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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었던 아버지의 외로운 삶을 위로하며
한 사람이었던 아버지의 외로운 삶을 위로하며
  • 의사신문
  • 승인 2017.02.2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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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의학문인회 독후감 공모전 수상작 〈7·완〉 : 장려상 - 박범신의 `소금'을 읽고 나서
서향근 한마음요양병원

가족을 위한 기계적 삶을 살던 아버지의 갑작스런 `증발'로
아버지의 희생과 우리들의 `달고 시고 쓰고 짠' 인생 돌아봐

청년 소설가 박범신은 40번째 내어 놓은 장편소설 `소금'에서 화려하지 않은 수식어들로 어머니가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하여 푹신한 이불을 만들어내 듯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가족이라는 테두리로 묶여있는 우리들의 삶의 달고 시고 쓰고 짠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소금은, 모든 맛을 다 갖고 있다네,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단것, 신것에 소금을 치면 더 달고 더 시어져. 뿐인가, 염도가 적당할 때 거둔 소금은 부드러운 짠맛이 나지만 32도가 넘으면 쓴맛이 강해. 세상에 모든 소금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맛이 달라. 소금에 포함된 미네랄이나 아미노산 같은 것이 만들어내는 조화야. 사람들은 단맛에서 일반적으로 위로와 사랑을 느껴. 가볍지. 그에 비해 신맛은 나에게 시비를 거는 것 같고, 짠맛은 뭐라고 할까, 옹골찬 균형이 떠올라. 내 느낌이 그렇다는 거야. 쓴맛은 그럼 뭐냐. 쓴맛은, 어둠이라 할 수 있겠지.”

주인공 선명우는 그의 아버지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젊었을 때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아내와 세 딸의 `통장'이 되어 하루하루를 기계적으로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이 췌장암 말기라는 진단은 가족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딸 시우의 생일날에 일어난 기구한 교통사고로 인하여, 자신을 위해 모든 걸 바치고 죽어간 염부인 아버지를 기억해 내고 `통장'이 아닌 한 가정의 `희망'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출을 한다. 세상의 아버지가 다 그렇듯, 선명우도 그리고 선명우의 아버지도, 일인칭 화자인 시인도, 시인의 아버지도, 아버지이기 때문에 가족을 위하여 사회의 치사한 굴욕과 어둠의 쓴맛을 묵묵히 견디어 왔다. 그 치사한 굴욕과 어둠의 쓴맛이 크면 클수록 자신의 꿈과 희망과 자기는 반비례하게 된다.

가출한 선명우는 자신 뿐만 아니라, 한 가정안에서도 전혀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 구성원인 다리를 저는 함열댁과 키가 유난히 작은 신애, 실명에 가까운 시력을 가진 지애와 김승민을 위해 새로운 가족 공동체로서 동거를 시작한다. 그의 졸업식 날 염전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를 망각함으로 아버지와의 관계를 끝내버렸던 선명우는, 마음 속에 철저히 봉인되어 있었던 아버지를 기억해 내며 교통사고로 사지마비가 된 김승민을 돌본다. 이미 김승민의 가족이 그랬듯이 개조한 트럭에서 전국 각처를 돌아다니며 낮에는 장사를 하고 밤에는 거기서 잠을 잤다. 김승민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조용한 물을 만나면 김승민을 안고 냇가로 가 목욕을 시켜주었다. 그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벗어버리고 선명우로 돌아가, 염부 아버지에게 못했던 사랑을 이상한 가족들에게 베풀며 또한 자신의 꿈을 찾는다. 어머니의 이미지와 많이 닮아 사랑했던 세희누나의 기억을 더듬으며 아버지가 일구었던 염전으로 돌아가 세상 사람들을 위한 좋은 소금을 만드는 염부가 되어간다. 소금의 신비로운 조합인 단맛, 신맛, 쓴맛, 짠맛이 내는 위로와 사랑, 나에게로의 신선한 시비, 옹골찬 균형을 위하여.

아버지의 가출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 설정이었다. 그러나 정직하게 생각해 보면 나 자신도 아버지가 가족과 핏줄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아버지에게 강요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현대는 `아버지의 증발'이라는 독특한 현상 속에 살고 있다. 아버지가 자기의 꿈을 따라 가출을 하던, 더 이상 아버지의 말의 계율이 아들에게 종속되지 않던지 간에. 내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 아버지의 외로움을 왜 깊이 헤아리지 못했을까 가끔 후회가 된다. 가끔씩 술을 마시고 취해서 들어오는 아버지께 무슨 걱정이 있나 해서 `오늘은 기분이 좋아 마시는 술이었습니까 아니면 근심이 있는 술이었습니까' 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했지만 한번도 아버지는 그 아픈 마음을 풀어놓지 않으시고 웃음만 지으셨다. 진정 나의 아버지가 무슨 희망이나 욕망을 가지고 살았는지 나는 모른다. 단지 자녀가 잘 자라주는 것 외에.

어떤 가정의 이혼 사유가 가장인 아버지가 자신의 꿈을 위해 잘 나가는 직장을 버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아버지 마음대로 선택했다는 것이었다고 들었다. 마침 소설 `소금'을 읽은 후라  `아버지도 아버지의 꿈을 찾아 살 권리가 있다. 왜냐하면 아버지도 아버지이기 전에 한 인간이므로' 이렇게 속으로 외쳐 보았다.

`그래도 아버지이니 장례는 좀 치러다오.'

평생 뒷바라지를 했지만 이제는 짐이 되어버린 아버지는 본인의 죽음을 예감한 듯 아들에게 손편지를 썼지만 아들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반송되었다는 기사는 벼랑 끝에 내몰린 아버지를 생각나게 한다. 어디서 단절이 왔을까, 어디로 다시 되돌려야 하나.

【요약】 `소금'(박범신 저)

박범신 작가가 문단 데뷔 만 40년이 되는 해에 펴낸 40번째 장편소설 이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와 `비즈니스'로 이어지는, 자본의 폭력성에 대한 `발언'을 모아 펴낸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거대한 자본의 세계 속에서 가족들을 위해 `붙박이 유랑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그래서 가출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족의 희망이 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혼자 떨어져야 했던 선명우, 선명우의 가슴 속에 언제나 있었다는 세희 누나, 자식의 성공을 위해 염전을 하다가 소금 위로 쓰러진 아버지, 우연한 사건으로 만나 특별한 가족이 된 함열댁과 신애와 지애, 아버지가 사라지고 세상의 무서움을 알게 된 시우, 아버지의 희생으로 컸지만 아버지가 되기 두려운 시인 `나'…. 그들의 사연과 인생이 다양한 맛을 지닌 소금처럼 펼쳐진다. 아버지가 아버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었음을, 늙어가는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과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한겨레출판사간/양장본/368쪽/값 1만3000원/2013년 4월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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