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인데도 해발 2500미터이상 지점엔 아직도 잔설이 성성하고, 야생화가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흐드러지게 핀 고산화원과 수목한계선 위의 완만한 구릉지에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초원은 우리들의 넋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자태와 웅장함을 뿜어내는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 수줍은 듯 구름 속으로 자주 그 모습을 감추며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천지.
특별한 설레임도 없이 차가운 머리만으로 떠난 백두산 산행이었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 뜨거움이 되어 돌아온 3박4일이었다.
만주 벌판을 누비며 호령하던 광개토대왕과 고구려 인들의 옛 영화를 생각하며 중국 동북 3성(요녕성, 흑룡강성, 길림성)이 우리 땅이기를 갈망하는 한민족의 한과 열망은 천지를 가득 채우고 장백폭포와 이도백하를 거쳐 송화강으로 유유히 흐르는 듯 했다.
아! 백두여, 천지여….
아직도 진한 여운이 가슴 깊은 곳에 남아있는 것 같다.
드디어 출발
드디어 백두산 트레킹의 첫날이 밝았다. 새벽 4시 잠에서 깨어 간단하게 샤워를 마친 후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4시 50분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공항버스에 몸을 싣고서야 마음의 여유를 가져 본다. 오전 6시 30분 인천국제공항 3층 D카운터에서의 모임시간을 맞추기 위해 부족한 수면시간도 뒤로하고 분주히 서둘렀기 때문이다.
서울시의사산악회(회장·徐允錫 서초 성누가의원장)는 창립 10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7월 7일부터 10일까지 3박4일간 장장 1900킬로미터를 이동하며 백두산 서파·북파 종주와 함께 우리민족의 숨결을 더듬었다.
회원 가족을 포함하여 총 25명이 참가한 이번 백두산(최고봉 장군봉 해발 2749미터) 산행은 2003년 일본 북알프스 종주등반(최고봉 오꾸호다카다케봉 해발 3190미터)과 2004년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nnapurna Base Camp:ABC 해발 4130미터) 트레킹에 이은 3번째 해외원정등반.
오전 8시 35분 서울시의사산악회 회원 가족 등을 태운 대한항공 KE831기가 인천국제공항을 이륙, 중국 심양국제공항으로 향했다. 1시간 45분 후 심양공항에 도착한 일행은 공항으로 마중 나온 전용버스에 올랐다.
우리보다 1시간 늦은 이 곳 시간으로 10시 30분 우리 일행을 태운 전용버스는 심양공항을 출발, 길림성 통화시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현지가이드 이영근씨가 여권을 분실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하는 한편, 지금의 심양시가 예전에는 만주 봉천시로 불렸다는 말과 함께 중국의 민족 구성을 비롯하여 1995년 한국드라마 방영이후 한국과 한국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좋다고 설명한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도로포장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시원하게 뚫린 왕복 6차선 고속도로를 빠르게 질주해 간다. 도로 양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이 중국대륙의 광활함을 우리에게 과시하는 듯 하다.
30분 가량 달려가자 차창 밖으로 아파트 공사현장인 듯한 곳에 하늘 높이 솟은 기중기가 보이고, 간간이 나타나는 광고 입간판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중국의 모습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소 허름해 보이는 톨게이트를 벗어나 국도로 접어들자 붉은 색을 좋아하는 한족답게 붉은 벽돌 집들이 자주 눈에 띄고 붉은 색 바탕에 노란 글씨가 새겨진 플래카드가 눈길을 끈다.
시간에 쫓긴 우리일행은 낮 12시 20분경 정자가 있는 공터에서 점심을 김밥으로 간단히 해결한 후 계속해서 통화시를 향해 이동했다.
특이한 것은 넓은 대륙임에도 불구하고 국도 변에는 잠시 주차할 곳이 별도로 없고 휴게시설과 화장실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동 중에 주유소가 나오면 그 곳 화장실을 잠시 이용해야만 했다.
통화시까지 가는 국도에는 비포장도로가 자주 나타나는가 하면, 흙먼지 속에서 도로확장공사를 진행 중인 곳이 곳곳에 보인다. 지금 심양에서 통화까지 고속도로 공사 중이란다. 이 공사가 끝나면 이동시간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장시간에 걸친 버스이동이 계속되자 회원들의 지루함을 달래려는 듯 徐允錫회장은 직접 회원 개개인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며 수시로 간식거리를 돌린다. 김진민 총무를 비롯한 훈련팀 일부는 박태규·이상석 고문 등에게 술잔을 권하는 한편, 아예 한쪽에 자리를 잡고 술잔을 돌리며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운다.
심양공항을 출발한지 5시간이 지난 오후 3시 30분 한약제로 유명한 통화시를 거쳐 고구려의 도읍지였던 집안현으로 향했다. 집안현의 인구는 약 20만명으로 이 중 조선족이 1만7000명 정도라고 한다. 특히 이 곳의 자두는 굉장히 맛있다고 현지가이드가 귀뜸한다. 집안현 부근에는 고구려시대 무덤이 1만2000기 정도가 있었으나 지금은 약 7000기 정도만 남아 있다고 한다.
오후 5시 30분 집안현에 있는 장군총에 도착했다. 고구려 장수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장군총의 외형은 거의 完存한 형태의 석릉으로 보존되어 있었으나, 석실은 천정에서 물이 새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부군인 중앙의대 박두병 교수와 함께 이번 트레킹에 참가한 조종남 선생이 장군총 주차장에서 조선족으로부터 산 앵두와 오디를 모두에게 맛보라며 나눠준다.
장군총 앞쪽으로 압록강이 보이고 그 너머로 헐벗은 북한의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모두들 장수왕릉과 북한의 민둥산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듯 분주하다.
곧바로 장군총 지척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광개토대왕릉으로 추정되는 태왕릉을 찾았다. 고구려사의 비밀을 간직하고 광개토대왕의 위대한 업적을 기록한 광개토대왕비는 한국에서 가장 큰 비석으로 414년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 비에는 고구려의 세계관이 담긴 하늘을 지킨다는 뜻의 `守天'이라는 글자가 있단다. 광개토대왕은 주변국을 정복하여 하나의 나라가 되기보다는 고구려의 지배질서 속에서 함께 사는 세상을 지향했다는 것. 중국에 맞서 당당하게 고구려의 천하를 건설한 하늘의 자손들. 그들은 고구려가 세상의 중심임을 이 비에 가득 새겼다고 한다.
`한국의 알렉산더'라고 불리는 우리 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군주 광개토대왕. 드넓은 만주벌판을 누비며 호령하던 위대한 태왕의 목소리와 용맹스런 고구려 기마병의 당당한 말발굽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최근 중국은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로 귀속하려는 음모와 맞물려 이 곳에서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즐거운 여정에 가슴을 아프게 하는 부분이었다.
부인과 함께 이번 트레킹에 나선 이용배 선생은 “한·중 국경을 규정한 백두산 정계비의 토문강은 두만강이 아닌 송화강이 됐어야 했다”며 “일제가 남만주 철도부설권을 보장받는 대가로 청나라 측의 해석을 그대로 인정하는 간도협약을 체결함으로써 우리 땅 간도가 중국으로 넘어가게 됐다”고 개탄했다.
고구려의 부귀영화와 숨결을 느낀 후 오후 6시 45분경 압록강변으로 향했다. 중국 수리부에서 세운 압록강 표지석 앞에서, 또는 건너편 북녘 산하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느라 연신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오후 7시 10분 압록강변의 집안식 불고기 식당에서 저녁식사로 준비된 불고기와 중국 술로 백두산 여행 첫날의 노곤함을 달래며 화기애애한 대화의 꽃을 피웠다. 徐允錫회장은 연신 테이블을 돌며 재미있는 이야기로, 때론 술잔을 돌리며 즐거운 식사시간을 유도해 나갔다.
모두들 약간의 취기가 오른 후 오후 9시경 전용버스 안에서 즐거운 여흥을 가지며 첫 숙소인 통화시 휘풍호텔로 향했다. 밤 11시 휘풍호텔에 도착 후 각자 방을 배정 받은 뒤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중국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백두산 서파 종주
잠깐 눈을 감은 것 같은데 새벽 2시 30분 기상해야 한다며 룸메이트인 강원경 선생이 깨운다. 재빠르게 씻고 나서 감기는 눈으로 새벽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3시 40분 백두산 서파산문으로 향하는 전용버스에 몸을 실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달리는 버스 안에서 모두들 부족한 잠을 채우느라 연신 고개를 흔든다. 어제 저녁에 마신 술 때문인지, 짧은 수면시간 때문인지 머리가 꽤나 무겁다. 버스 안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해 보지만 두통은 쉬 가시지 않는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나눠주는 아침도시락을 조심스럽게 간신히(?) 먹고 나니 하얀 백양목과 하늘을 찌를 듯 가지가 많은 낙엽송이 어느새 차창 가까이 다가선다. 송화강을 건너자 넓은 평야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주위로 산들이 에워싸며 호젓한 산길이 나타난다. 육감적으로 백두산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백두산을 화산활동으로 부식토가 산 정상에 하얗게 쌓여 붙여진 `흰머리 산'이라는 뜻으로 `白頭山'이라고 부르는데, 중국사람들은 청나라 때 백두산을 장백산신으로 봉한 이후 `장백산(長白山:창바이샨)'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휘풍호텔에서 출발한지 4시간이 지난 뒤 백두산 서파산문 근처의 백운봉산장에 도착했다. 이 곳에서 길림성 여행국 소속 직원인 현지가이드 2명이 우리 일행을 반긴다.
모두들 차에서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서파산문으로 이동, 각자 지프에 나눠 타고 임도를 따라 천지로 향했다.
왼편으로 고산화원에서는 눈꽃을 흩뿌려놓은 듯한 애기물매화와 구름국화 군락이 제각각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조금 더 지나자 황홀한 자줏빛의 하늘매발톱 군락이 바람에 맞춰 좌우로 멋진 군무를 연출하고 있었다. 시간에 쫓겨 빠르게 지나가는 지프 안에서만 百花爛漫, 들꽃의 자태를 멀리서 바라봐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고산화원을 지나자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제자하 입구를 알리는 안내 표지판이 나왔다. 이 곳 역시 다음 기회로 돌리고 빠르게 지프는 천지를 향해 내달렸다.
자작나무 숲을 지나 수목한계선을 넘어서자 넓은 구릉지가 펼쳐지고 드넓은 푸른 초원이 끝없이 나타난다. 초록의 잔디로 거대한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푹신푹신한 초록빛이 묻어나는 듯 하다.
약 1시간이 지난 오전 9시 20분경 백두산 서파 5호 경계비 아래 주차장에 도착했다.
각자 산행준비를 마친 후 드디어 천지를 향한 산행이 시작됐다. 그런데 산행 초입에 2개의 굵고 긴 대나무의 중간 부분에 의자를 올려놓은 듯한 `가마'가 눈에 띈다. 2년 전인 2003년부터 노약자들의 백두산 천지관광을 돕기 위해 이런 교통수단이 등장했다고 한다. 3명이 한조가 되어 가파른 계단을 올라 천지까지 태워주는 이 가마는 백두산 관광에서 하나의 특화된 상품으로 발전, 중국 돈 약 500위안(우리 돈 6만8000원)을 내면 편안하게 정상까지 앉아서 오를 수 있다고 한다. 가파른 계단을 20여분 오르니 정말 가마를 이용하는 관광객을 볼 수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계단을 오르는 도중 뒤돌아보니 녹색의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한 넓은 구릉지 초원이 한눈에 들어오고 지프로 올라 온 구불구불한 임도와 백두산 중턱의 천지주차장이 저 멀리 보인다.
천지를 향해 오르는 도중 이번에는 왼쪽으로 아직까지 녹지 않은 커다란 눈덩어리가 나타난다. 녹기 시작한 눈덩어리를 여름철에 밟으니 푸석 푸석한 묘한 느낌이 온 몸을 타고 흐른다.
40여분 동안 가파른 계단을 숨가쁘게 오르니 천지를 둘러싼 봉우리와 저 아래 천지가 드디어 눈앞에 펼쳐진다. 그토록 염원하던 천지를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진다. 화창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천지가 우리 일행을 위해 자신의 속살을 부끄러운 듯 살며시 보여준다.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이내 환호성이 곳곳에서 터진다. 황홀한 천지의 광경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모두들 천지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느라 분주하다.
열 번을 올라야 겨우 한 번 정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천지. 그 장관을 단 한번의 도전으로 볼 수 있었던 서울시의사산악회 회원들은 평소 덕을 많이 쌓았나 보다.
잠시 눈을 오른쪽으로 돌려보니 서파 5호 경계비와 아주 낮은 철책이 있고, 중국군 4명이 그 곳에서 국경을 지키고 있었다. 2명은 개인화기로 중무장했고 2명은 개인화기 없이 월경을 감시하고 있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무리가 5호 경계비와 이들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자도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중국군이 쫓아와 말린다. 혹시 사진을 찍었는지 찍은 화면까지 보여 달라고 강요한다. 자국민들에게는 촬영이 허락되고 한국인에게는 금지시키는 것이 몹시 불쾌했다.
우리 일행이 천지의 비경을 감상한지 10여분 후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광개토대왕의 기마병 무리 같기도 한 구름이 삽시간에 천지를 뒤덮어 버린다. 구름 속으로 숨은 천지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우리의 눈에서 사라졌다. 모두들 천지의 비경을 볼 수 있었던 그 10분을 위안 삼으며 서둘러 산행준비에 나섰다.
우리 일행 25명은 백두산 서파를 종주할 A팀과 5호 경계비에서 하산하여 거대한 금강대협곡과 거대용암이 지하로 흘러 생긴 제자하, 야생화 군락지를 관광할 B팀으로 나누었다. 대다수의 회원들은 A팀을 선택, 이 곳에서 B팀과 아쉬운 이별을 했다.
백두산은 중국에서 10대 명산 중 6번째 명산으로 손꼽힌단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굉장히 많이 찾는다고 한다. 백두산을 찾는 대다수 사람들은 한국인 일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이 잘못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천지주변의 봉우리를 종주하는 산행은 대부분 한국인들이라고 한다. 중국은 아직까지 등산에 대한 인식이 아주 낮고 등산인들도 극히 드물다고 설명한다.
외륜봉을 종주할 우리 일행이 잠시 대열을 정비하는 사이 천지를 뒤덮은 구름이 어느새 온산을 휘감는다. 10여 미터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게 짙게 드리운 구름이 천지 봉우리 종주의 험난함을 예고하는 듯 하다. 사람의 손이 덜 탄 지역으로 천지의 형형색색을 볼 수 있다는 서파 종주가 비구름으로 인해 비경을 보지 못할까 걱정이 된다.
오전 10시 20분 드디어 5호 경계비에서 천지의 외륜봉을 돌아 소천지로 하산하는 서파 종주의 첫발을 내디뎠다. 짙게 드리운 구름을 헤치고 비교적 완만한 경사의 마천우를 지나자 청석봉(해발 2664미터)까지 오르막이 계속된다. 약 50분에 걸쳐 청석봉에 올랐지만 온산을 뒤덮은 구름으로 인해 천지를 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청석봉은 꼭대기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로 다섯 봉우리가 천지를 향해 서 있고 이 봉우리들이 푸른 암석으로 되어 있어 청석봉이라고 부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