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입가에 웃음이 번지기를<18>
그의 입가에 웃음이 번지기를<18>
  • 의사신문
  • 승인 2010.02.1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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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월 무렵에 꽃을 피우는 보세란 중 일향이라는 품종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물을 줄 수 있도록 난을 심었습니다. 배달된 난에 꽃대가 달리지 않아 한편으로는 서운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나름 좋은 난을 보내려고 이리 저리 궁리를 했을 난원의 아주머니가 고맙기도 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이 정년퇴직을 하고 새로 사무실을 열었다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20년 전 처음 그를 만났습니다. 그 때는 둘 다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해야 할 일도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비록 일 때문에 만나는 사이이기는 했지만 그는 늘 부드러웠고 편안했습니다. 단 한 번도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었을 만큼 그의 배려는 늘 찬찬했습니다. 지금까지 늘 그의 조언과 도움을 받기만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하는 일이 정말 잘 풀려서 그의 새로운 삶이 더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난을 한 분 보내려 합니다. 오래전부터 가끔 찾았던 난원이 있었는데, 근래 몇 년 동안 까맣게 잊고 지내다보니 이젠 가게 이름조차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겨우 연락처를 찾았습니다. 전에 살갑게 맞아주던 아주머니는 몇 해 전 그만 두었다는군요. 이런 저런 과거 이야기를 하며 예전에 제가 거기 단골손님이었다는 이야기를 해가며 난을 골랐습니다.

설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니 보세란이 좋은 때입니다. 아직은 꽃대를 올리고 있는 난들이 제법 있을 것입니다. ‘보세(報歲)’라는 난은 음력 정월 초하루 즈음에 꽃을 피우며 잎이 매우 넓습니다. 꽃으로 새해를 알린다는 의미의 이름입니다. 보통은 꽃대 하나에 흑자색의 꽃이 여러 송이 피며 향이 좋습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비교적 키우기도 어렵지 않아 가까이 하기에 좋은 난입니다.

사람도 그 생김새가 제각각이고 성격도 다 다르듯 보세란도 그렇습니다. 그저 온통 짙푸른 잎이 그저 하늘을 향해 꼿꼿하게 서 있는 경우도 있고 옆으로 넓게 퍼지며 자라는 품종도 있습니다. 잎의 중앙부에 흰 무늬가 길고 화려하게 들어 있는 품종이 있는가 하면 잎 가장자리에만 흰 무늬가 깊이 들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상담 끝에 일향 (日向)이라는 품종을 한 분 주문했습니다. 일향은 잎 길이가 길지는 않으며 옆으로 적당히 퍼지고 잎 끝이 날카로워서 강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가장자리의 백색 무늬가 제법 화려하기도 합니다.

크지 않은 도자기 화분에 6촉을 심었습니다. 화분 포장은 하지 말고 다만 운반하는 동안 난석이 쏟아지지 않게만 은박지로 잘 덮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작은 리본하나. 직접 가지고 가 건넬 생각입니다. 받아 보니 화분의 크기가 적당해 창가에 두고 바라보기에 좋은 난입니다. 다만 꽃대가 하나도 없어 조금 서운하기는 합니다. 그래도 잎 무늬가 제법 화려해 꽃이 없어도 보기에 좋습니다.

몰두해 일하다가 문득 창가에 다가와 지그시 바라보고 한 주일에 두 번쯤을 조심스럽게 흠뻑 물주는 수고를 즐기기 바랄 뿐입니다. 그러는 동안 다시 마음을 편안하게 다스릴 수 있겠지요. 그가 새로 시작한 일이 조금씩 자리를 잡을 때쯤이면 창가의 난도 봄을 느끼며 삐죽 새 촉을 올릴 것입니다. 그의 입가에 웃음이 번지기를 바랍니다.

 오근식 <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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