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씨 아쉬웠지만 백록담까지 올라 `행복'
흐린 날씨 아쉬웠지만 백록담까지 올라 `행복'
  • 의사신문
  • 승인 2017.03.27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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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산악회, 한라산 겨울 산행기
남기헌 서대문구, 남기헌정형외과

`한라산은 제주도이고 제주도는 바로 한라산이다' 어느 책자에 나오는 말이다

문헌비고(文獻備考)에 조선 영산으로는 열둘이 있는데 그 첫째는 삼각산이고, 둘째는 백두산, 셋째는 원산이라 했다. 원산이 바로 한라산이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한가하게 누워 있는 듯한 이 산은 해안으로부터 완만하게 올라가면서 결국 1950m 최고봉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산기슭이 바로 바다에 닿아 있는 특이한 산이다.

한라산행이 예정되면서부터 마음이 설레었다. 기다리는 한달 동안 사정이 생겨서 산행을 못할 위기도 있었으나, 나는 고대하던 한라산행을 우선으로 두었다.

산행 당일 아침, 어린아이처럼 신나는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제주도로 향했다. 날씨가 흐렸지만 그 나름대로 즐거움을 찾으며 공항으로 달렸다.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일행들이 와 계셨다. 서로 안부를 물으며 반갑게 인사하고 어느 코스를 선택해야 할지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이번 산행은 두 코스로 나뉘어서 진행되었다. A코스는 관음사에서 출발하여 삼각봉전망대-백록담-성판악으로 내려오는 8시간 코스고, B코스는 영실로 올라가서 윗새오름을 거쳐 어리목으로 내려오는 5시간 코스다.

우리 부부도 고민을 하다가 영실 코스는 지난 여름에 다녀온 터라 위험을 무릎 쓰고 8시간 산행 코스를 선택하여 두려운 마음 반, 기대 반으로 관음사 코스로 들어섰다.

날씨가 좋지는 않았지만 긴장감 속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돌이 많았다. 걷기가 편하지는 않았다. 한라산이 화산분출과 지반융기에 의해 이루어진 산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오르다보니 계단이 나타났다. 산의 가파름을 따라 계단 오르기도 쉽지 않았다. 

한라산은 다양한 기후만큼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의 서식터이다. 한라산의 식물의 종수는 1620여 종, 그 중 희귀종이 150여 종에 이른다하여 주변을 살펴봤지만 흐린 날씨와 부족한 지식으로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이런 곳에 내가 있다는 뭔지 모를 뿌듯함만이 마음 속에 자리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보통 산행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어서 좀 쉬면서 갈 수 있는데 한라산은 정상까지 오로지 오르막이다. 우리의 일차 목표는 12시까지 삼각봉 전망대를 통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로 하산해야 했다. 

산을 오를수록 경사는 더욱 가파르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점점 지쳐갔지만 서로를 격려하며 산행을 계속했다. 어렵게 11시 반 경 삼각봉 전망대에 도착하니 양종욱 선생님께서 달콤한 귤을 주신다. 정말 시원하고 꿀 맛이었다.

조금 더 쉬고 싶었는데 더 쉬면 못 오를 것 같아 다시 백록담으로 향했다. 우리 부부의 몸은 어느새 지쳐만 갔고 그 느낌을 아셨는지 양종욱 선생님이 우리 부부 뒤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기다려 주셨다.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하면 재촉할수록 날씨는 점점 나빠졌다. 함께 오르는 사람들의 머리카락은 눈꽃으로 변해 있었다. 이제 금방 도착할 것만 같았던 백록담은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성애가 낀 안경으로는 옆에 함께 가는 아내만 보였다. 바람은 더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지난 여름 맑은 날씨에 영실 코스를 오르던 생각만 했었는데 마치 다른 산 같았다.

아! 이러다 조난을 당하는구나 생각을 할 정도였다! 평상시 한라산은 대체로 온순하여 사람들을 멀리하지 않지만 겨울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이나, 비바람에 시야가 흐려지는 날에야 비로소 한라산의 또 다른 면을 알게 된다고 한다. 아마 이러한 한라산의 겨울 날씨 때문에 한라산이 명산으로서의 위용이 더욱 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라산 설원은 곧 잘 해외원정 등반대원들의 겨울산악훈련장이 된다고 한다. 이런 산을 지금 우리 서의산 대원들이 함께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함으로 벅차올랐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는 어찌 보면 미련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산이 순간 성난 모습으로 인간을 당황하게 만들 때가 많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은 산 앞에서 겸손함을 배우게 되리라!
드디어 백록담에 도착했다. 

백록담을 빼놓고 한라산을 생각 할 수는 없다. 분화구 안에 있는 못은 옛날 신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백록을 희롱하며 놀았다 하여 백록담이라 불려졌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들은 백록담과 그 아래 산의 아름다운 곳을 찾아 놀았다. 그런데 백록담에는 선녀들도 내려와서 그 깨끗한 물에 목욕을 하고 놀다가 때가 되면 하늘로 올라가곤 했다. 그러한 사실을 안 어떤 신선이 목욕하는 선녀를 한 번 보고 싶어서 혼자 바위 틈에 숨어 목욕하는 선녀를 몰래 훔쳐보았다. 한 참 목욕을 하던 선녀가 인기척에 이 사실을  눈치 채고는 그만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옥황상제가 놀라게 되었고 하늘나라에서는 소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안 신선은 겁을 먹고 산 아래로 도망쳐 뛰어내렸는데 그 자리가 움푹 들어가서 용진각이 되었다. 신선은 옥황상제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 마구 산 아래로 달음질 쳤는데 그 자리마다 깊게 패어서 계곡이 되었고, 그곳이 바로 탐라 계곡이라 한다.' 이런 전설이 담겨진 백록담!

신선을 볼 수 있을까? 운 좋으면 선녀도…. 그러나 앞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바람 때문에 몸도 가눌 수 없었다. 백록담은 커녕 정상에서 산 아래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좀 쉬면서 어디 지친 몸을 맡기고 싶어도 쉴 곳도 바람을 피할 곳도 보이지 않았다. 산 관리인은 계속 하산하라고 했다. 우리가 올라온 관음산으로 내려가는 길도 막아버렸다. 

한동안 멍한 상태에 있을 때 어디선가 낯익은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조해석 회장님이다. 다른 일행이 있는지 확인하시고 아직 올라오고 계시는 분이 있다고 우리 부부에게 먼저 내려가라고 격려해 주셨다. 

하산은 올라올 때보다 더 힘들었다. 잘 먹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고 휘몰아치는 바람을 뚫고 진달래 대피소까지 어서 가야했다. 어느새 조회장님과 신기섭 선생님이 합류하셨다.

이제는 우리 부부가 문제다. 많이 지친 아내는 말소리도 없다. 처음 산 오르기 시작할 때 흥분된 모습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다. 하산할 때에도 날이 흐려서 시야에 들어오는 경관은 거의 없었다. 다만 잔돌이 깔린 숲 사이로 제주조릿대가 융단처럼 뒤덮혀 있었다. 시야의 끝까지 뒤덮혀 있는 조릿대를 보면서 그 왕성한 번식력에 생명력의 무한함을 느꼈다. 몸이 지쳐서인지 밟히는 것이 돌 뿐이어서인지 하산은 더 힘들고 길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회장님과 신기섭 선생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8시간 30분만에 성판악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은하수를 잡아 끌어당길 수 있다' 란 뜻을 가진 한라산. 조선의 남쪽을 지켜주는 한라산!

비록 날씨가 좋지 않아서 산의 면면을 보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백록담까지 올라 발을 디뎠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한라산행은 우리에게 큰 선물이었다. 그리고 새하얀 눈이 쌓이고 맑고 높은 하늘의 다음 한라산행을 기다리게 해주는 산행이었다. 한라산에는 분명 산 이상의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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