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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는다”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는다”
  • 의사신문
  • 승인 2017.04.0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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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60〉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최종 결정하여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 조사를 받고, 차기 대통령 선거는 코 앞에 다가왔다. 나는 정치에 문외한이고 그동안 국내 정치인에게 실망이 겹쳐 일부러 관심을 안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급변하는 사회정치 분위기 속에서 한가하게(?) 의료현장 만을 이야기할 수가 없어 현 사태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한 대학교수의 부족하지만 충정 어린 의견으로 여러분이 따뜻하게 이해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불과 3개월 전까지도 우리가 뽑은 떳떳한 대통령으로 여겨지던 사람이 실망스럽게도 권력을 남용한 부패행위로 이제는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 헌정사상 국가 원수가 처음 파면된 수치스러운 일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의견은 나뉘어 세대와 지역 간의 반목으로까지 비약되려고 한다. 여기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이에 대항하는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면서 중국과 외교적 갈등이 더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서 국내외 언론은 한반도에 집중되고 있다. 

나는 한국전쟁 중에 태어났고 정년을 앞둔 지금까지 이러한 한반도의 정치사회적 위기를 수없이 목격했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것으로 4.19 학생혁명, 5.16 군사 쿠테타, 유신체제, 신 군부 12.12 사건, 광주 민주화 운동, 1987년도 민주항쟁, IMF 사태 등 큰 것만 하더라도 열손가락으로 세어야 한다. 모두들 이럴 때마다 북한의 군사 도발도 염려되었고 나라가 망하지 않을까 걱정하곤 하였다. 위정자들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서해안 휴전선을 사이에 둔 남북갈등을 과장하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게에 있는 생필품이 사재기로 동나는 등 불안한 사회분위기에 휩쓸리곤 하였다.

사실 대통령 주위 인물들의 권력형 비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권력을 남용하였고 문민정권이던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친척들이 비리에 참여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문제로 세상을 떠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러한 비극의 역사에서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작금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한반도에 이렇게 반복되는 정치사회적 갈등과 위기가 많아왔다. 오죽하면 국제언론기관에서 우리나라를 특파원의 천국이라고 말하였을까? 특종을 바라는 기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라는 뜻이었다. 한국에서 근무하는 동안 굵직한 사건이 많아서 취재성과가 높아지고 승진이 쉽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이번에 내가 놀란 것은 사태를 겪으면서도 과거와 같은 사회 동요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탄핵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대형 집회가 수없이 열렸지만 모두 평화적으로 질서 있게 진행하고 자기 의견을 활발하게 표현하였다. 언론과 SNS가 의견수렴에 큰 역할을 하였다. 민중들은 우리나라가 기로에 있지만 위기에 처해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 즉, 나라의 사회 안정과 국가 안보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사회 동요는 전혀 일어나지 않고 수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북한 미사일 사태에 여유를 가지고 대처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주식시장은 안정되어있고 오히려 상승세이기까지 하다. 

왜 과거와의 다른 이런 현상은 무엇 때문일까? 물론 정부관리의 노력도 있지만 우리 국민 모두가 믿음직하게 자기 소임을 다하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사회의 경제구조가 정치와 상관없이 자율적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시련과 단련으로 국민의 역사의식이 생기고 성숙되어 이 정도에 충격은 정신적으로 견디어 나가는 것도 원인이겠다. 

나는 우리 대학에 가까운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특이한 물건을 발견하였다. 동대문 방향 플랫폼의 끝자락 벽에 청동으로 견고하게 작성한 이 구간 공사 연혁판이다〈사진〉. 1981년 3월부터 1985년 4월까지 시행한 지하철 건설공사에서 토목, 건축, 궤도, 전기, 신호통신 분야 별로 설계와 시공을 담당한 회사와 책임기술자 이름을 깊게 새겨놓았다. 그 위에 “정성으로 건설하여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는다”는 다짐도 조각하였다. 우리가 안심하고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는 지하철은 건설 당시 이분들의 비장한 정성과 노력이 바탕에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역사에 책임을 지는 이러한 분들의 생각과 행동으로 건실하게 유지되고 있다. 

과거 역사에서 가르침을 얻지 못한 박 대통령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통령 선거와 남북한 관계 등 산적한 앞 일을 푸는 과정에서 관계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이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으려는 냉철하고 현명한 다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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