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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의 대덕산 기운 모든 회원들과 나누고 싶어
봉황의 대덕산 기운 모든 회원들과 나누고 싶어
  • 의사신문
  • 승인 2017.05.1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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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산악회, 28차 백두대간(빼재-부항령 구간) 산행
박병권 박병권내과의원 원장

백두대간 28차 산행이다. 덕유산의 끝자락인 빼재∼덕산재 구간에 부항령까지 이어 붙이니, 지도상 거리로도 20km, 9시간 소요 예정이다. 다음구간(부항령∼우두령,도상거리18.7km,8시간55분 소요)을 고려하면 오늘 내로 꼭 마무리해 주어야 다음 스케줄이 원할해진다.

지난 1월말의 27차 산행에서는 폭설과 교통두절을 걱정했었는데, 어느덧 4월 중순에 들어서니 봄도 지나 초여름으로 접어든다.

집결시각은 당일 새벽 5시반이다. 집행부의 고민이 느껴지는데, 결과적으로 오늘 일정에 딱 맞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평소보다 한시간 반을 앞당기니, 행여 시간을 놓칠까 긴장이 된다. 더구나 전날에 부활절 전야미사가 있어, 늦게 잠자리에 들었고, 혹시나 싶어 세 종류의 알람을 설정해 놓은 중에 마지막 알람소리에 깜짝 놀라 겨우 일어난다. 다행히 새벽 4시반이다.

부지런히 집결장소인 압구정교회 앞의 공터에 도착하니, 오늘의 참여인원은 7명으로, 버스 안이 휑하다. 백두대간산행 초기인 9년전(2008-01-13), 덕유산구간(삿갓재∼빼재)때에는 20명 가까이 참여하여 성황을 이뤘었는데, 그당시 한겨울 15시간 강행군의 고역이 떠올라서 였을까 어쨌든 오늘은 소수정예부대 구성이다.

버스는 인삼랜드 휴게소에서 잠시 멈춘다. 시간이 빠듯한 만큼 설렁탕으로 메뉴를 통일하여 신속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일정을 서두른다.

몇번의 덕유산산행으로 친근해진 37번 지방국도로 접어든다. 신풍령휴게소를 기준으로 등산로 입구를 찾으려 하는데, 버스 내비게이션으로는 못 찾겠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터널이 뚫린 신도로 쪽으로 가면 그대로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터널을 피하여,옛 도로 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출발지점인 빼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9년전의 일이지만, 그 당시에 고생했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산행 막바지에, 고개 넘고 또 넘고, 첩첩산중에 해는 다 넘어가고 사방이 어둑해진 가운데, 마침내 맞이한 버스를 향해 환호를 했던 그 장소다.

지금 시각은 오전 8시50분, 날씨는 화창하다. 빼재의 경관이 수려해서일까? 빼어날 `수'자의 한자 표지석 `수령'의 표지석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사과의 고장 거창군'이란 커다란 바위표지석과, 그 옆으로 `빼재정' 현판을 단 근사한 정자가 들어서있다. 이곳에, 추풍령에 맞대어서 신풍령이라고 이름지은 휴게소가 성업하였는데, 언덕 아래로 터널이 생기면서 쇠락하여 폐쇄되었고, 현재는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37번 도로사이로 오늘의 산행기점이 마주 보인다. 산 지도판과 나무계단이 잘 설치되어 있다. 잠시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 200m를 지나니, 새삼스럽게 `빼재' 지명과 함께 삼봉산 3.9km의 표지목이 또 세워져있다. 도로가 놓이기 전까지는 이곳이 진정한 빼재였음을 알리는 듯 하다. 전북과 경남의 경계를 이루어, 옛적 삼국시대 이전 부터도 분쟁과 전투가 끊이지 않아, 여기서 죽은 이들과 혹은 먹이감으로 썼던 짐승들의 뼈가 쌓여 `뼈재'라 부르던 것이, 지방 사투리로 변형되어 뼈재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고보면 오늘의 산행코스는 서쪽의 전라도와 동쪽의 경상도의 경계를 따라서 진행하는 양상이다. 

수정봉을 거쳐서 1차 목적지인 삼봉산(1255m)까지의 초반 진행이 순조롭다. 출발고도가 이미 920m여서 심적 부담이 적었고, 지면이 푹신푹신하여 걷기에 좋았다. 더구나 등로를 따라 노랑제비꽃과 개별초등 야생화들이 수없이 늘어서서 꽃길을 이루고 있었다.

조해석 회장이 `처녀치마'라고 일러준 꽃은 예쁘고 인상적이어서, 야생화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평생 기억해 둘 것 같다. 다만 “다시 나타나면 찍어둬야지”했는데, 그 한송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서 못내 아쉽다. 곳곳의 억새밭과 물푸레나무 군락을 지나니 조릿대의 물결이 시작된다. 언제나 그렇듯, 조릿대의 강인한 생명력이 마냥 반갑진 않다.

이윽고 도착한 삼봉산, 사과 두개를 좌우로 새겨 놓은 정상석이 우리를 맞이한다. 10시29분, 예상보다 20분 빠르다. 신경준의 `산경표'에 따르면 `무령산에서 이곳 삼봉산까지가 덕유산'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이제껏 덕유산자락을 밟고 있던 셈이다.

삼봉산 정상 아래로 멋진 조감도가 펼쳐진다. 1089번 지방도로를 따라서 경남 거창군 고제면의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도로 건너편으로 가야할 초점산과 대덕산이 이어져 보인다. 저 중간 어디쯤에 거쳐갈 소사고개가 자리하겠지.

삼봉산에서 소사고개까지는 저명한 급경사 내리막이다. 특히 794봉까지의 1.5km 구간은 가파름이 심하고 곳곳에 암릉이 도사려 우회로부터 잘 살펴야 했다. 30분 이상을 긴장하며 내려오니, 다시 부드러운 육산의 모습으로 바뀐다. 썬글라스 너머로도 선명한 진홍색의 향연이 이어진다. 이제사 진달래가 절정인가보다. 수백개의 백두대간 리본이 걸려있는 골짜기를 통과하니 고랭지 채소밭이다. 매퀘한 퇴비 냄새로 보아 파종이 임박했나 보다.

소사고개에는 탑선슈퍼란 매점이 있어,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미 다른 한 팀이 선점 중인데, 새벽에 부항령에서 출발하여 우리와는 역방향으로 진행중이라고 한다. 지치고 퍼져 양말까지 벗고 아예 침상에 누운 모습에, 곧이어 삼봉산의 저 고바위를 어찌 넘나 싶다. 민박도 받는다고는 하지만, 등산객 상대만으로는 수지를 맞출수 없고 농사도 같이 짓는다고 한다. “이런 집은 일부러라도 팔아줘야지.” 양종욱 원장을 필두로 문상은 원장, 유승훈 총무와 더불어 음료수를 하나씩 꺼내어 마신다. 이윽고 조 회장이 전명숙 선생님과 함께 들어선다. 노민관 대장이 다리에 통증이 생겨 좀 늦을 거라며 노 대장 몫의 캔맥주까지 미리 챙긴다. 조 회장은 반팔 차림이다.

더위 잘 타는 사람이 저 내리막 진땀에 얼마나 갈증이 났을까 하면서도, 아직 갈 길이 먼데 어쩌나 하는 염려도 살짝 스친다.

오늘 산행 중의 마지막 단체사진이 된 사진을 한장 찍고, 먼저 도착했던 네명이 갈길을 서둔다. 후미조로 뒤쳐지면, 끝까지 가지않고 중간에 덕산재에서 탈출하기로 한 것이, 전체 진행에는 무난하게 작용할 것 같다.

소사고개에서 초점산으로의 오르막이 오늘 산행의 최대 난코스였다. 그래도 초입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다. 산구릉에 나무도 거의 없고 간간이 밑둥이 검게 그을린 삐쩍 마른 소나무만 보이는 것이, 화전민의 텃밭이었거나 혹은 전투의 흔적인지 궁금하다. 급경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고랭지 채소밭, 오미자밭 시설물이며 비닐하우스 등의 개간작업이 보인다.

뒤돌아보니, 내려올 때는 몰라봤던 삼봉산의 암릉이 비로소 온전히 제 모습을 보여 준다. 세 봉우리로 구성된 암릉이 주변의 육산들과 대비되어 멋진 실루엣을 뽐낸다. 마치 한창때 잘 나가는 여배우의 콧날과도 같이.

허나 산은 이제 부터가 고난의 시작이다. 검은 흙먼지를 마시며 오르다보니 콧물 조차 검게 나온다. 앞서 오르는 양 원장의 숨소리가 점차 거칠어지고, 유 총무는 다리에 쥐가 나서 힘들어한다. 내공을 잠재운 문 원장은 거듭된 선두의 권유를 마다하고 묵묵히 따라 오르기만 한다.

초점산(1249m)은 삼도봉이라고도 불리운다. 백두대간에는 이곳 대덕 삼도봉 말고도 지리산 삼도봉과 다음 구간인 민주지산과 이어진 삼도봉이 더 존재한다. 그야말로 영호남의 분수령이 이어지고 있다.

오후 1시08분,초점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는다. 유 총무 부인이 넉넉히 마련해준 김밥도 나눠 먹고 다시금 힘을 낸다. 

초점산을 내려서면서, 1.4km에 걸친 말안장 모양의 넉넉한 능선을 넘나들어 대덕산(1290.9m)에 오른다.정상부에 헬기장을 포함하여 드넓은 공터가 있다. “거대한 봉황이 나는 형상의 산으로 많은 덕을 품고 있어, 이제껏 이 산에서 기를 받고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없다.”고 하니 오늘 산행에 같이 하지 못 한 모든 회원들에게도 이 기상을 전하고 싶다. 전망도 탁 트여 있어서 지나온 삼봉산 뒤편으로, 덕유산 향적봉 아래 스키 슬로프의 잔설이 아직도 남아있고 더 멀리로는 지리산 능선상으로는 천왕봉까지도 가늠된다.

또한 좀 더 동녁으로는 합천 가야산의 암릉이 햇살을 받아 더욱 돋보인다. 가야할 길은 아직 멀지만, 당장은 덕산재(644m)로의 내리막이고, 앞으로는 큰 오르막은 없을 거라고 애써 위안하면서 하산을 서두른다. 내리막 중간에 샘터가 한 군데 있었지만, 물줄기도 약해 보이고 남아있는 물로도 버틸 수 있겠지 싶어 그대로 지나쳤다. 곧이어 얼음폭포라는 앙증맞은 물줄기를 마주했다. 여름에는 손이 시리도록 물이 차가워져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더 쉬었다 가고 싶어도, 여기에서 더 지체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시원한 물에 잠시 손을 담그는 걸로 만족하고 아쉬운 발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라도 물을 보충하지 않은 것을 이내 후회하게 되었다. 30분 후에 도착한 덕산재에 있을 줄 알았던 `덕산재휴게소'는 이름 없는 암자로 바뀌어 있었다.

널찍한 왕복 4차선의 30번 국도에는 오가는 차가 없이, 마냥 한가롭기만 하다. 간간이 사이클들만 신나게 달리고 있다. 아무런 인기척도 없는 가운데, 어디선가 “고철 삽니다.”하는 확성기 소리만 적막을 깨고 있다.

이제 경남을 지나 경북 지역이다. 산행도 종점을 향해 달린다. 부항령까지 5.2km,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고유명사도 아닌 833.7봉, 853.1봉이 지도에 표시된 두개의 큰 봉우리이다. 그러나 이 두 봉우리 이외에도 여러 난관이 우릴 기다리고 있겠지. 사막에서 신기루를 만나듯 오르내림이 계속 될 것임을 예감한다. 그렇게 단단히 각오하고 가면서도,또 걸려 들었다. 

이때도 앞장을 서며 “저곳이 853.1봉 일테니 이제부턴 내리막을 기대하자.”고 한 이후로도, 다섯개의 고개를 더 넘고 있자니 절로 머쓱해진다. 내가 산을 이리 만든 것도 아닌데 괜시리 미안하다. 더구나 853.1봉을 지나면서는 네 사람 모두 식수가 고갈되었다. 후미조가 덕산재에서 산행을 마무리 했다고 연락이 온 것도 이 무렵이었다.

덕분에 한시간의 여유가 생겨, 샤워가 가능한 식당도 섭외하였고, 선두조의 하산 시각에 맞추어 부항령으로 버스를 이동시켜 주기로 하였다. 

가까스로 도착한 부항령(680m)에는 `백두대간 등산로 출구까지 600m'라는 팻말이 함께 걸려있다. 등산로의 부항령(680m)과 1089번 도로상의 부항령(607m)은 서로 다른 곳이었다. 결국 10분간의 하산과정이 보너스로 주어진 셈이다. 저 아래 삼도봉터널 지나 도로변으로 우리 버스가 도착하고, 노 대장과 조 회장이 내리는 모습이 내려다 보인다. 오후 5시50분, 노 대장이 건내주는 맥주 한캔을 들이키면서 9시간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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