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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철쭉·파란 하늘·초록이 만드는 `봄의 향연'
분홍 철쭉·파란 하늘·초록이 만드는 `봄의 향연'
  • 의사신문
  • 승인 2017.05.29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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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산악회 - 백두대간 산행기(영취산 - 매요휴게소 구간) 〈상〉
양종욱 마포 양비인후과의원

백두대간 산행과 계절의 여왕 5월! 사람마다 생김생김이 다르듯 생각이 다르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썩 어울리는 組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5월 둘째 주 일요일 1박 2일 일정으로 백두대간 산행이 있어, 토요일 오후 진료실을 나와 약속 장소인 압구정동 음식점으로 간다.

약속 시간이 되니 같이 산행할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 둘 나타난다. 표정들이 하나같이 밝고 좋다. 내일 있을 30km 백두대간 산행이 전혀 걱정이 안되는 모양이다. 7명이 조촐하게 산행을 할 예정이다. 어차피 내려와야 할 산을 왜 그렇게 힘들게 오르고 내리고 하는 지, 전생에 시지푸스의 저주를 받은 업보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구의사회 산행이 겹쳐 같이 산행을 못하지만, 아쉬운 마음에 황홍석 원장도 참석해서 우리를 응원해준다. 막동이가 참으로 기특하다.

망각의 여신 레테가 찾아오지 않았는데도 여성 동료들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아마도 좋은 날씨에 더 좋은 데 갔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서 살가움이 느껴진다. 저녁 식사를 맛있게 한다. 예전에는 1박 2일 산행시 버스에 쪼그리고 앉아 치맥으로 저녁을 때웠는데,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으니, 내일 산행길이 한결 가볍게 느껴진다.

1시간30분의 저녁 식사 후에 버스를 타 약 3시간30분 후에 장수의 숙소에 도착해서 잠을 청한다. 일요일 오전 3시30분에 일어나 샤워 후 짐 정리를 하고 숙소를 나와 300m 떨어진 편의점으로 아침 식사를 하러 간다.

둥그런 달이 휘영청 밝다. 각자 취향대로 삼각김밥, 오징어 덥밥, 우동, 김치 등을 주문하여 아침 식사를 한다. 식 사 후 다시 숙소로 돌아와 볼일을 본 후 배낭을 메고 버스를 탄다. 여명이 밝아온다. 굽이굽이 산길을 구불구불 돌고 돌아 약 25분 후에 산행 출발지인 무령고개에 도착한다. 용이 춤을 추는 형세를 띄었다고 해서 무룡고개라고도 한다.

상큼한 새벽 산골 공기가 우리들을 맞이해 준다. 작년에 2번 오고 이번이 3번째이다. 나랑 인연이 많은 모양이다. 한적하고 좋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친구따라 강남 간다고 전 대한의사산악회 박병권 회장(당시에는 직책이 무엇인지 모르겠음)의 권유로 2006년 2월 유명산 시산제를 시작으로 서울시의사산악회(서의산)와 인연을 맺어, 11년 넘는 세월 동안 첩첩 산중의 이런 시골 길을 편리하게 와서, 전국 방방곡곡의 유명산을 등산해 많은 좋은 추억을 남겼고, 하산한 이후에는 전국 각지의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었다. 한마디로 잘 먹고 잘 살았다.

서의산에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하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수 있으니, 주님의 은총이 그득히 내리고 있음을 느낀다. 주일 날 성당도 잘 안 나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만 하는 사이비 신자이지만, 주님은 사랑과 용서의 주님이라고 자기 변명을 해본다.

11년이란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白駒過隙(백구과극)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려진다. 무심한 세월이다. 간단한 산행 준비 후 서로 어깨를 맞닿은 자세로, 우리들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사진을 찍어 발자취를 남긴다. 지난 밤에 정이 많이 들었나보다. 내 경험에 의하면 정이란 너무 들면 머리 아플 때가 있는 거 같다. 상당히 게으른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산행기를 쓰는 것도 그 놈의 정 때문이다.

한발 한발 내딛으면서 나무계단으로 된 등산로를 올라간다. 들이마시는 공기에 숲 향기와 밤새 내린 이슬기가 배어있다. 경사가 심해 처음부터 힘들다. 오늘의 대장정이 험난함을 예고하는 듯하다. 5분 후 돌과 흙으로 된 길이 나온다.

잠시 작년에 갔었던 장안산을 뒤돌아 보면서 지난 산행을 더듬어 본다. 정확히 6개월 전에 왔었던 영취산과 장안산의 숲은 성글었다. 물든 잎들이 지고 가지와 줄기가 듬성듬성 제 모습을 드러내 쓸쓸함을 느꼈지만, 오늘의 산은 연두색 초록색으로 물들어져 풍성한 숲을 이루고, 드문 드문 꽃들이 피어 있어 생동감을 느끼게 해 어김없는 계절의 순환을 느끼게 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데 세상 만사 변하지 않는 게 없음을 다시 느낀다.

지금의 나도 지난 날의 나와는 다를 것이다. 10분 정도 된비알길을 헉헉거리며 더 올라 영취산에 도착한다. 산의 경사도와 길이가 지난 4월 갔다 왔던 제주도 성산포 일출봉과 비슷하다. 우리들에게 시원한 조망을 선물해준다.

태양이 대지 위에 붉게 타오르면서 산천초목을 밝혀준다. 다정하게 단체 사진도 찍어 영취산의 흔적을 남긴다. 두번째이자 마지막 단체 사진이다. 우리들의 정이 그리 깊지는 않은 거 같다. 영취산 하면 진달래 축제로 유명한 여수의 영취산이 생각이 난다.

내년 4월에는 여수의 봉화산, 금오산, 영취산 연계산행을 해서 아름다운 여수 앞바다의 풍광을 보고 즐기면서, 영취산 진달래 꽃구경 할 계획을 잡아본다. 이로써 내년 4월까지 스케줄은 꽉 차게 된다. 내년 어린이 날이 연휴이던데 무엇을 할까 생각해 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꽃에 무관심한 내가 5년전 강화도 고려산 진달래 꽃구경한 이후 매년 꽃구경하러 여기 저기 돌아다녔다. 새삼 늦바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살며시 들어온다.

백운산으로 향한다. 짧은 내리막 후에 5분 남짓 제법 힘들게 올라간 후 편안한 길을 양옆으로 마루금을 거느리면서 경쾌하게 걸어간다. 오른쪽으로 장안산과 금남호남정맥이 조망된다. 몸도 풀렸고 육산이라 발바닥 감촉도 좋다. 이따금씩 세찬 바람이 불어와 추운 느낌도 든다.
산행하기 좋은 날씨이다. 드문드문 산 계곡에 운무가 보여 산행의 운치를 더해준다. 햇님이 하늘 높이 떠올라 빙그레 웃으면서, “당신들 보아하니 50대 산악회 같은데 늦은 나이에 백두대간 산행하느라 고생한다. 열심히 잘해서 부디 완주하기를 바란다”하면서 격려 하는거 같다. 때 맞추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3.4km 거리를 1시간 10분만에 백운산에 도착한다. 10여년 간 등산을 해보니 백운산이란 이름이 제일 많은 거 같다. 흰 구름에 둘러 쌓인 산이란 뜻일 거다. 전국의 백운산 중에 지금의 백운산이 가장 높다고 한다. 정상 부위가 넓어 시원한 느낌이 든다. 두개의 정상석이 있는데 크고 새로운 정상석보다 오래되고 작은 정상석이 앙증맞고 좋다.

주위를 둘러보니 덕유 자락이 보이고 지리산 능선들이 아득하다. 우리가 가야 할 백두대간 길이 뚜렷이 보인다. 박병권 원장이 가져온 시원한 수박을 나누어 먹는다. 여름철 산행에는 시원한 수박이 최고다. 네모 반듯한 수박을 보니 칼솜씨가 대단하다. 내과보다는 외과 의사 했으면 나았지 싶다.

제법 힘들게 내리막 길을 내려간다. 아기자기한 백두대간 길을 걷는다. 등로 옆에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소담스럽게 피어있어 발길을 늦추게 된다. 꽃 공부를 해야 될 거 같다. 35분 걸어 중고개재에 도착하게 된다. 다시 힘들게 올라가고 봉우리 3개를 넘어 30분만에 중치에 도착한다. 등로 옆에 있는 잎사귀가 나의 뺨과 입술에 입맞춤을 해 잎냄새를 그윽하게 풍긴다.

잠시 쉰 후 10분 남짓 힘들게 올라간 후 계속 오르고 내리며 걷다 보니 월경산 갈림길이 나오고 계속 가다 보니 약초 시범 단지가 나온다. 조망이 아주 좋다. 잠시 5월의 산을 감상해 본다. 제법 내려간 후 대간 길을 걷다보니 광대치 이정표가 나온다. 10분 정도 내려가니 다시 광대치 이정표가 나온다. 지난번 이정표는 짝퉁인 거 같다.

봉화산이 멀리 조망된다. 광대치에서 얼추 4번의 봉우리를 올라가다 보니 봉화산 2.1km를 남기고 모여서 식사하기 좋은 터가 있어 점심 식사를 한다. 족발, 인절미, 빵, 두유 비스켓, 핫도그, 파인애플, 사과 등의 음식이 차려져 대간 산행 길에 부페 음식을 먹는 거 같다. 아무것도 먹을 음식을 가져오지 않은 나는 사람 수 만큼 젓가락을 내놓아 일조를 한다. 입만 갖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다. 족발을 먹다 보니 소주 생각이 간절해진다.

다시 조금 걷다 보니 무명봉이 나온다. 위정자들의 잘못으로 젊은 나이에 피지도 못하고 전장에서 피 흘리며 쓰러져 간 무명 용사라는 말이 연상되어 애절한 느낌이 든다. 누군가 이름을 좋게 붙여줬으면 좋겠다.

억새밭 군락지를 지나게 되고 봉화산이 뚜렷이 보인다. 분홍 연분홍 철쭉들이 여기저기 흐드러져있어 파란하늘, 하얀 뭉게구름, 연두색 초록색 산과 조화를 이루어 5월의 향기를 내뿜으면서 장관을 이루어 나의 커다란 눈을 휘둥그렇게 만든다.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를 맞고 이겨내어 5월의 꽃을 피운다고 한다. 모진 風霜을 이겨내고 저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운 것이다. 苦盡甘來(고진감래)라는 4자 성어가 떠올려진다.

갑자기 내리막 길에서 왼쪽 무릎 바깥 부분에 통증을 느끼며 절뚝 거리게 된다. 인대에 무리가 가는 모양이다.

봉화산 쉼터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표정들이 즐겁고 밝다. 덩달아 나도 즐겁고 밝은 표정을 짓게 된다.

지리산 능선길 봉우리들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안내판이 있어. 멀리 있는 지리산 능선들을 쳐다본다. 10월 8일 지리산 무박 종주가 예정되어 있는데, 청명한 가을 날씨에 저 능선 길을 걸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등로 옆에 임도가 있어 차로 올라오는 사람도 있는데 자연을 훼손한다고 생각하니 얄밉기도 하다. 봉화산에 도착한다. 점심 식사 후 35분 걸렸다. 봉화대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주위에 철쭉이 봄의 향연을 베풀고 있다. 봄의 향연에 취하다 보니 내년 어린이날 연휴에는 산청의 황매산 철쭉을 가 봐야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이로써 내년 5월까지 스케줄은 다 잡혔다. 매봉으로 향한다. 내리막 길에 올라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 계속 가다 서다 한다. 무릎 통증 때문에 힘도 든다.

계속 내려가다가 다시 두개의 봉우리를 올라가서 걷다 보니 팔각정이 나와 잠시 쉰다. 곧 매봉에 도착한다. 봉화산에서 1시간 소모됐다. 등로에 꽃망울을 머금은 철쪽 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만개하면 대단할 것이다.

꽃에 무지한 나는 진달래와 철쭉이 항상 햇갈렸는데,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고 나중에 잎이 돋아나는데, 철쭉은 잎이 먼저 나오고 나중에 꽃이 핀다. 그리고 진달래 잎은 약간 넓으면서 끝이 뾰족한 타원형이고, 철쭉잎은 주걱처럼 넓직하고 동글동글한 모양을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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