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쇼팽의 애틋한 짝사랑에 대한 영원한 그리움
쇼팽은 피아노협주곡을 두 곡 남겼다. 그 두 곡은 작곡연대와는 달리 순서가 뒤바뀌어 출판되었다. 오늘날 제2번으로 알려진 이 작품이 사실상 쇼팽의 첫 번째 협주곡인 것이다. 이 첫 번째 협주곡은 1829년 작곡되어 1836년 출판되었다.
1829년 여름 빈에서 피아니스트로 데뷔하여 호평을 받은 쇼팽은 바르샤바로 돌아가 9월부터 이 협주곡의 작곡에 매달렸다. 당시에 피아니스트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작곡한 협주곡을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연말 즈음 완성된 이 작품의 공식 초연은 이듬해 3월 바르샤바 국립극장에서 쇼팽 자신의 독주로 이루어졌다. 쇼팽의 첫 귀국 연주회이기도 했던 이 공연은 입장권이 매진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실은 불행한 일이겠지만 나에겐 이상의 여인이 있다네. 그녀와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반년 동안이나 무언중에 그녀를 충실히 사모해왔다네. 나는 밤마다 그녀를 꿈꾸고 있다네. 그리고 그녀를 생각하며 이 피아노협주곡 아다지오를 작곡했지.” 1892년 10월 친구 티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쇼팽은 자신의 첫 협주곡의 작곡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그 편지 속에 등장하는 이상의 여인이란 바로 그의 첫사랑 콘스탄차 그와트코프시카로 쇼팽과 동갑이자 바르샤바 음악원 동문으로 아름답고 뛰어난 소프라노 가수였다.
쇼팽은 그녀를 깊이 사모했지만 워낙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 탓에 끝내 고백할 용기를 내지는 못했다. 그녀는 이듬해 10월 바르샤바 국립극장에서 열린 쇼팽의 고별연주회에 출연하여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지만, 결국 쇼팽은 그녀에 대한 사랑을 영원히 가슴 속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은밀하고 애틋한 사랑에서 탄생한 이 협주곡은 청년 쇼팽의 영원한 아쉬움이자 그리움이었으며 이루지 못한 꿈을 향한 끝없는 동경이자 탄식이었다.
그런데 이 곡이 콘스탄차가 아닌 다른 여인에게 헌정되었다는 사실에서 흥미로운 상상을 유추해볼 수도 있다. 그 주인공은 델피나 포토츠카 백작부인으로 그녀는 쇼팽이 파리로 이주한 후 지속적인 친분을 유지했고, 임종을 앞둔 쇼팽 곁에서 노래를 불러주었던 여인이기도 하다.
일설에는 그녀가 쇼팽의 연인이었다고도 전해진다. 어쩌면 이 협주곡의 이면에는 우리 생각보다 더 은밀한 사연이 감추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피아노협주곡 제2번은 쇼팽의 나이 열아홉 살의 작품이다. 훗날 그의 완숙한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내용적인 깊이나 기법상의 완성도는 기대할 수 없지만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지닌 순수하고 수줍은 청년의 따스한 열정과 섬세한 손길에서 피어난 솔직하고 신선한 감각이 알알이 박혀있는 주옥같은 작품으로 청년 쇼팽의 순수한 영혼의 산물이다.
△제1악장 Maestoso 우아하고도 우수어린 표정과 극적인 흐름을 아우르고 있다. 질풍노도 같은 정열과 우수 어린 고뇌가 교차하는 제1주제는 바이올린이 우수어린 선율을 노래하고 이어 제2주제는 오보에로 제시되면서 피아노의 화려한 움직임과 관현악의 긴장감 넘치는 배경이 돋보인다. 이 곡이 바르샤바에서 공개되었을 때 이 악장이 끝나자마자 큰 박수가 터져 나왔는데 그에 대해 쇼팽은 “대중이 진지한 음악을 어떻게 음미해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야”라며 만족해했다고 한다.
△제2악장 Larghetto 쇼팽의 편지에서 언급한 `아다지오' 악장으로 더없이 온화하고 감미로운 노래 속에서 순결하고 영롱한 시정이 솟아오르고 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콘스탄차의 이미지가 투영된 야상곡풍으로 달빛 아래 짝사랑에 번민하는 감수성 예민한 젊은이의 상념과 환상이 담겨져 있는 듯하다.
△제3악장 Allegro vivace 마주르카풍의 춤곡 리듬 위에 화사하게 반짝이는 색채와 재기발랄한 익살이 사뿐히 실려 있는 피날레 악장이다. 마주르카는 3박자 리듬에 기초한 폴란드 민속춤곡으로 쇼팽이 평생 동안 마주르카에 천착하였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 악장은 이제까지의 우아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은근히 토속적인 색채를 머금고 있으며 중간부에서는 그의 유머러스한 표정마저 엿보인다.
■들을 만한 음반
△아르투르 루빈스타인(피아노), 스테니슬라프 스코로바츠비스키(지휘), 런던 뉴심포니 오케스트라 (RCA, 1961)
△샹송 프랑스와(피아노), 루이 프리망(지휘) 몬테카를로 국립 오케스트라(EMI, 1967)
△크리스티안 짐머만(피아노),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지휘), 로스엔젤로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79)
△마리아 조앙 피레스(피아노), 앙드레 프레빈(지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94)
△마르타 아르헤리치(피아노),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지휘),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DG, 1978)
△알렉스 바이젠베르그(피아노), 스테니슬라브 스크로바체스키(지휘),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EMI, 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