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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슈만 바이올린협주곡 D단조, WoO.23
로베르트 슈만 바이올린협주곡 D단조, WoO.23
  • 의사신문
  • 승인 2017.05.2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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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396〉

■슈만 사후 80년 만에 극적으로 세상의 빛을 본 바이올린협주곡

1853년 5월 슈만은 젊고 영감이 넘치던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하임을 만나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그는 요하임이 연주한 베토벤의 바이올린협주곡에 대한 감격을 일기장에 적어 놓기까지 했다. “요하임은 너무 마력적이고 너무 놀라울 따름이다. 아침부터 밤늦도록 그와 연주했다.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그는 요하임을 위해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환상곡을 작곡했고, 그해 9월에는 바이올린협주곡을 작곡했다. 한편 10월에는 요하임의 소개로 브람스를 만나게 되었고, 창조적 열기에 휩싸인 채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 새로 알게 된 젊은 브람스와 자신의 제자 알베르트 디트리히와 함께 요하임을 위해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F-A-E 소나타〉를 작곡하여 헌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하임은 이 헌정 받은 환상곡과 소나타는 기꺼이 자주 연주했지만 바이올린협주곡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1853년 10월 요하임은 자신이 악장으로 재직하던 하노버 궁정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이후 평생 이 작품을 연주하지 않았다. 1854년 2월, 슈만은 자살을 시도한 뒤 요양원으로 실려 갔고, 그가 미쳐 있는 상태에서 이 곡을 작곡했다고 확신한 요하임은 더욱 이 곡을 기피했다고 한다. 요하임의 전기 작가인 안드레아스 모저는 “정신적 에너지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서 작곡한 듯한 일종의 극심한 피로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몇몇 개성적인 패시지에서는 창조적 예술가의 심오한 감수성을 목격할 수 있다”며 요하임이 보낸 편지를 언급하였다. 요하임의 이러한 부정적 평가는 클라라 슈만과 브람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클라라는 이 곡의 연약한 성질에 많이 놀라 남편의 명성에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여 슈만의 작품 전집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비밀의 작품으로 잊히는 듯 하였지만 이 협주곡을 주제로 브람스는 `슈만의 마지막 음악적 생각'이라는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이 바이올린협주곡은 슈만이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음악적 창작열로 극복하고자 했던 시기의 작품인 만큼 완성도는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슈만 자신이 평생토록 열망했던 문학적 상상력, 자아도취적 경향을 이 음악을 통해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슈만의 광기와 환상이 빚어낸 이 작품의 제2악장 주제는 슈만이 천사들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했는데 정작 이 선율은 1842년 작곡한 현악사중주 제2번 작품번호 41의 제2악장 주제였으며, 1849년 작곡한 〈어린이를 위한 앨범〉에서도 사용되었다. 또한 1854년 슈만이 라인 강에 투신한 뒤 구조된 다음 날 완성한 다섯 개의 변주곡의 주제로도 사용되어 천사들의 계시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이 작품은 요하임과 클라라 슈만에 의해 철저히 숨겨졌던 사실만큼이나 그 재발견 또한 드라마틱하였다. 요하임은 1907년 세상을 떠날 때 작곡가 사후 100년 동안 결코 이 작품을 연주하거나 출판하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 후 1933년 3월 런던에 거주하던 요하임의 조카딸인 바이올리니스트 옐리 다라니와 동생인 아딜라 파치리에게 슈만의 영혼이 들어와 이 작품을 찾아서 발표하라고 하였다 한다. 곧이어 요하임으로부터도 두 번째 영혼의 메시지를 받은 그들은 프러시아 국립도서관에 이 곡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도서관 서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악보는 80여 년 만에 햇빛을 보게 되었다.

그 후 1937년 마인츠 쇼트 출판사는 이 악보를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에게 보여주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초연하고자 계획하였으나 갑자기 옐리 다라니가 나타나 초연에 대한 권리는 자신에게 있다며 메뉴인의 연주에 제동을 걸었다. 결국 이 곡은 게오르크 슈네만과 파울 힌데미트가 편곡한 후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수정해 출판되었고, 1937년 11월 독일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게오르크 쿨렌캄프의 연주와 한스 슈미트 이세르슈테트가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초연하였다.

△제1악장 In Kräftigem, Night zu schnellem Tempo(힘차면서도 너무 빠르지 않게) 아름다운 주제 선율들이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어두운 도입부를 거치면서 슬픔에 잠긴 제2주제가 제시되면서 슈만의 남다른 감수성이 극대화되고 이후 오케스트라의 강박증적인 도발과 독주 바이올린의 회한 어린 체념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며 비관적인 분위기로 코다를 맺는다.

△제2악장 Langsam(느리게) 천사가 불러주었다는 주제가 사용된 악장이다. 파곳, 호른과 함께 독주 바이올린이 따사로운 분위기 속에서 사색에 잠긴 영혼이 확신에 찬 선율로 노래 부른다.

△제3악장 Lebhaft, Doch night schnell(활기 있게, 그러나 빠르지 않게) 독주 바이올린이 트레몰로로 오케스트라와 조화를 이루며 마지막 코다에서 비상하듯 화려하게 끝을 맺는다.

■들을 만한 음반
△기돈 크레머(바이올린), 리카르도 무티(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EMI, 1982)
△헨리크 셰링(바이올린), 안탈 도라티(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Mercury, 1964)
△르노 카퓌송(바이올린), 다니엘 하딩(지휘), 말러 쳄버 오케스트라(Virgin classics, 2004)
△게오르크 쿨렌캄프(바이올린), 한스 슈미트 이세르슈테트(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Telefunken,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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