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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작품번호 43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작품번호 43
  • 의사신문
  • 승인 2017.06.1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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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399〉

■비르투오소 피아니즘의 눈부신 광채

라흐마니노프는 1917년 스웨덴 연주 여행 도중 서방으로 망명한 후 생계를 위해 주로 피아니스트로 활약하였다. 창작에는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던 그는 피아노협주곡 제4번, 교향곡 제3번,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교향적 무곡〉 등 소수의 작품만을 남겼다.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은 그런 소수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대표작이다. 미국 음악의 영향을 반영했던 피아노협주곡 제4번에 이어 그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협주곡으로 피아노의 화려한 명인기와 관현악의 풍부한 색채의 정교한 짜임새가 돋보이는 만년의 걸작이다. 이 작품의 절묘함은 가히 20세기에 작곡된 모든 피아노협주 작품 중 최고라 칭송할 수 있고 라흐마니노프의 고유한 `비르투오소 피아니즘'은 여기서도 눈부신 광채를 뿜어내고 있다. 스위스에 머물던 1934년 여름, 루체른 호숫가의 별장에서 불과 한 달 보름여 만에 완성되어 그 해 11월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에서 초연되었다.

기본적으로 변주곡의 성격을 지닌 이 작품은 파가니니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24개의 카프리치오〉 중 마지막 곡의 주제를 24개의 변주곡으로 재창조했다. 파가니니는 19세기 초 유럽 음악계를 평정했던 비르투오소 바이올리니스트로 이 무반주 카프리치오는 자신의 모든 연주 기법을 총망라한 스물네 곡의 독주곡이다. 훗날 브람스와 리스트도 이를 바탕으로 작곡한 적이 있으며, 이 시대에도 수많은 다양한 악기의 연주곡으로 재탄생되고 있다.

이 작품엔 그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현란한 색채와 악마적 기교, 번뜩이는 재치와 유머로 가득 차 있다. 아울러 라흐마니노프는 이 `카프리치오 주제'에 대비되는 또 하나의 주제로 `죽음' 또는 `심판의 날'을 상징하는 중세 성가 `디에스 이레(dies irae)' 선율을 도입함으로써 작품의 독창성과 구성미를 강화하고 심오한 아우라를 부여했다. 작품은 크게 세 부분으로 빠르게(제1∼10변주), 느리게(제11∼18변주), 빠르게(제19∼24변주)로 구분할 수 있어 3악장으로 구성된 협주곡 구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Allegro vivace 짤막한 9마디에 걸친 관현악과 피아노의 서주가 주제를 암시한 다음 곧바로 주부로 진입한다. 통상적인 변주곡의 관례를 깨고 주제 제시에 앞서 제1변주가 먼저 나온다. `카프리치오 주제'가 바이올린으로 제시되고, 제2변주부터 피아노가 전면에 나선다. 제5변주까지는 피아노와 관현악의 얽힘이 두드러지면서 숨 가쁘게 진행되다가 제6변주로 접어들면 잠시 숨을 고르는 장면이 연출된다. 제7변주에서 또 다른 주제인 `디에스 이레' 선율이 첫 주제와는 대조적인 무거운 표정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유래한 어둡고 악마적인 분위기가 제10변주까지 지속되면서 리스트풍의 변화무쌍한 선율들로 장식된다. 잠시 음악이 멈췄다가 제11변주에서 현이 여리게 연주하는 트레몰로 위로 피아노가 역시 리스트풍의 카덴차를 연주한다. 제12변주에서 미뉴에트 풍으로 다소 정체된 느낌을 유발하지만 피아노의 차분한 움직임 위로 관현악이 한층 다채로운 색감을 자아내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제13변주에서 다시 활기를 되찾고 행진곡풍으로 전개되다 제14변주에서 한 차례 더 고조된 후 제15변주에서 자유로운 움직임으로 나아가다 제16변주에서 흐름은 다시 가라앉고 오보에가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면서 곡 전체의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부드러운 제17변주를 지나서 마침내 유명한 제18변주가 펼쳐진다. 감성적 기운을 가득 머금은 감미로운 선율이 서서히 상승하여 찬란한 고조와 애틋한 비상을 연출하는 이 감동적인 장면이야말로 이 작품의 절정이자 백미라 하겠다. 제19변주 현의 피치카토에 이끌려 피아노가 다시금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마치 곡의 첫 부분으로 돌아간 듯 경묘하고 화려한 움직임을 보이다가 더욱 확대 강화되면서 다시 고조를 향해 나아간다.

제22변주 가장 긴 변주로 행진곡처럼 출발해 피아노가 화음을 연주하면 점차 부풀어 정점에 도달한 후 빠른 패시지를 거쳐 힘찬 카덴차로 마무리된 후 숨 가쁘게 종결한다. 제24변주 피아노가 셋잇단음표와 스타카토를 연주하고 목관의 주제가 나타나 코다에 이르러 `디에스 이레' 선율이 마지막으로 강력하게 나온다.

피아노가 주제의 단편을 연주한 후 마치 촛불을 훅 불어 어둠 속에 빠진 듯 갑작스레 막이 내린다. 이 마지막 변주에서는 피아노의 연주가 극도로 어려워서 탁월한 기교를 요한다. 초연 직전 이 부분을 연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친구인 베노 모이세비치(Benno Moiseiwitsch)에게 고백하자, 크림 드 민트 한 잔을 마셔보라는 조언에 이를 마시고 안정을 되찾아 매우 성공적으로 연주를 마쳤다. 그 후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크림 드 민트를 한 잔씩 마셨다하여 이 변주에는 `크림 드 민트 변주'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들을 만한 음반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피아노), 앙드레 프레빈(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Decca, 1971) △아르투르 루빈스타인(피아노), 프리츠 라이너(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RCA, 1956) △미하일 플레트네프(피아노), 리보르 페세크(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Virgin, 1987)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피아노),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지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RCA,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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