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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슈만 〈환상곡〉 C장조 작품번호 17
로베르트 슈만 〈환상곡〉 C장조 작품번호 17
  • 의사신문
  • 승인 2017.05.1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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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394〉

■클라라를 향한 사랑 고백이자 리스트에 대한 우정의 선물

1837년 베토벤 서거 10주년을 맞아 슈만은 리스트로부터 베토벤 기념비 건립사업을 위한 작품을 위촉받아 〈환상곡〉을 완성하여 리스트에게 헌정했다. 이는 리스트가 1837년 〈초절기교연습곡〉 초판을 클라라에게 헌정한 것에 대한 답례였다. 리스트는 이 작품에 파가니니로부터 받은 영감을 투영시켰는데, 슈만 또한 파가니니의 악마적인 기운과 난해한 기교의 연주에 충격을 받아 이 작품에 반영하였다.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이 악마적인 기교의 극한으로 파가니니를 오마주한 반면, 슈만은 보다 심리적이고 낭만적인 면에서 접근하고자 했다. 또한 베토벤의 연가곡 〈멀리 있는 연인〉에서 인용한 선율을 제1악장에 등장시키고 조성도 베토벤 교향곡과 피아노소나타 등에서 자주 사용한 영웅적인 C장조를 염두에 두고 썼다. 결국 이 작품은 아직 어린 나이의 클라라를 향한 슈만의 열정적인 사랑 고백이자 베토벤에 대한 경의의 표상이고 파가니니에 대한 존경과 리스트에 대한 우정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작품에는 주제 선율들이 시적인 상상력과 작곡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극복의지의 표명과 함께 혁신적인 음악을 만들고자하는 노력을 담고 있다. 동시에 동시대 음악가들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주는 환희, 삶에 대한 회고와 미래에 대한 예언 등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이 작품에 대해 슈만은 클라라에게 “지금껏 내가 작곡했던 곡 가운데 가장 열정적인 작품으로서 당신을 향한 깊은 슬픔을 표현한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고, 리스트는 자신의 제자 안톤 트렐레츠키에게 “시끄럽고 격렬한 것과는 전혀 반대로 지극히 몽상적인 것이어야 한다.”라고 가르쳤다. 결국 이 환상곡은 비록 일부에서 최고도의 힘과 격정적인 직선성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음향적인 효과보다는 그 내면에 숨어있는 슈만의 환상과 꿈을 짚어내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도 “반드시 슈만이 작곡한 그대로 연주하라”고 지적했듯 슈만의 시적 상상력을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서는 악보의 음표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이 작품속의 다양한 리듬과 관현악적인 색채감을 슈만이 의도한 대로 재현하려면 연주자는 단순히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철학자 또는 시인이 되어야만 한다.

이 작품은 슈만의 피아노음악 가운데 최고 수준의 내용과 기법을 담은 매력과 넘치는 시적 상상력으로 가득 차있다. 이 곡을 작곡한 시기는 슈만에게 있어서 행복과 좌절을 넘나든 시기였다. 클라라를 향한 사랑과 자신의 정신적인 분열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이 작품을 비롯하여 〈어린이 정경〉과 〈크라이슬레리아나〉와 같은 대작들을 쏟아냈다. 1836년 6월 초안을 잡고 1838년 3월에 완성한 이 곡은 1839년 봄 라이프치히에서 출판되었다. 이 작품의 서문에는 독일 낭만주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폰 슐레겔(Friedrich von Schlegel)이 쓴 `수풀(Die Gebusche)'에서 인용한 시가 적혀 있다. “온갖 색깔의 대지의 꿈속에서 모든 음향이 소리를 내는 가운데 은밀하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에게 조용한 음이 들려온다.” 아마도 그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클라라였고, 그 조용한 소리의 진원지는 슈만이었을 것이다. 

△제1악장 Durchaus fantastisch und leidenschaftlich vorzutragen(매우 환상적이고 열정적으로) 서로 분위기가 닮은 두 주제가 등장한다. 비극적이라기보다는 불안한 상태를 보여주고, 절망적이라기에는 너무 장대한 이들 주제는 어떻게 보면 서주에 등장하면서 은유된 클라라에 대한 슈만 자신의 복잡한 관념의 상태를 보여준다. 너무나 아름다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음악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는 이 악장은 복잡하면서도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며 초월적이라고도 할 슈만만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제2악장 Mäßig. Durchaus energisch(적당한 빠르기로 힘차게) 한결 명료해진 행진곡풍으로 시작한다.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는 이 악장에서 안정된 템포를 유지하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말은 곧 변덕스럽고 즉흥적인 기분을 연상케 하는 프레이징이 자주 등장하지만 그 모습은 결코 광시곡풍으로 연주해서는 안 되고 클라라를 향한 순수한 집념과 희망을 견지해야 하는 일종의 수행자적인 느낌을 주어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슈만의 광기를 반영한 제1악장과는 대조되는 그의 강인한 신념과 이성을 대변하는 악장이다.

△제3악장 Langsam getragen. Durchweg leise zu halten(느린 템포로 일정하게. 조용함을 유지하면서) 일종의 음악적 꽃다발과 같은 악장으로 순결함과 신비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다. 클라라를 향한 자기구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영원히 여성적인 것'을 그리워하는 슈만의 동경은 후일 이 작품에 대한 답례로 리스트가 작곡하여 슈만에게 헌정한 피아노소나타 B단조 마지막의 고요하면서도 영롱한 여운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들을 만한 음반
△마우리치오 폴리니(피아노)(DG, 1973)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피아노)(EMI, 1961)
△클라우디오 아라우(피아노)(Philips, 1967)
△마르타 아르헤리치(피아노)(EMI, 1976)
△예브게니 키신(피아노)(RCA,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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