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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포커스] 공단-심평원 해묵은 갈등 재연 '국민·의료계는 씁쓸'
[이슈&포커스] 공단-심평원 해묵은 갈등 재연 '국민·의료계는 씁쓸'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7.06.26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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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운영하는 두 축의 할거주의에 `곱지않은 시선' 집중

공단노조, 심평원에 '유사보험자 역할·자보사 2중대' 비난
심평원, 사실 왜곡·국민여론 호도 심사평가 충실수행 반박

의료계, 공단은 국민 핑계로 이익 몰두 권한 추가 어불성설
심평원은 공급자와 소통 없는 행정 위주 심사로 비판

건강보험제도 설립 40주년을 기념해 지난 2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심평원)이 공동주최한 국제심포지엄이 성대하게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는 국내·외 저명 보건의료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WHO, OECD, World Bank Group 등 국제기구와 각국 건강보장기관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성과와 위상을 조명했다.

반면 같은 날 오후에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를 비판하는 토론회가 열리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공단과 심평원의 역할이 분리돼 공단이 보험자로서의 제 역할을 못하고 있어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 토론회가 건보공단 노동조합 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것이다.

40살을 불혹(不惑)의 나이라고 한다. 불혹이란 무엇에 홀려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지난 1977년 도입된 이후 40주년을 맞았음에도 불혹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무언가에 홀린 듯한 모습으로 해묵은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5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최초 도입된 이후 12년 만에 전국민 의료보험 달성, 보험재정통합(직장재정과 지역재정 통합), 국민건강보험공단 출범(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과 139개 직장조합 통합), 심사평가원 독립, 4대 사회보험료 통합 징수, 노인장기요양보험 실시, 공단과 심평원 본원 원주 이전 등 큰 변화를 겪으며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음에도 건강보험 제도 운영의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공단과 심평원이 외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할거주의(割據主義)에 매몰돼 서로 으르렁대기 바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싸움의 포문은 공단이 먼저 열었다. 건강보험 설립 40주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난 13일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이하 건보노조)이 공단과 심평원이 각 기관 설립취지에 맞게 운영돼야 한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하면서 심평원에 대한 비난을 쏟아낸 것이다.

건보노조는 “국민건강보험법은 공단을 보험자로, 심평원을 심사와 평가기관으로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0년 건강보험 통합 이후 17년 동안 양 기관 기능과 역할이 계속해서 왜곡돼 심평원이 본연의 역할인 심사와 평가에만 충실하지 않고 유사보험자 역할을 하며 보험자인 공단의 영역을 침범해 존립근거와 논거를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특히 심평원의 자동차보험 심사 업무에 대해 “민간재벌 자동차보험사들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개인질병정보를 자동차보험 심사에 활용해 기왕증 여부 등을 가려주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동차보험 환자들을 건강보험환자로 세탁해 주며 공적 보험을 크게 훼손하고 있고 자동차보험의 보장률을 하향시켜 자동차 보험사들이 지불해야 할 보험금을 건강보험재정 부담으로 전가시켰다”고 지적했다.

건보노조의 공격은 여기서만 그치지 않고 공단과 심평원 공동주최 국제심포지엄이 열리는 날과 같은 날 오후에 건보노조, 무상의료운동본부, 인재근·김광수·윤소하 국회의원 주최 `국민건강보험공단 보험자 역할 재정립 방안'을 주제로 한 국회 토론회 개최를 알려 심평원을 자극시켰다.

공단노조의 계속된 도발에 심평원노조도 급기야 15일 성명을 통해 “공단이 사실관계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구태적 헐뜯기로 일관돼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국민여론을 조작하고 호도하는 허위사실을 바로 잡아 더 이상의 불필요한 논쟁을 불식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심평원 노조는 “공단노조의 주장과 달리 심평원은 국민건강보험법에 규정된 대로 요양급여기준 제정, 약가관리, 조사연구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면서 “심평원의 심사 및 평가 관련 인력(`17년 5월 정원 기준)은 전체인력(2,519명)의 64.7%(1,630명)이며, 심사평가원의 심사기능은 진료비 조정뿐만 아니라 부당청구 사전 예방, 사후관리 등을 포함하는 진료비 재정지출 전반을 관리하는 개념으로, 이에 대한 재정절감 효과를 종합하여 환산하면 심사조정률은 2.23%에 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심평원이 자동차보험사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공단노조의 주장에 대해서도 “오히려 자동차보험 심사를 통해 필요한 제반비용(인건비, 사업비, 사무실임차료, 사무용품 등)을 위탁계약에 따라 위탁자(보험회사·공제조합)로부터 받고 있으며, 건강보험 재정과는 전혀 무관한 특별회계로 관리하며, 기왕증 심사는 자동차보험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심사 참고자료를 활용하여 판단하고, 업무 효율화를 위해 건보재정과는 무관한 보험사 및 공제조합으로부터 확보한 심사수수료로 차세대심사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국민건강과 공적보험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이에 공단은 또다시 재반박성명을 통해 심평원의 자동차보험 심사를 집중 겨냥해 `건강보험 파괴행위'라고 강력 비난했다.

건강보험제도 운영의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양 기관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심평원이 설립된 지난 2000년부터 공단은 심평원 중심 진료비 청구·지급 체계를 공단 중심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심평원이 지난 2015년 개최한 국제행사(세계 보건의료구매기관 네트워크 구축)에서도 `보건의료 구매기관(Purchasing) 역할' 논쟁으로 양 기관이 수차례 비난 성명을 주고받으며 갈등을 겪다가 급기야 행사 당일에는 일부 공단 노조원들이 노조 복장을 한 채 행사장을 찾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황병래 건보공단 노조위원장은 지난 20일 토론회에서 “현재 건강보험 거버넌스는 보험재정의 수입과 지출 결정 과정에 가입자 참여 및 보험자의 책임과 역할이 지극히 제한돼 있어 구매·청구에서부터 심사·사후에 이르기까지의 거의 모든 급여지출 부문에 책임이나 관리 권한이 없어 심평원이 결정한 급여비 지급요구에 ATM기기처럼 자금집행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택 심평원장은 지난 4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양 기관 기능 조정 문제와 관련해 “현재 시대적 흐름은 전문화 및 분권화로 공단과 심평원 모두 고유의 업무가 있는 만큼 국민건강 증진에 중점을 두고 고유업무를 계속 발전시키는 한편 상호협조를 통한 상생발전을 이뤄야 한다”고 밝혔다.

공단과 심평원이 업무영역을 두고 다투는 것에 대한 외부의 시선은 곱지 않다.

특히 의료계는 공단에 대해 본연의 업무인 징수업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단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보험자의 역할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고위 관계자는 21일 기자와 만나 “공단이 보험자로서 마땅한 권한 부여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착각”이라면서 “독일 의료보험의 경우 지역 또는 직장에서 자발적으로 설립된 조합이 보험자로 발전한 형태라서 그에 따른 권한 부여가 가능할지 몰라도 우리나라 건보공단은 설립 자체부터 준정부기관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공단이 자신들이 마치 국민의 대표 또는 대리인인양 행동하며 그에 걸맞는 권한 부여를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공단이 본연의 역할인 징수업무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무조건 권한을 달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송파 세 모녀 사건'을 봐도 알 수 있듯이 공단은 생계형 체납자 문제에 대해서도 너무나 무관심하고 결국 보험료를 제대로 징수하지 못하고 결손처리나 남발하고 있는데 그럴 게 아니라 의료급여나 차상위 계층 등록 등 국민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단의 그간의 행태를 지켜보면 국민을 핑계 삼아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있는 느낌인데 공단은 어디까지나 보험료 징수업무를 맡은 행정기관일 뿐이다”면서 “공단은 그보다 공급자와 협업해 국민건강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등에 집중해야 하고 그렇게 공단의 진정성이 인정된 다음에야 그에 따른 권한 부여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정작 심평원은 업무가 너무 많아 업무 폭증을 호소하고 있는데 공단은 오히려 업무를 더 달라고 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공단에 유휴인력이 많고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면서 “지난해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대해 1만 여 명에 달하는 노조원들이 거의 한 달 동안 출근하지 않았을 때도 업무마비가 거의 없었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그는 심평원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의료기관들을 잘 믿지 못하고 행정적인 심사만 하는 게 문제이고, 심사조정삭감 시 조정내역서조차 공급자들에게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불통을 거듭하고 있다”면서 “심평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재정논리에 굴하지 않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심사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단과 심평원의 갈등이 지금처럼 계속되는 것을 막으려면 차라리 일부 타 국가들처럼 건강보험료 징수 시 심사비를 따로 걷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심평원도 법령상 주어진 업무범위 내에서 투명하고 계획성 있게 운영 효율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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