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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받는 `의사 보건소장직' -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도전받는 `의사 보건소장직' -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7.05.22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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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권고, 보건소 현실 반영하지 못한 결정”

의료계, `의사 소장 우선임용은 차별' 시각에 비판 목소리
단순 접근 아닌 국민건강·보건의료 관리 책임자로 판단해야

보건소장 임용 시 `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을 우선적으로 임용하도록 한 `지역보건법 시행령' 개정 문제가 다시 불거져 논란이 예고된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지난 17일 보건소장 임용 시 `의사'를 우선 임용하는 것은 특정 직종을 우대하는 차별행위라며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지역보건법 시행령' 개정을 권고했다. 현행 지역보건법 시행령 제13조 1항은 보건소장 임용 시 의사 면허 소지자를 우선적으로 임용하도록 규정하면서 의사 면허 소지자 임용이 어려운 경우에는 보건·식품위생·의료기술·의무·약무·간호·보건진료 직렬 공무원을 보건소장으로 임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앞서 지난 2015년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치협)와 대한간호사협회(이하 간협)를 비롯해 경상남도, 대구광역시, 인천광역시 소속 공무원들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지역보건법 시행령 제13조 제1항에서 의사면허가 있는 사람은 우선적으로 보건소장으로 임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 의사 면허가 없는 의료인과 보건의료 업무 담당 공무원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 유행 시 보건소가 수행하는 감염병 예방 및 관리 업무의 중요성은 오히려 예방의학 등 관련분야 전문의나 비의사로서 보건학을 전공했거나 보건사업 종사 경력이 있는 자를 보건소장에 우선 임용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의료인들이 주장하는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들이 보건소장 업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근거로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보건소의 업무가 국민건강증진·보건교육·구강건강 및 영양개선사업, 전염병의 예방·관리 및 진료, 공공위생 및 식품위생 등 의학뿐만 아니라 보건학 등 다른 분야와 관련된 지식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각 보건소에는 보건소장을 제외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 전문인력이 배치되어 의료 활동을 하고 있고 보건소장은 보건소의 업무 관장과 소속 직원에 대한 지휘감독이 주 업무이므로 의사면허를 가진 자를 보건소장으로 우선 임용하는 것은 불합리한 차별행위라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보건소 소장을 `의사'로 임명해야 한다는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2006년에도 인권위는 보건소장 자격기준 차별 진정사건에서 보건복지부에 보건소장 자격을 `의사의 면허를 가진 사람이나 보건 관련 전문지식을 가진 인력 등'으로 개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보건소가 지역사회에서 진료를 포함한 건강증진·질병 예방 등의 업무를 총괄하고 있으며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 유행 시에는 보건소가 수행하는 감염병 예방 및 관리 업무의 중요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복지부는 “보건소 업무를 총괄하는 보건소장은 보건소가 수행하고 있는 보건의료 업무 전반에 대한 종합적 이해도를 갖춘 사람이 수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정 업무 수행에 상당한 수준의 전문성이 필요하거나 효율적인 정책수립과 이행을 위해 필요한 경우 보건소장이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을 우선 임용하도록 하는 현행 법령의 유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펼쳤다.

실제로 2015년 12월 기준 252명의 보건소장 중 의사가 103명으로 가장 많았고 간호사(조산사 포함)가 18명, 약사 2명, 의료기사 등 81명, 기타가 48명으로 뒤를 이었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인권위 결정에 대해 `보건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결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보건소 설립 취지 맞게 `의사'가 타당
의료계는 지역주민의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시켜 국민보건의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의사가 보건소장에 우선적으로 임용되는 것이 맞다는 지적이다.

또, 국민건강증진과 보건소의 제대로 된 기능 정립을 위해 보건소장은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으로만 임명할 수 있도록 오히려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보건소장은 폭넓은 전문지식을 가지고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의사가 최적임자라는 것이다.

아울러, 보건소장은 지역주민 나아가 취약계층의 건강권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사람으로 전문성을 기초로 한 자격의 제한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역보건법 시행령' 개정 권고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의협은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거치면서 보건소의 역할이 부각된 상황에서 보건소의 원활한 관련 업무 수행을 위해 의사의 보건소장 임용 원칙이 더욱 분명해 졌다는 판단이다.

대한의사협회 김주현 대변인은 “메르스 사태에도 보건소가 국민의 건강증진과 감염병 예방, 관리 등 역할을 앞장서 수행했어야 한다. 하지만 보건소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메르스가 확산됐었다”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보건소장이 진료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가 아닌 치과의사, 간호사 등 보건인력들도 임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인권위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의사가 아닌 사람을 (보건소장에) 임명한다는 것은 행정적인 시각에서 나온 정책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전국 보건소 중 소장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인권위가 이런 의견을 낸 것에 대해 유감이다. 인권위의 주장은 마치 21세기 의료를 역행하는 사고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앞으로도 사스나 메르스 등의 사태가 발생될 수 있다. 메르스 사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도 의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감염병 사태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며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회의를 통해 조만간 권익위에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의사회 김숙희 회장은 “보건소의 역할을 생각해 봐야 한다. 보건소는 질병예방관리 및 지역사회 감염병 관리 등의 진료, 예방 등의 역할을 한다. 보건소의 모든 역할을 봤을 때 의사가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보건소장에 의사를 우선 임용해 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서울의 경우 보건소장이 의사이지만 지방의 경우 의사가 아닌 보건의료인 또는 비의료인이 소장으로 임명된 경우가 있다.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해선 의사가 보건소장으로 임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건소장은 지역주민의 건강관리 및 진료, 예방사업 등 의학지식이 있어야만 관리할 수 있다. 의료에 대해 흐름을 아는 사람이 관리할 수 있다”며 “의사는 의과 교육 과정에서 질병예방과 감염병 관리 등을 배우고 있다. 하지만 보건의료인과 비의료인은 지식이 부족하다”며 인권위 결정은 타당하지 않다고 해석했다.

한 의료인은 “인권위 결정은 운전면허증이 없는 사람에게 자동차를 맡기는 것과 같은 생각이다. 이는 곧 의사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보건소장의 역할을 행정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보건의료의 전반적인 관리 및 예방 역할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건의료인들이 의사의 보건소장 우선 임용을 놓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의사의 고유영역을 넘보는 것”이라며 “보건소장은 현대의학을 배우고 보건의료를 전반적으로 배운 의료인들이 적합하다. 보건소장은 큰 틀에서 보는 사람이 되어야지, 가지만 보는 사람이 임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보건소장 임용을 놓고 보건의료인 및 비의료인들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우리 의료인들의 잘못도 있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의료계가 보건소장에 의사가 채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지방 보건소장 채용 공고가 났을 때는 지원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때문에 보건의료인 및 비의료인들이 의사 영역을 침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의료계는 보건소장의 문호가 개방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것이라며 이런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인권위는 지난 5월 8일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지역보건법 시행령 개정을 권고하는 문서를 보냈다. 복지부는 원칙적으로 인권위 권고를 받은 날부터 90일 이내에 권고사항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복지부가 앞서 한 차례 인권위의 개정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이번 권고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고수할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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