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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급여 전면 급여화'에 의료계 배려는 없었다
`비급여 전면 급여화'에 의료계 배려는 없었다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7.08.14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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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기자는 한 일선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역지사장으로부터 관내 의원급 의료기관들의 평균 건강보험 진료 수입이 공단 지사에 근무하는 부장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에 건물 임대료나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급여 등의 운영비까지 포함하면 영락없이 적자라는 결론밖에 나지 않는다. 지사장은 “이런 상황에도 동네의원들이 버티고 있는 것은 건강보험 진료로 인한 손실을 모두 비급여 진료로 메꾸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지역 의료기관의 요양급여 내역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는 공단 지사장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정도다. 국민 건강의 최일선에서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는 동네의원들이 초저수가로 인한 경영난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보상책인 비급여에 의지해 근근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문재인 정부가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를 골자로 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계획을 전격 발표함에 따라 그나마 버팀목이 됐던 비급여는 썩은 동아줄이 돼버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계획을 발표하면서 그동안 비급여가 의료기관의 수익보전수단으로 활용됐던 현실 등을 감안하여 보험진료만으로도 의료기관 경영이 정상적으로 가능토록 적정수가를 보상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방식이 신포괄수가제 및 선별적 인센티브 확대가 될 것으로 예고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시설과 인력 등이 잘 갖춰진 대형병원으로 쏠림현상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건강보험료 인상 계획도 이번 발표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의 일방적 계획 발표에 의료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장 의협이 반대 투쟁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의료단체들의 성명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구체적인 보상책과 적정 수가 인상, 그리고 건강보험료 추가 인상과 안정적 재원마련대책 등이 전제되지 않고 5년 내 모든 비급여 진료비를 건강보험 급여화하겠다는 발상은 다분히 포퓰리즘적이다. 당장 의료계의 몰락은 물론 건강보험의 미래지속가능성까지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대선 당시 자신들과 의료계의 정책추진방향이 가장 유사하다며 `적정부담, 적정수가'와 `보건의료정책의 위상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집권여당이어서 의료계도 큰지지를 보냈고 새 정부 출범에도 큰 기대를 나타냈지만 이제 이러한 기대는 여지없이 실망과 우려로 바뀌고 말았다.

정부는 이러한 중대한 보건의료정책을 발표하기 이전에 의료계와 논의하는 단계를 거쳐야 했지만 전혀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향후 정책 추진과정에서라도 의료계와 긴밀히 협력해 예상 가능한 폐단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배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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