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의 호국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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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신문
  • 승인 2017.05.2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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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63〉

우리 서울의대 31회 졸업생은 올 봄에 4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모교를 방문해 장학금과 동창회 발전기금을 기탁하고 2박 3일간 여행을 다녀왔다.

서울을 떠나 강원도 정선을 거쳐 경주와 하회마을을 다녀오는 코스였다. 공교롭게도 북한 김정은은 핵탄두 미사일로 한미일 삼국을 위협하고 한국은 미사일 방어 시스템 사스의 배치와 분담금으로 중국, 미국과 갈등이 생겨 국제정세는 험악해지고 있었다. 나는 동해 감포 바닷가를 거쳐 경주시로 들어가는 버스 속에서 옛날 선조들의 애국, 호국정신을 되새기며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였다.

그 당시에 일본 해적인 왜구(倭寇)는 한반도 주민에 심한 피해를 주고 있었다. 바다와 인접해 있는 도시는 번번이 약탈의 대상이 되었고 이를 방어하기 위한 군 주둔지와 성곽이 바닷가에 조성되어 있었다. 왜구의 힘이 강력하여 중국 항주의 서호(西湖)까지 공격한 기록이 있다. 감포와 연결되는 대종천(大鐘川)과 계곡사이의 산길은 왜군이 경주로 쳐들어 오는 통로였다.

문무왕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침략을 막아 삼국통일을 완성한 군주이다. 통일신라의 마지막 남은 걱정거리는 왜구의 침입이었다. 그는 죽은 후에도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왜구의 관문인 감포 앞바다에 해중왕릉을 만들게 하였다. 다음 신문왕은 아버지의 호국정신을 감사하고 기리는 의미에서 대종천 강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세웠다.

감은사에는 해룡이 된 문무왕이 왕래하기 위해 강에서 법당 안으로 들어오는 물길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었다. 근세에 와서 법당 섬돌 아래에서 배수로 구조가 발견되어 모두들 신라인의 높은 감성과 지적 수준에 감탄한 적이 있다. 다만 1500년 세월이 지나면서 물길이 바뀌어 현재는 감은사가 강물과 상당히 떨어져 있다. 이 사찰에는 거대한 규모의 석탑 한 쌍이 버티고 있다. 외적에게 우리의 만만하지 않은 호국의지를 시위하는 듯하다.

올라오는 적군을 막기 위한 그 다음 장치가 토함산에 있는 석굴암이다. 석굴암은 동해바다와 경주로 올라오는 길이 다 보이는 요충지에 조성했다. 부처님의 힘으로 적의 침략을 막기 위한 것이다. 나는 특히 이 부처의 손 모양에 주목한다. 손과 손가락 모양은 깨달음과 서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수인(手印)이라고 한다. 이 본존불은 석가모니가 해탈할 때 악귀의 유혹을 물리친 상황을 나타낸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즉, 마군(魔軍)을 이기고 땅 속에 묻은 후 올라오지 못하게 오른쪽 다섯 손가락을 합쳐 직각으로 힘차게 땅을 누르고 있는 모양이다〈사진 위〉.

그러나 석굴암 부처는 항마촉지인을 변형하여 오른쪽 검지와 중지를 약간 위로 들고 있다〈사진 아래〉. 왜 모든 손가락을 수직으로 길게 뻗지 않았을까? 직접 확인해 볼 수는 없지만 나는 두 손가락이 왜구가 들어오는 길목을 지목하고 있는 것이라고 감히 추측한다. 즉, 마군을 이긴 부처의 손가락 힘이라도 빌려 왜군의 침입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신라 다른 부처의 수인은 어떨까? 경상북도 군위군에 석굴암보다 100년 전에 만들어진 삼존석굴(국보 제 109호)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항마촉지인을 한 불상으로 다섯 손가락이 땅을 향해 있는 전형적 모양이다. 이 의도적인 차이에서 석굴암 부처님 수인의 숨은 뜻을 짐작할 수 있겠다.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 고개를 넘으면 불국사(佛國寺)가 나온다. 말 그대로 아무도 침범 못하는 부처의 땅이다. 그러나 산을 넘기 전에 또 다른 부처님 영토인 기림사(祇林寺)가 지키고 있다. 이 사찰은 일반인에게는 거의 잊혀지고 있으나 규모는 불국사에 못지 않았다. 기림사란 부처님이 생존때 세웠던 인도의 기원정사를 뜻한다. 역시 불교의 힘으로 왜군을 막으려는 의도일 것이다.

우리 신라 선조들은 이와 같이 외적의 침략을 종교의 힘으로도 막으려고 모든 노력을 하였다. 이 예를 보아, 물론 군사적, 외교적, 사회경제적, 문화적인 여러 면에서도 가능한 모든 방법을 공들여 준비했을 것이다. 이렇게 모두 마음을 모아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찬란한 천년왕국을 유지할 수 있던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짧은 여정이지만 과거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이 다방면으로 시도한 호국 의지와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를 둘러 싼 지금의 어려운 국제정세를 극복하는데 좋은 본보기로 삼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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