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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의 마음'을 내려 놓고 눈길 산행을 즐기다
`완주의 마음'을 내려 놓고 눈길 산행을 즐기다
  • 의사신문
  • 승인 2017.03.20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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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산악회] 백두대간 산행기 - 노치마을에서 매요 마을까지
유승훈 서울시의사산악회 총무 강서 보아스이비인후과의원장

어두운 밤 하늘에 눈발이 무심히도 굵어지고 있었다. 이미 전날에도 많은 눈이 내렸는데 설상가상이다. 백두대간 산행을 위해 남원까지 기차로 가기로 했는데 당장 내일 새벽에 용산역까지, 더욱이 남원역에서 내려서 산행 진입로까지, 이 눈에 택시가 다닐까하는 우려는 커져만 갔다. 

늦은 시간 산악회 회장님, 대장님과 통화를 했다. 이심전심. 대원들에게 연락이 안되어 일단 내일 새벽까지 기다려보고 결정하기로 하고 꿈꿈한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히 밤사이 눈이 더 이상 내리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조용한 일요일 어두운 새벽에 가로등 불빛을 보며 집을 나선다. 도로 중간 중간이 약간 얼어있어, 미끄러워 보였지만 기우였나 보다. 더욱 반가운 마음으로 모인 7인의 대원들은 수다로 백두대간 산행을 시작한다. 

이번은 서울시의사산악회의 27번째 백두대간 산행으로, 전라북도 남원의 고기리에서 복성이재까지 약 27km 정도의 거리이다. 거리상으로는 제법 먼 거리이지만 백두대간 산행 중에서 마을을 거쳐 가는 코스이고 상대적으로 조금 무난한 코스이다. 남원으로 내려가는 중에 익산에 도착을 하니 다시 눈발이 날리는 것이 보인다. 

살짝 불길한 마음이 엄습을 한다. 어렵게 내려왔는데 산행도 못하고 다시 서울로 가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역시 남원에 도착을 해보니 눈이 제법 많이 내렸다. 계획을 수정하여 택시로 고기리 대신 노치마을로 이동을 해서 산행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남원 시내에서 콩나물국밥으로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이동을 한다. 아침 8시55분에 눈을 맞으며 산행을 시작한다.

출발부터 예정한 시간보다 조금 늦어지고 있다. 눈이 내리는 악조건이었지만 덕운봉을 지나 수정봉(해발 804.7m) 까지는 무난하게 올라왔다. 대략 1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다행이라면 바람이 그리 강하지 않아서 산행길이 조금은 수월했다. 수정봉에서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재정비를 하여 다시 출발한다. 

깃바래봉이 약 4km 지점인데 2시간에 통과를 한다. 평균적으로 시간당 2km 정도를 걷고 있는 셈이니 눈이 오는 환경을 생각하면 그리 나쁜 속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전체 산행을 생각하면 늦어지고 있었다. 거리가 멀기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하면 예정된 시간에 완주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당일 저녁에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를 예약해 두었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물론 부득이한 경우가 발생하면 늦어질 수도 있지만 다음 날 진료를 생각하면 무조건 올라오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 

푸짐히 많은 눈과 나무들을 보면서 하염없이 걷다가 보니 여원재에 도착을 했다. 대략 6.3km 지점이고 3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여원재는 남원시 운봉읍과 이백면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로서, 고려말 이성계가 황산 전투에 임할 때 어느 노파가 꿈에 나타나 고남산 삼신단에 올라 3일간 기도하고 출전하라고 알려주어 대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성계는 꿈 속의 노파가 고갯마루에서 주막을 운영하다가 왜구의 괴롭힘으로 자결한 주모였다고 믿고 노파를 위로하기 위하여 사당을 짓고 여원(女院)이라 불렀는데 그 때부터 이 고개 이름이 여원재가 되었다(서부지방 산림청에서 발췌)고 한다. 

여원재의 길가에 있는 대장군상이 무심히 우리를 맞아준다. 여원재에는 4차선 도로가 있어서 자동차들이 무척이나 많이 다닌다. 일반 휴게소도 있지만 조심해서 길을 건너 바람을 피하려고 조그마한 버스 정류소 안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음식을 먹으며 후미가 오기를 기다린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언제나 앞서 가시는 양종욱 형님이 뒤로 쳐지신다. 이윽고 후미가 도착을 하고 7명이 같이 가볍게 음식을 나누며 오늘 산행에 대해 논의를 했다. 논의 결과는 계획된 복성이재까지 가는 것은 날씨때문에 무리라는 것이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가능한 구간까지 최대한 진행을 하기로 한다. 양종욱 형님은 오늘 산행이 완주를 못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시고 이미 천천히 오고 계셨다고 한다. 

그런데 여원재를 출발하면서부터 생각지도 않았던 사단이 났다. 속도를 내서 빨리 가려는 마음이 급해서 그랬는지 눈이 많이 와서 그랬는지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산속이 아니라 마을 주변이었기 때문에 고립이라든가 조난이라든가 하는 상황은 전혀 걱정할 것은 없었지만 마음은 급한데 길이 없으니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회장과 대장 그리고 필자가 나뉘어서 길을 찾았다. 

이곳이 선행했던 분들이 알바(산에 다니는 사람들끼리 은어로 산에서 길을 잃어 버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일을 알바라고 한다.)를 주의하라고 블로그에 지적했던 그곳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결국 우리도 알바를 하고 말았다. 늦어서 빨리 가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뜻하지 않은 알바로 더 늦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마음은 편해졌다. 이미 완주는 물 건너 갔고 즐기며 가는데까지 가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길을 어렵게 찾아서 다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다음 중간 지점인 고남산(846m)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보통 산을 오른 다는 것이 다 힘이 들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제법 숨이 차고 힘이 든다. 연재성 명예회장님이 고남산에 오르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이 산의 이름은 원래 고난산이었을 것이라고 농담을 하신다. 눈이 많고 바람이 많아서 그런지 유난히 힘이 든다는 생각을 하면서 정상에 올랐다. 

여원재에서 고남산까지 거리가 5.4km이다. 중간에 식사를 하였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더 소비되어 여기까지 총 5시간20분 정도 걸렸다. 조금 희한한 것이 이곳은 정상석이 정상이 아니라 정상에서 조금 내려온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정상이 너무 좁아서 그랬겠지 라고 생각하며 후미를 기다렸는데 너무 춥고 강한 바람 때문에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다. 

고남산을 넘어 매요리로 향하는 길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한다. 내려오면서 왼쪽으로 예전에 88고속도로라 불렸던 광주대구 고속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조망이 트여서 답답했던 가슴도 같이 뚫리는 기분이다. 지루한 풍경 속에서 문득 문득 나타나는 주변 산들의 모습은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된다. 

드디어 매요리에 도착을 했다. 행정 구역으로는 남원시 운봉읍 매요리인데 원래 지세가 말의 형국을 닮아서 마요리(馬腰里)라 불렸는데 임진왜란 이후에 사명당이 이 마을에 당도하여 매화의 정기가 감도는 것을 보고 매요리(梅要里)로 고치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여 이후로는 매요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백두대간을 다니는 사람들에게 유명한 매요 휴게소가 있는데 우리 팀이 도착했을 때는 불행히도 문이 닫혀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주변 버스 정류소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지나가는 할머님이 휴게소 주인 할머님은 노인정에 계시다고 알려주신다.  

노인정으로 직접 가서 주인 할머님을 모시고 왔다. 라면을 주문하고 막걸리를 한잔 마신다. 여기서 먹는 라면 맛은 꿀맛이다. 언 몸을 녹이는데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마 지친 산행을 마치고 나서 더욱 그러했으리라. 주인 할머님은 요즘 손님이 너무 없다고 푸념을 하신다. 맛있게 잘 먹고 할머님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다시 남원으로 향한다. 

원래 계획했던 27km의 산행은 허무하게 17km 산행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이 또한 어찌하랴,  산이 허락을 해야 오를 수 있는 것을. 이런 것이 인생이겠지. 우리에게는 아직 튼튼한 다리가 있고 시간이 있으니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어차피 백두대간은 긴 산행이기 때문에 누구나 구간을 나누어서 산행을 한다.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남원으로 이동하여 기차에 올랐다.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하면서 느끼는 것은 첫째로 우리나라의 뼈대를 직접 걸어본다는 뿌듯함이다. 다음으로는 당연히 힘들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으니 모든 백두대간 산행에 참석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참석하려고 노력한다. 가까운 시간에 있을 다음 번 백두대간 산행은 오늘 못간 것을 합쳐야 하니 매우 힘든 긴 여정의 산행이 될 것이다. 

다음 산행에는 죽었구나 생각을 하다가 피곤함으로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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