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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 일주일만에 쏟아진 의료악법…의료계, '과잉 입법' 우려
대선 후 일주일만에 쏟아진 의료악법…의료계, '과잉 입법' 우려
  • 이지선 기자
  • 승인 2017.05.1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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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대선이 마무리되자 또 다시 의료계를 옥죄는 법안들이 쏟아져 나와, 의료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4월은 각 당의 관심이 대선에 집중된 만큼 국회의 활동이 잠시 멈춘듯 보였다. 본회의나 상임위원회 회의, 의원실이 주최하는 각종 회의 등은 물론 법안 발의 건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실제 4월 한 달 동안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총 268건으로 예년보다 100건 이상 적었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국회 역시 재가동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고 일주일 사이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정춘숙 의원, 국민의당 최도자 의원 등 여야 보건복지위원들은 관련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의사의 의무만을 강조하는 '의료악법'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에 의료계는 ‘과잉 입법’이라며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진료 중 아동학대 미신고 시 '면허 6개월' 정지

국민의당 최도자 의원은 대선 다음날이 지난 10일 진료 과정에서 취약층의 학대를 확인하고도 신고하지 않은 의료인에 대해 면허 자격을 정지시키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재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노인복지법, 장애인복지법 등이 의료인의 직무 수행 과정에서 아동·노인·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학대범죄 등을 알게 된 경우 수사기관에 그 사실을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고 정부 역시 ‘신고의무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지만, 실적이 미미하다는 게 최 의원의 지적이다.

개정안은 의료인 등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아동·노인·장애인에 대한 학대 사실을 알았음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신고하지 않은 경우, 보건복지부장관이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해 면허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의료계 일각에서는 법안 즉각 철회를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 15일 성명서를 내고 "의사에게 과도한 의무와 처벌을 하면 손쉽게 아동·노인·장애인의 학대가 근절된다는 편의적이고 포퓰리즘적 발상에 대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분노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의사가 면허정지 당하지 않기 위해 모든 사례를 학대사례로 의심의 눈빛으로 치료할 경우, 의사와 환자 사이에 근본 신뢰가 무너지고 상호 불신을 조장할 뿐"이라며 "오히려 학대범에게 일괄적으로 중형을 처벌하는 법을 만드는 것이 더 빠르고 효과적일 것"이라고 반박했다.

서울시의사회 김숙희 회장 역시 “현재 벌금형이 있는데도 의료인 신고율이 저조한 이유는 의심만으로 신고했다가 반대로 소송 당할 수 있다는 우려,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의 진료 방해 등 불편함이 많기 때문”이라며 “이런 부분을 보안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지 이 같은 과도한 입법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이어 “해당 법안으로 인해 의사들의 과잉 신고가 초래되거나 학대 아동이나 노인이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오히려 받지 못하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장애 1급 확정도 되기 전에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 가능?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은 지난 11일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또는 장애등급 1급이 명백할 경우, 조정절차를 지체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 조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재는 사망,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장애등급 1등급 판정에 대해서만 자동개시를 허용하고 있는데, 장애등급 판정 전이라도 1등급을 받을 가능성이 확실시 될 경우 위원장의 판단 아래 자동개시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전 의원은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이 될 것이 명백한 경우, 또는 1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되고 까다로운 등급판정 절차를 거치기 전이라도 장애등급 1급이 될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위원장의 판단에 따라 조정절차를 개시할 수 있도록 해 보다 신속하게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병의원-의약품도매상, 지분관계 있으면 거래 불가

전 의원은 지난 12일 의료기관 개설자가 의약품 도매상에 대한 지분관계를 이용해 독점적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약사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현행법은 의료기관 개설자 또는 약국 개설자가 법인인 의약품 도매상의 주식 및 지분의 50%를 초과해 보유하거나 특수한 관계에 있는 등 일정한 경우, 의약품 도매상은 해당 의료기관 또는 약국에 의약품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의료기관 개설자 등이 법인인 의약품 도매상의 주식 또는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의약품 도매상은 해당 의료기관이나 약국에 직접 또는 다른 의약품 도매상을 통해 의약품을 판매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전 의원은 "의료기관 개설자 등이 의약품 도매상의 주식이나 지분을 50% 이하로 보유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여전히 의약품 도매상으로 하여금 의료기관 등과 독점적 거래를 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의약품의 실거래가를 부풀려 국민의료비 부담을 가중하고 건강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미치는 한편, 다른 의약품 도매상의 의약품 공급가능성을 차단하는 등 의약품 유통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불공정거래를 유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관 정지처분 과징금 상한금액 3%로 인상

더민주 정춘숙 의원은 지난 15일 의료기관 정지처분에 따른 과징금을 인상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법은 보건복지부장관 등이 의료기관에 대해 의료업 정지처분에 갈음한 과징금 부과처분을 할 수 있도록 정하면서 1회 과징금 부과 최대 금액을 5000만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시행령에서는 의료업 정지처분에 갈음한 과징금 부과처분을 정지 기간에 1일당 과징금을 곱한 금액으로 산정하고 있다. 연간 총수입액이 90억원 이상인 경우에도 1일당 과징금이 53만 7500원에 불과해, 제재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 정 의원의 지적이다.

개정안은 의료업 정지처분에 갈음해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는 경우 과징금 상한금액을 수입액의 100분의 3이하로 하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정 의원은 "과징금 제재처분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위법행위에 대하여 적정한 제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선 후 며칠 사이에 쏟아져 나온 의료악법에 대해 의료계는 과잉 입법이라는 지적이다.

서울시의사회 김숙희 회장은 “전문성을 가진 의사, 의사 면허를 규제의 대상이라고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자율 규제를 강화하면 되는데 자꾸 입법화해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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