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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슈만 피아노오중주 Eb장조 작품번호 44
로베르트 슈만 피아노오중주 Eb장조 작품번호 44
  • 의사신문
  • 승인 2017.07.17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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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403〉

■내용과 형식이 이상적으로 화해를 이룬 최초의 피아노오중주

젊은 시절 때때로 실내악 작품을 작곡하긴 했지만 슈만은 184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장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6월과 7월 세 곡으로 구성된 현악사중주 작품번호 41의 작곡을 끝마쳤고, 10월에는 피아노오중주 Eb장조를, 11월에는 피아노사중주 Eb장조를 작곡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후일 개정을 한 〈환상 소곡집〉과 〈안단테와 변주곡〉의 초본을 썼다. 이는 슈만이 피아노만으로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한 프란츠 리스트가 1839년부터 삼중주, 사중주, 오중주 등의 실내악을 작곡해보라는 편지를 보내자, 이에 고무된 슈만이 많은 실내악을 작곡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는 가히 슈만의 `실내악의 해'라고 부를 만하다.

이보다 앞서 슈만은 1841년 11월 아내인 클라라와 함께 바이마르에서 환상곡을 발전시킨 교향곡 제1번과 여러 가곡들을 선보였으나, 이듬해 2월까지 브레멘, 함부르크 등을 방문했을 당시 아내의 피아노연주회를 보조하고 있는 자신의 역할에 불만을 품게 되었다. 이로 인해 클라라는 한 달 동안 코펜하겐으로 연주회 여행을 떠났고, 그 사이 슈만은 홀로 라이프치히로 되돌아왔다. 깊은 우울감에 빠진 그는 작곡이 손에 잡히지 않아 대위법과 푸가에 몰두하였고,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등을 연구했다. 특히 베토벤을 연구한 뒤에는 보다 상징적인 음악형식에 자신감을 갖게 되어 본격적으로 실내악을 작곡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이렇게 순수 현악기를 위한 실내악 작품에 대해 집중적인 연구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악기인 피아노에 대한 열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의 실내악 작품을 보면, 피아노가 수반된 작품에서 현악기들은 피아노를 따르거나 뒷받침하며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 피아노오중주는 그의 실내악 작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곡이며 내용과 형식이 가장 이상적으로 화해를 이루고 있는 고전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인해 다행히 부부 사이도 다시금 화해를 이루게 되었는데 클라라에게 이 작품을 헌정하며 자신의 변치 않은 사랑을 확인하였다. 이후 몇 차례 수정을 거쳐 1843년 1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클라라의 연주로 공개 초연되었다. “너무 라이프치히적이다”라고 이 작품을 평가한 리스트는 지나치게 고전적인 모습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이 작품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갔다. 피아노와 현악사중주가 함께하는 이 피아노오중주라는 형식의 작품을 최초로 작곡한 사람은 슈만이 되었다. 피아노가 가세한 실내악 장르 중 가장 높은 곳에서 빛을 발한 이 형식은 훗날 브람스를 비롯한 드보르자크, 포레, 엘가, 레거, 쇼스타코비치 등이 더욱 발전시켜 나아갔다.

언뜻 보면 이 작품은 각기 다른 개념의 회화가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인 고전주의 실내악에서는 각 악장이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네 개로 구성된 일련의 서정적인 세밀화를 이룬다. 하지만 슈만은 자신의 시적 감흥을 음악으로 환원하는데 이러한 형식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이 작품에서는 악장마다 독립적인 세계를 환상적으로 이어 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위풍당당한 소나타 형식의 제1악장, 장송 행진곡의 제2악장, 환상곡풍의 스케르초인 제3악장, 열정적인 푸가토인 제4악장으로 이어지는 이미지는 젊은 시절 피아노 작품인 〈나비〉나 〈크라이슐레리아나〉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극적인 스토리텔링에 비견할 만하다.

△제1악장 Allegro brillante 두 개의 주제가 등장한다. 제1주제는 반짝거리는 빛을 발하는 멜로디 라인이 인상적이고, 제2주제는 서정적이고 겸허하며 온화하다. 피아노는 이 주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며 현악기들을 아우르는 듯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제2악장 In mode d'una marda 실내악의 장송행진곡으로 터벅거리는 듯한 음울한 선율과 조용히 침잠하는 낭만적인 선율, 그리고 역경을 딛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빠른 선율 등 주제적인 성격인 세 개의 주요 악상들이 전개되면서 진지하고 비통한 분위기를 불어넣는다. 피아노의 간헐적인 리듬은 차츰 조용해지며 마침내 화음의 빛 구름 속에서 영롱하게 해체된다.

△제3악장 Scherzo: molto vivace 활기찬 상승 스케일과 이에 대한 투영으로 하강 스케일이 대비를 이루는 주제가 활력을 더하고 있다.

△제4악장 Finale: Allegro ma non troppo 첫 악장의 주제가 다시 나오면서 모든 악기가 동원되어 열정적으로 연주하다 슈만 특유의 극도의 긴장 상태와 환상적인 분위기가 펼쳐진다.

■들을 만한 음반
△레너드 번스타인(피아노), 줄리아드 현악사중주단(CBS, 1965)
△외르그 데무스(피아노), 바릴리 현악사중주단(Westminster, 1956)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테르(피아노), 보로딘 현악사중주단(Teldec, 1994)
△아르투르 루빈스타인(피아노), 과르네리 현악사중주단(RCA, 1966)
△메나헴 프레슬러(피아노), 에머슨 현악사중주단(DG, 1995)
△마르타 아르헤리치(피아노), 도라 수바르츠베르크(바이올린), 루시 홀(바이올린), 노부코 이마이(비올라), 미샤 마이스키(첼로)(EMI, 1994)

※ `클래식 이야기'는 오재원 교수의 저서인 `필하모니아의 사계 Ⅰ·Ⅱ·Ⅲ'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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