전 작고하신 김춘수 시인을 생각한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꽃에 대한 시는 `꽃'과 `꽃을 위한 서시(序詩)'지만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꽃'뿐이다.

따지고 본다면, 꽃으로 위안이 되거나 행복감을 느끼는 일상의 사람들에게 `꽃을 위한 서시'가 담고 있는 시인의 모더니즘 철학과 사변적인 존재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아름다움은 그 자체가 예술이며 내면의 살아 움직이는 존재적 가치이다. 또한 그것은 도시생활의 치열한 삶의 열기를 식혀주는 바닷바람, 시원한 한 줄기 동풍(東風)이기도 하다.

백일홍은 열꽃(熱花)이다. 여름 내내 번갈아 피고지기를 거듭하다가 폭염이 한풀 꺾일 무렵이면 꽃도 함께 저물기 시작한다. 꽃이 피면서 동글동글하고 단단한 열매가 맺히고 10월이면 종자를 퍼뜨린다. 나무 백일홍은 그렇게 한 해의 중년을 마무리 한다. 화려하지도 않고 그저 수수하며 평범한 꽃이 모여 꽃더미를 이루고, 나무 전체가 수많은 꽃묶음으로 어우러지는 꽃 잔치, 나는 배롱나무처럼 조화롭고 아름다운 공동체 사회를 꿈꾸어 본다.

점심시간이면 탑산 숲길에서 만나는 배롱나무, 고목의 그늘에는 바닥까지 환하게 꽃 그림자가 서려 있다. 쉼터 벤치에 누우면 무성한 잎사귀 사이로 떠있는 꽃묶음들, 초파일 산사에 걸린 연등(燃燈)처럼 가지 끝에 하릴없이 흔들린다. 한낮의 숲이 오수(午睡)에 잠기면 혼곤한 꿈속에도 화사한 붉은 빛이 스며든다.

화무십일홍의 허무함, 배롱나무 꽃에는 무더운 여름날을 힘겹게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소박하고 끈질긴 삶의 미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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