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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지혜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67〉
의사신문 | 승인 2017.08.07 10:08

*이번 8월 6일이 은사 고창순 교수님이 돌아 가신지 5주년 되는 날이다. 핵의학 분야에서 선생님의 뛰어난 업적과 헌신적인 제자 사랑을 기리며 이 글을 쓴다.

팔십 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고창순 선생님은 아주 지혜로웠다. 학교 생활과 학회 활동뿐 아니라 다른 세상살이에서 문제나 갈등이 생기면 의례 의논의 대상이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상의하면 바로 의견을 주시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아도 언제나 가장 적절한 해결책이었다. 마치 벽에 공을 던지면 바로 튀어나오듯이 지혜로운 정답을 말씀하셨다. 나는 선생님의 이 탁월한 능력이 워낙 총명하시고 인생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선생님이 필생의 과업으로 삼은 것은 우리나라 핵의학의 탄탄한 구축과 융성이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인재를 발굴하여 키우는 한편, 능력을 발휘하도록 여건을 만들었다. 어느 교수 보다 정성으로 후학을 다듬고 조직화하여 당신의 꿈대로 성과를 이루었다. 마치 훌륭한 목수가 대들보가 될 나무를 찾아내어 깎고 맞추어서 큰 집을 짓는 것처럼.

먼저 씩씩하고 외향적인 이명철 선생님을 찾아내어 차기 리더로 내세웠다. 투지있고 근면한 이 후계자에게 거시적 안목, 대인관계의 기법을 전수하여, 핵의학의 개척자 역할을 기대 이상으로 수행하게 하였다. 다음으로 내성적이고 온순하나 다소 학구적인 나를 선택하여 집안을 결속시키며 내실을 다졌다. 그 후 지적으로 아주 뛰어난 이동수 선생을 발탁하여, 새로운 첨단 핵의학 분야를 개척시키는 일을 맡기셨고, 영리하고 부지런한 강건욱 선생이 뒤를 잇게 하였다. 여기에 핵의학에 필요한 약학과 공학 전공으로 헌신적인 정재민, 이재성 선생을 뽑아 훌륭하게 키우셨다. 개성이 서로 다른 인재들이 조화를 이룬 우리 교실은 은사님이 일생을 바쳐 만든 작품이었다.

이를 주축으로 전국의 핵의학 전공자들이 가족 같은 애정으로 단합하여, 우리나라 핵의학은 지난 40여년 동안 꿈 같은 성과를 얻었다. 1990년대에 핵의학 교실과 전문의 제도를 신설하고, SPECT와 PET 시설을 가동하고 방사성핵종 치료를 개발하여 현재 200여 개 병원에서 핵의학 진료를 시행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매년 핵의학 촬영을 100만 건, 핵의학 검사를 1500만 건을 시행하고 4만 명의 환자가 핵의학 치료를 받고 있다. 이에 필요한 많은 시약과 기구도 이미 국산화되어 수출까지 하고 있다. 학문적으로도 급성장을 이루어 우리나라가 미국핵의학회 연례 학술대회에서 발표 연제 수가 세계 3, 4위에 이를 정도로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다.

지금은 우리의 성공적인 경험을 전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15년 전에 아시아지역핵의학 협력기구를 만들어 아시아 후진국에 접목하고 있다. 마침내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이명철 교수가 회장인 세계핵의학회 회장국이 되어 국제사회에 일조하였다. 더욱이 자랑스러운 것은 우리의 리더십을 인정받아 2020년부터 이동수 교수가 또다시 세계핵의학회 회장을 맡게 된 것이다.

고창순 선생님은 제자들이 핵의학 분야를 벗어나 외부로 성장하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다. 일찍이 이명철 선생님을 원자력계에 진출시켜 과학기술한림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부위원장 같이 의학 분야 대표로 자라게 하셨다. 또, 10 여 년 전에 우연히 수필을 쓰기 시작한 나를 북돋아서 인문학적 소질을 개발시켜 우리 병원 의학역사문화원장을 맡고 인문의학계에 진출하도록 격려하셨다.

여느 의대 교수님과는 달리 선생님은 당신이 의학 외에도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관심 있는 인문·사회·경제 기사를 꾸준히 스크랩하셨다. 대화나 사색 중에 생각이 떠오르면 선생님이 직접 도안한 메모지에 틈틈이 정리하셨다. 가끔 우리에게 어떤 사안의 특징이나 요점을 일러주시곤 하셨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검찰의 속성에 대해 “대통령도 검찰의 조사가 나오면 피신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마치 작금의 상황을 예견하는 듯 하셨다.

문제가 되는 일이 생기면 선생님은 뒤에서 타인을 비판하기보다는 자신이 앞장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셨다.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얻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태를 분석하여,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대책을 세우고, 추진력 있는 노력으로 성공적인 마무리를 하셨다. 결과는 대부분 서로 화합해 win-win 하고 한 단계 더 발전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노인학에 관계되는 유사 학술단체끼리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통합하여 `노인과학학술단체 연합회'를 구성해 공동 학술대회를 개최하도록 하셨다. 자연히 새로운 분야에 관심이 많아 의공학, 의료정보, 호스피스 분야의 창시자로 활약할 수 있었다. 이것은 청년기에 생긴 암의 극복과정에서 형성된 선생님 특유의 무욕(無欲) 에너지와 긍정적인 태도의 결산이었다.

젊은 시절에 선생님 지혜에 감탄하면서 나도 그 나이가 되면 비슷해 질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60대 중반에 들어선 나이에도 선생님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평생 학교에 계셨던 선생님이 특별히 다른 인생경험을 많이 했을 이유도 없다.

최근에 와서야 나는 선생님의 이러한 지혜가 어디서 나왔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사모님 말씀이 선생님이 작성하고 정리한 수많은 메모장 더미가 집에 있단다. 새벽잠이 없으신 선생님은 매일 3, 4시에 일어나 출근 전까지 여러 생각을 정리하고 메모했다는 것이다. 학문적인 내용도 물론 있었지만 그 못지않게 핵의학 주변의 상황, 학과와 학회의 운영에 대한 내용이 적지 않고, 제자들의 현재와 앞날의 계획에 대한 내용도 있다고 한다. 나에 대한 생각도 제법 많았다고 하면서 웃으신다.

선생님의 예지는 다름아닌 당신이 미리 우리의 문제점을 찾아내 숙고한 노심초사(勞心焦思)의 결과였던 것이다. 객관적으로 현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앞으로 생길 수 있는 갈등과 사태를 예측하여 가능한 최선의 대책을 세우신 것이다. 당연히 제자들의 같은 질문에 정답을 바로 주실 수 있었던 것이다.

의학 진흥, 제자들의 육성, 선진 사회로의 발전 방안을 메모장에 꼼꼼하게 적은 낯익은 선생님의 글씨를 떠올리니, 스승님의 지혜를 앞서 그 인품과 우리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이 먼저 느껴진다. 이 글을 마치면서 나는 또 하나 은사님께 새삼스럽게 배운다. “인생사의 참된 지혜는 똑똑하고 냉철한 두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애정 어린 따뜻한 마음에서 나오는 법이다.”

정준기(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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