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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의사 선발에 대하여
수련의사 선발에 대하여
  • 의사신문
  • 승인 2017.02.20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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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57〉

*의료계에서 인턴, 레지던트, 세부전공 전문의 등 수련의사의 평가와 선택이 끝난 시점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평가 방법을 반추하며 내 의견을 제안해 봅니다.

한 분야의 전문의사가 되려면 정말 오랫동안 교육을 받아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의과대학 또는 의학전문대학원에서 6∼8년간 의학 공부를 하고, 인턴 1년과 레지던트 4년인 전공의 생활을 마치면 전문의가 된다. 요즘은 세부전공 전문의 과정이 생겨서 2년 이상 Fellow라는 직책으로 더 깊이 배우고 연구해야 한다. 여기에 남자의 경우 3년간의 군복무가 더하여 진다. 이를 합산하면 대학입학 후 13년 내지 18년이 걸린다. 이에 더해서 대학병원 교수가 되려면 보통은 1∼2년간 선진국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온다. 이 길고도 힘든 여정을 다 끝내면, 나이는 어느새 40세를 바라본다.

의료계 인적 구성은 세부전공 전문가가 꼭대기에 있는 피라미드 모양이다. 모든 의대 졸업생이 세부전문의나 대학병원의 교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여과되어 일부만 도달하게 된다. 각 단계 과정을 시작할 때마다 평가와 선택이 이루어진다. 과거에는 해당 과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했으나, 점차 객관적 기준이 강화되어 지금은 필기시험, 학교성적, 근무성적 같은 일률적 평가지침에 따라 선발하고 있다.

나는 이런 방침이 우리 의료계의 특성과 장점을 살리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의료행위는 단순하게 질병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다. 환자와 가족, 나아가 사회를 상대하며 의술을 습득하고 발휘한다. 당연히 의학적 지식과 기술에 더하여 정신적 신체적 자세, 대인관계, 인문학 소양 등 전 방위적 능력이 필요하다. 바람직한 수련의사 선발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기준이다. 평가 방법과 내용은 전 단계 교육에 큰 영향을 끼치므로 의학교육에 더하여 인문학과 인성 교육이 충실하게 이루어 질 것이다. 

우리 분야는 평가를 하고, 받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같이 생활하여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의과대학생 시절 위 학년이나 조교였던 평가자가 세월이 지나면서 교수가 되고 과장이 되어 계속 후배를 평가하고 선택을 한다. 또한 후배 역시 평가자를 선배 학생으로 만나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같은 병원, 같은 과의 동료로 지내기도 한다. 

수 년간 대학생과 전공의 시절을 거치면서 전인적 차원에서 능력 차이가 나타난다. 의학계에는 지적으로 탁월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의료술기도 우수한 인력이 많다. 이러하면서도 인성이 좋아 환자와 라포도 좋고 동료, 선후배와 잘 어울리는 젊은이가 나타난다. 즉, 경쟁자 간의 우열을 다수 평가자들이 자연스럽게 합의하게 되고, 이에 따라 당락을 결정하면 된다.

이런 이유로 주관적인 선택이 더 공정할 수 있다. 의학적 지식과 기술뿐 아니라 근무성적, 학벌, 인성, 대인관계, 건강, 배경(?) 등 전체적인 면을 고려하여 결정하는 셈이다. 타교 출신처럼 친숙하지 않은 경우 제대로 쓴 추천서를 바탕으로 심층 면접하여 대체할 수 있겠다. 주관적 평가가 개관적 지표보다 더 공정한 묘책이다. 효과적으로 운영하면 가장 좋은 선발 시스템이어서, 우리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내가 전공의를 하던 1970년대 후반에는 인턴들이 선배를 입방아로 저울질하는 관례가 있었다. 각 임상과에서 레지던트 1년차가 주치의로 환자를 책임지고 있고, 매달 인턴이 번갈아 와서 순환 근무를 하였다. 수 십 명 전공의 중 평판이 가장 나쁜 insightopenia(자기인식결핍증) 3명과 가장 좋은 3명을 선정하였다. 비공식적이지만 장차 진로에 영향이 있어 후배도 평가에 참여하는 셈이었다. 한마디로, 인심(人心)은 민심(民心)이고 천심(天心)이 된다. 

이 시스템에서 한편, 평가자에게 문제는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폐쇄적인 의료계에서 윗사람이나 교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보다 크다. 도제식 교육으로 제자를 가르치고, 연구를 지도하고, 직장을 알선해주고, 학회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오랫동안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의 사소한 언행이 평가에 막대한 영향을 주므로, 반드시 중립적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과장, 교수도 신이 아닌 인간이므로 사적 감정이나 편견을 가질 수도 있다. 후배나 제자가 지적하여 교정하기가 쉽지 않아 더 악화될 수도 있다. 참다운 리더라면 동료, 후배의 의견을 존중하고 피드백이 잘 작동하는 건전한 조직을 만들고, 한편 자기 성찰로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평가자의 무심(無心)이 내가 제안한 수련의 선택법의 성패를 좌우한다.

선진화라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의사사회도 바뀌어야 한다. 수련의사 선발에서도 형식적이 아니고 실질적인 전인적 평가와 선택이 필요하다. 진정한 전문가는 전공분야의 깊은 지식, 능력과 함께 훌륭한 인성과 인품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선된 선발기준은 교육 방침과 내용에 바로 좋은 영향을 주는 시너지 효과가 있다. 공정한 선발로 능력과 어울리는 인적 구성, 이것이 우리 의료계의 건전성과 우수성을 유지하고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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