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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당공원(讀書堂公園)
독서당공원(讀書堂公園)
  • 의사신문
  • 승인 2010.03.2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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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균<성북 이정균내과의원장>

▲ 이정균 원장
매봉산 자락 옥수동 그 앞은 한강이다. 배산임수의 지역 서울 매봉산(성동구 옥수동)은 드라마 `서울의 달' 무대였다.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이 보인다' 그 속에는 빈(貧)과 부(富)의 양극점을 상징하는 내용이 줄거리다. 이제 통나무 계단 산책길, 따뜻한 봄날 개나리꽃 동산, 운동시설, 쉼터 그리고 한강의 풍광, 강남 일대의 경관을 조망하는 명소로 자리 잡고 있지만, 달동네의 정겨운 풍경, 그리고 고층아파트로 둘러싸여 그곳에선 옛 추억을 더듬을 수 없는 현실이 우리를 애잔하게 만드는 동네가 되었다.

한강은 오늘도 유유히 흐른다. 아침 산책 시간이 즐겁다. 한강 물이 흘러 한양에 도달하여 물굽이를 굽돌면서 강 언덕을 파고 들어 호수(湖水)를 만들어 냈다. 옥수동 근처 한강 주변에는 동호(東湖), 용산 근처에는 남호(南湖)를, 마포에는 서호(西湖)를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오늘의 지명과 인연을 맺었다. 더욱 관련이 있는 것은 호학군주(好學君主) 조선 세종의 사가독서(賜暇讀書)에 얽힌 지명유래다. 1424년 조선 세종은 학자양성, 유교의 통치이념을 연구하기 위한 국가의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건립한 전문독서 연구기구가 독서당(讀書堂)이었다. 흔히 삼대 한양 한강호수의 이름을 빌려 호당(湖堂)으로 불렸다. 세종 말엽에는 신숙주, 성삼문 등 6인의 학자들에게 휴가를 주어 글을 읽게 하였다.

조선 성종 7년(1476) 채수 등 6인이 독서휴가를 받았다. 성종임금은 서거정(徐居正)의 청을 받아들여 1492(성종23년) 남호독서당(南湖讀書堂)을 개설하였다. 흔히 그 이름은 남호당(南湖堂) 또는 용호당(龍湖堂)으로 불렸다 한다.

독서당은 역대 임금들의 총애를 받던 연구기관이었다. 선발연령은 연소문신원칙(年少文臣原則)이었고, 서당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사가인원(賜暇人員)은 제한하였고, 운영규정은 엄격하였다 한다.

예부터 “대제학(大提學) 하나 삼정승과 안 바꾼다”고 했다. 대제학도 독서당을 거쳐야만 가능했던 국비운영의 사가독서제도는 1426∼1773년까지 350년간 48차 320명을 선발하여 글공부에 전념하도록 했다는 조선왕조의 특별인재관리 시스템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주고 있지 않는가. 예부터 독서는 뿌리 깊은 상류사회의 전통이었다. 이율곡은 34세에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었다. 독서당에서 책을 읽으며 매달 제출해야하는 월과(月課)로 지은 글을 묶은 것이었다. 호당록(戶堂錄)은 명문가의 긍지요 자랑으로 삼고 있다.

사가독서제도와 독서당은 1504년 갑자사화 이후 폐지되기도 했었는데 중종 12년(1517) 두모포(豆毛浦, 현玉水洞)에 동호당(東湖堂)을 세웠다. 조선 7대 임금 세조(世祖)는 집현전(集賢殿)을 혁파 폐지시켰으니 독서휴가제도도 고난을 겪었고, 조선조의 말엽 서당폐지까지…. 그러나 학문연구는 계속되지 않았겠나.

옛 두모포(옥수동)의 독서당이 있던 자리에는 독서당마을이 얼마 전까지도 이 곳 주민들은 `한림말'이라 부르며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약수동에서 옥수동을 넘는 길은 `독서당길'로 남아있다. 조선세종, 성종 그리고 정조는 지식경영과 독서경영을 하시어 성공을 거둔 국왕들이시다. 철인군주(哲人君主) 정조대왕은 “삼복더위를 물리치는 데는 독서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책을 읽으면 몸이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마음에 주재(主宰)가 있어서 외기(外氣)가 자연히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하였다.

세종대왕의 `백번 읽고 백번 쓰기(百讀百書)'는 위인들의 과거반성, 현재 생존법을 책에서 터득하게 할 수 있는 모범답안이요 메모광의 시조가 아니었을까.

추사 김정희의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에서 사람의 체취에서 문자향과 서권기가 풍겨 나오려면 어렸을 때부터 책을 가까이 하는 수밖에 없다. 놀더라도 서재에서 놀라. 조선선비 서재 만권당(萬卷堂) 그것은 우리 후세들이 본받아야 될 덕목이 아닐까?

2010년 새해 아침, 해맞이는 개나리동산 응봉산에서 희망의 햇빛을 맞이하였다. 수변도시(水邊都市) 성동구(城東區)에 그렇게 많은 시민들이 살고 있었는가? 저마다 덕담 한마디씩, 희망을 보았다. 이웃사랑을 알았다. 해맞이 행사 뒤에는 응봉산과 대현산(大賢山) 독서당공원을 잇는 생태통로와 독서당 생태공원 Opening Ceremony가 있었다. 응봉산 정상과 독서당길에 다리를 놓아 연결하여 수평으로 연결하여 독서당공원에 진입하도록 설계되어어 있었다. 이제 서울숲, 중랑천, 응봉산, 생태통로, 독서당공원 그리고 호당공원이 연결되었다. 나의 아침 산책길 구간도 더욱 다양해졌다. 옛것이 사라지고, 사라지는 것은 애잔하게 느끼게 마련이다. 이제 성동구청의 공원청사진 속에는 서울 남산과의 연결에 있었다. 남산자락 종남산(終南山)에 독서당공원을 연결하여 남산으로 산책할 날을 기다려본다. 옛날 조선 왕조의 사가독서제도를 생각하면서 구청장님은 새로운 공원 계획속에는 여성들의 편의 시설 특히 화장실 등에 힘을 기울이겠다는 정책은 최근 국가공무원들 중 육아를 위한 재택근무 제도의 시행발표 못지 않는 정책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서울의 달' 홍식이, 춘섭이, 영숙이 그리고 효순이, 그 때 그 시절 그들의 산동네 옥수동에서 계속 꿈을 꾸고 정을 그리워하는 세상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는 심정을 이해하면서 고층아파트 빌딩 숲 속에서 더 이상 방향을 잃지 않게 되었으면….

이정균<성북 이정균내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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