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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극복기 <17> 다나을내과의원 김 지 원장
암 극복기 <17> 다나을내과의원 김 지 원장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7.03.13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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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지내던 서른넷에 찾아 온 `위암'에 충격

위 4/5 절제 수술 받았지만 조기발견으로 다행히 전이 안돼
규칙적 식사·금주·금연 및 반신욕으로 36년 동안 건강 유지

오직 의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남들 잘 때 안 자고 남들 놀 때 안 놀며 죽어라 공부했는데, 그 어렵고도 힘들었던 시기를 거쳐 이제 겨우 레지던트가 됐는데, 아직도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가야할 길이 먼데. 아직 산 날보다 살 날이 더 많이 남은 내 청춘 30대. 힘없이 저무는 내 인생이 불쌍하고 안타까워 삶에 대한 서러움이 밀려왔다. 〈암을 이기는 의사들 발췌〉

1980년 10월, 세상사람 모두가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가을'을 느끼고 있을 때,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앞날이 창창한 30대에 불현듯 찾아온 `암'이 증오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사로서 내 건강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이런 불상사를 겪게 됐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바쁘다, 바뻐'가 부른 `암'
의사생활 중 가장 바쁜 시기는 `인턴시절'이다. 과거 인턴은 밥 먹을 시간은 고사하고 잠자는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당직과 수술보조를 도맡는 등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일이 많았다. 

김지 원장도 그랬다. 1979년 인턴 시절 일이 너무 많아 식사를 거르기 일쑤였다. 그나마 이동 중 엘리베이터 안에서 빵과 우유에 빨대를 꽂아 마시는 식사는 여유로운 것이었다.

그는 언제 튀어나가야 할 지 모르는 상황 속에 잠 한 번 마음 편히 들지 못했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수면과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이다. 거기에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김 원장은 가끔 속이 쓰리거나 어쩌다 제대로 한 식사가 소화가 되지 않아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증상이 조금 심하면 소화제나 위장약 등을 먹으며 아픔을 가라앉혔다. 그렇게 하루하루 바쁘다는 핑계로 `내 몸이 보내는 소리'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김 원장은 그렇게 정신없던 인턴생활을 마감하고 정식으로 의사(레지던트)가 됐다. 하지만 그의 생활패턴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러면서 위장약을 찾는 일은 더 잦아졌다. 그리고 매일 술자리도 있었다. 

술 먹은 다음날은 속이 더 쓰렸다. 김 원장은 계속되는 속쓰림을 이상하게 여기고 위장관 촬영을 했지만 별다른 증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게 레지던트 1년차 생활이 흘러가고 있었다. 1980년 10월. 그날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식사 시간만 되면 전형적인 속쓰림이 나타났다. 지도교수에게 위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나는 의사야, `30대 찾아온 암'
내시경 조직검사 결과 암세포가 발견됐다. 김지 원장은 조직검사를 믿을 수 없었다. 불과 10개월 전 위장관 촬영 당시 발견하지 못한 암세포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속쓰림이 잦아 위궤양 정도라고 간단히 생각했는데 암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더욱이 80년대에는 지금과 달리, 암은 50대에 발병하는 질병이며 암 진단을 받으면 무조건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생각할 때로 충격은 더욱 컸다. 당시 김지 원장의 나이는 겨우 34살이었다. 

김지 원장은 많은 생각이 오갔다.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먼저 간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과 함께 어렵게 의사의 길을 택한 뒤 제대로 된 삶을 살아보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 후회스럽고 아쉬웠다. 김지 원장의 집은 `초상집'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수술이 잘되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했다. 

그의 수술 날짜는 10월 23일로 결정됐다. 수술 전날, 김 원장은 의사가운이 아닌 환자복을 입고 있으려니 어색하고 이상했다. `진찰을 해야 할 내가 검사대에 왜 누워있지'라는 생각에 불편했다. 그러면서 “난 의사야 왜 암에 걸렸지? 이건 부당한 일 아닌가, 여긴 내 자리가 아니야”라며 억지스럽게 마음을 다잡았다.

김 원장은 현실을 부정하며 병실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고 답답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혹시 내일 수술이 잘못되면 어쩌나, 암이 생각보다 많이 진행돼 생명이 위험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어쩌지'하며 수술을 앞두고 갖가지 생각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는 마음도 안정시키고 머릿속도 정리하기 위해, 그리고 수술장에 들어가기 전에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병실을 나와 `목욕탕'을 찾아 나섰다. 

■땅에 떨어진 낙엽, 초라한 내모습
김 원장은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근처 목욕탕을 찾아 나섰지만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길을 걷다 광화문까지 내려왔고,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가로수의 낙엽이 꼭 처량한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는 것에 답답함과 슬픔이 밀려왔다. 

그렇게 김 원장은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 김 원장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극장에 들어갔다. 천주교를 주제로 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그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김 원장은 영화를 보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

김 원장은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느닷없이 찾아온 암이라는 질병 앞에서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는지 “순간 몸 안에 있던 모든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에 왜 이런 시련을 겪게 됐는지, 이제 꽃길만 남은 줄 알았던 삶이 이렇게 저물어 가는 것이 원망스럽고 답답했다. 하지만 후회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1/5만 남은 내 위, `얼마나 다행인가'
김지 원장의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일단 그가 걱정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김 원장은 빨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도 원치 않은 소식이 전해질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수술 후 5일이 지나도록 수술 결과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의료진은 아무도 없었다. 

김 원장은 답답한 마음에 주치의를 직접 찾아가 수술경과를 물었다고 한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위 점막 하층까지 암이 침투해 위의 5분의 4를 절제했다. 그러나 절제 후 남은 위장과 십이지장을 연결해 주는 수술도 무리 없이 끝났고 복부 임파선 23군데를 검사했지만 전이된 곳은 없었다. 

김 원장의 몸에 생긴 암은 위의 5분의 4, 80%를 빼앗아갔다. 하지만 생활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수술 직후에는 음식을 소량으로 여러 번 나눠 먹었지만, 적응 기간이 지나면서 평소처럼 아무 음식이나 먹어도 문제되지 않았다. 그는 암으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데 이 정도로 끝난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고 한다. 

이후 김 원장은 위암 재발을 막기 위해 사전예방 차원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고통이 없지는 않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적었고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정상적으로 생활하기까지는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김 원장은 돌이켜 보면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말한다. 3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암이 찾아와 절망도 했지만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고 한다. 

■야채햄, 홍삼, 조깅 암 극복 원인 
김지 원장은 수술 후 `삶'의 방식을 바꿨다. 생활 패턴과 환경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수술 후 5년간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거르기 일쑤였던 식사를 규칙적으로 했다.

그리고 의사생활의 어려운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스트레스를 줄여나갔다. 담배도 더 이상 찾지 않았다. 

이뿐 만이 아니다. 김지 원장은 어머니의 권유로 `홍삼'을 달여 음료수처럼 마셨다. 6년근 홍삼 5뿌리와 대추 10알, 생강 반 개, 물 2리터를 넣은 홍삼 물을 잊지 않고 챙겨 마시고 있다. 그리고 단백질과 채소류 위주로 식사를 하고 있다. 

김지 원장이 즐겨 먹는 음식은 `수제 야채 햄'이다. 수제 야채 햄은 기름기 적은 소고기와 당근 반 개, 양파 반 개, 애호박 반 개, 마늘 4쪽, 찹쌀가루를 넣어 만든 햄으로 10년째 샐러드와 함께 아침에 먹고 있다. 이와 함께 김 원장은 지나치게 맵고 짠 음식은 피하고 있다. 그리고 조깅과 등산의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건강을 챙기고 있다. 반신욕도 즐겨하고 있다. 그는 반신욕은 혈액순환에 탁월하다고 이야기 했다. 김지 원장은 수술 이후 36년간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 

■“중이 제머리 못깎는다”
김지 원장은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이 의사들에게 적절한 말인 것 같다고 한다. 의사들은 `내가 의사야'라는 인식으로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 원장은 의사들도 자신들의 몸을 전문가에게 맡길 필요가 있다고 당부한다. 의사도 환자로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내가 놓칠 수 있는 질병을 다른 의사들이 찾아 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지 원장은 `의사'들은 융통성도 없고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다고 진단한다. 암은 스트레스에서 오는 질병이다. `암'이라는 질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직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여야 하며, 이를 풀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암'은 극복할 수 있는 질병”이라며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식습관을 바로잡으면 암은 찾아오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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