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에 흐뭇한 달마 복륜<20>
보기에 흐뭇한 달마 복륜<20>
  • 의사신문
  • 승인 2010.03.2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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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품종 중 ‘달마’는 1월에 꽃이 피는 잎이 넓은 보세란의 변종이다. 일반적인 보세란은 잎 길이가 30 cm 이상인데 달마 품종의 경우는 대개 10 cm 내외다.
 한나절 짬을 내 가까운 산이라도 잠시 다녀오고 싶지만 무엇 때문에 늘 그리도 바쁜지 몇 달 째 마음만 다녀오곤 합니다. 그러던 차에 요행히 양재동 꽃시장 근처를 지날 일이 생겨 일을 마치고 꽃구경을 했습니다. 온실 상가 문을 열고 들어설 때의 습한 공기 냄새와 꽃과 나무 냄새가 후욱하고 온몸으로 퍼져갑니다.

이리 저리 다니며 느릿느릿 온갖 생김새의 화초와 나무를 구경했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난 생각뿐입니다. 서양난들의 자태와 색은 눈길을 끌만합니다. 사람들은 어디서 저렇게 예쁘고 귀한 난들을 찾아냈을까요. 처음 보는 난을 열대의 어느 숲에서 발견한 사람의 기쁨은 얼마나 컸을까요. 지금까지 남들이 보지 못했던 귀한 품종의 난을 찾아 온갖 고생을 한 사람들 덕에 이렇게 한가하게 그 자태에 빠져드는 호사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래 전에 가끔 들렀던 난 가게는 아직도 그 자리에 예전 모습 그대로 있었습니다.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아주머니는 엊그제 전화로 주문을 했던 그 사람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따뜻한 차를 내옵니다. 찻잔을 손에 들고 난대에 전시되어 있는 화분들을 느긋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오래 전에 두 촉짜리 달마 중투를 구입해서 키우다가 한 겨울 추위에 잃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그 때는 엄청 비싼 값에 샀을 것이라며 아까워합니다. 사실 내겐 분수에 맞지 않는 비싼 난이었습니다. 비싼 난이지만 잘 키워서 세 촉, 네 촉, 다섯 촉으로 번식이 되면 본전을 찾고도 남을 것이라는 얄팍한 계산을 앞세워 거금을 쓰고 교훈만 하나 얻었습니다.

1630년대에 네델란드에선 튤립 투기 열풍이 불어 어떤 희귀종 한 뿌리가 당시 암스테르담 시내에 있는 집 다섯 채 값으로 거래된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한 광적 투기가 한순간에 시들며 시장이 붕괴되고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난이 좋아서 큰돈을 썼다는 것은 변명일 뿐이고 속된 마음이 앞선 투기에 불과한 행동이었습니다.

그 때 귀하다는 달마 중투가 전시되어 있던 자리에 비슷한 품종의 단엽종 보세란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10년 전이라면 달마 중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가격으로 거래되었을 품종들인데 지금은 그 때 가격의 이십분의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잎 가장자리에 넓고 깊은 무늬를 가진 화분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복륜이라는 부르는 무늬입니다. 한 눈에 반해버렸습니다. 잎 길이가 10센티미터 남짓한 세 촉이 참으로 씩씩하게 보입니다. 앙증맞은 새 촉도 올라오고 있습니다.

사무실 창가에 두면 들어오고 나가면서 보기에 좋을 듯해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화분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 좀 작고 공기가 잘 통할 것 같은 다른 화분을 골랐습니다. 사실 화분은 핑계일지도 모릅니다. 뿌리 전체를 보고 싶었는데 그냥 쏟아서 확인해보고 싶다고 하기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새 화분에 난이 의젓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십만 원이 넘는 대금을 선뜻 치렀습니다. 그냥 흐뭇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이걸 잘 길러 팔아서 이문을 남기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사무실 동료들과 함께 즐기고 싶을 뿐입니다. 올 봄은 달마 복륜의 새 촉을 바라보며 지나갈 것입니다.

오근식 <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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