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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화 인한 탈 숙련화·인간만의 영역 고민할 때
자동화 인한 탈 숙련화·인간만의 영역 고민할 때
  • 의사신문
  • 승인 2017.04.17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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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은 의사를 대신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제시한 치료법 중 선택에 대해 책임질 사람 필요
의과학자로서의 기초 연구·인간 대 인간 공감 능력 강조될 것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소 소장

알파고 이전에는 한국에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던 인공지능은 돌연 국가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 열풍이 이제는 좀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장기적으로 인류의 미래에 인공지능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의료는 이미 예전부터 인공지능 기술이 가장 먼저 활발하게 적용되어 온 분야였다. 특히, 암 환자 진단, 영상 의료 데이터 분석, 유전체 분석, 임상 시험 등의 측면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며, 일부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 의사의 능력을 이미 뛰어넘고 있다.

인공지능의 거센 파도를 맞이하는 것은 한국의 의료계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에는 국내 병원에 IBM 왓슨이 잇따라 도입되며, 한국 병원의 진료실도 인공지능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가천대 길병원에 이어, 부산대학병원, 건양대학병원,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등까지 IBM의 인공지능, `왓슨 포 온콜로지'를 도입한 것이다.

인공지능이 발전에 따라서 현재 의사가 하는 많은 역할은 대체 가능할 것이다. 의사의 모든 역할을 기계가 대체하기는 어렵겠지만, 인공지능으로 인해 향후 의사의 역할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다른 직종과 마찬가지로 의사에게도 인공지능 때문에 사라질 역할, 유지될 역할, 새롭게 생겨날 역할이 있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학과와 전공별로 다를 수 있다.

무엇이 대체 가능한 역할인가. 암묵지나 직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데이터나 근거에 기반하여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내리는 진단, 판독 등의 의사 결정은 기본적으로 대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동일한 환자를 여러 의사에게 보였을 때 유사한 판단 과정을 거쳐서 비슷한 의사 결정이 내려지거나, 반복적으로 주어졌을 때 동일한 판단을 내릴 종류의 일이라면 인공지능화가 가능하다. 과연 현재 임상에서 의사의 역할 중에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있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결코 사라지지 않을 `인간' 의사의 역할 중의 하나는 최종 의사 결정을 내리는 역할이다. 인공지능이 특정한 의료 분야에서 의사와 비슷하거나 더 정확한 수준으로 발전한다 할지라도, 인공지능이 제시한 치료법 중에 무엇을 선택할지는 인간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의료적 의사 결정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IBM은 항상 왓슨이 의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적 역할에 그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행기 파일럿을 보자. 자동 항법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비행기 파일럿은 이착륙 시 이외에는 이제 조종간을 거의 잡지 않는다. 그 결과 사고도 크게 줄었으며, 조종실에 들어가는 인원도 1970년대 5명에서, 현재 2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자동화 때문에 조종사들이 비상시에 대처하는 조종 기술이 크게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비행기에 자동 시스템을 도입할 때에도, 파일럿이라는 최후의 의사결정권자가 있다는 것이 근거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동화로 인한 파일럿의 탈숙련화라는 변수를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왓슨도 결국 의사들의 탈숙련화를 야기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인공지능의 도입에 따라서 인간 의사에게 강조되거나 새롭게 생겨날 역할도 있다. 아직 인공지능은 데이터가 없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은 스스로 학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아직 연구되지 않은 질병에 대한 연구는 인간만이 수행할 수밖에 없다. 즉, 의과학자로서의 기초 연구를 하는 의사의 역할은 향후 더욱 강조될 것이다.

또한 인간 대 인간으로 환자를 대할 수 있는 공감 능력, 커뮤니케이션 역량도 더욱 강조될 것이다. 실제로 공감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의사에게 중요하다. 의사의 환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높을수록 만성질환 환자들의 예후가 좋아진다는 것이 2만 명 이상의 환자에 대한 후향적 임상 시험에 의해서 증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의 의과대학 커리큘럼이나 수련 과정에서 이러한 역량의 계발이 강조되지 않는다. 의사들은 진료실에서 공감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연구에서는 미국의 종양전문의가 진료시간에 환자에게 공감능력을 얼마나 발휘하는지 분석했다. 실망스럽게도 의사들은 공감을 표현할 수 있는 전체 기회 중에 10∼20% 정도밖에 붙잡지 못했다. 이는 진료에 20∼30분을 사용하는 미국의 사례로, 3분 만에 진료를 끝내야 하는 한국의 의사들은 인공지능과의 경쟁에서 더 불리한 여건에 있다.

인공지능이 의료를 혁신하는 이러한 미래는 피할 수 없다. 그러하다면 의료계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선도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변화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므로,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새로운 길을 조심스럽지만 선도적으로 개척해야 한다. 향후 인공지능을 이용한 진료 가이드라인의 제정과 의과대학 교육 과정 및 수련 의사의 훈련 방식도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변곡점의 시기에 의료계는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선도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기계와 함께 달리는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새로운 파트너와 어떻게 달릴지를 규정하는 것은 지금의 우리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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