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극복기 <16> 통영 성모의원 유문두 원장
암 극복기 <16> 통영 성모의원 유문두 원장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7.02.2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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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지나친 편도의 혹, 4개월 뒤 3기 편도암 돼”

수술 3개월 후부터 진료·소설 쓰기로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
철저한 식단 조절·녹차 가글과 자전거·등산 암 극복에 도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행동과 습관이 `질병'을 부른다는 것을 모른다. 안다고 해도 그 행동과 습관을 쉽게 바꾸지는 못한다. 그리고 질병에 걸리고 나서야 당황하며 부정한다. 질병은 처음부터 우리와 `동반자'였는지도 모른다. 

유문두 원장도 그랬다. 단순한 취미생활이 그에게 독으로 다가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한 순간의 실수가 한평생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병을 앓고 나서야 알았다.

■행복의 터전이 부른 `암'
유문두 원장은 통영에 개원을 한 이후 취미가 생겼다. 그는 매일 새벽 집과 조금 떨어진 곳에 텃밭을 가꾸고 가축을 키우며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행복했다. 그리고 텃밭 옆에 구들장을 만들어 매일 같이 쓰레기를 태웠다. 

그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감사하며 생활했다. 하지만 이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담배도 피우지 않았던 유 원장에게 생각지도 못한 `편도암'이 불현듯 찾아왔기 때문이다. 

2007년 3월, 유문두 원장은 음식을 삼키는데 이물감을 느꼈다. 입안에 거울을 비춰보니 오른쪽 편도에 혹 같은 것이 보였다. 유 원장은 그 길로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당시 의료진은 `양성혹' 같다며 레이저로 제거했다. 유 원장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갔다. 그렇게 편도에 생긴 혹은 쉽게 일단락된 줄 알았다. 

그로부터 4개월 뒤, 목에서 피가 주기적으로 나왔지만 만성 간경변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생각하며 지나쳤다. 며칠 후 거울을 보던 유 원장은 아연실색했다. 오른쪽 목에 소세지 만한 큰 혹이 만져졌다. 순간 유 원장은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머릿속엔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유 원장은 `내가 죽는구나' 이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방심이 키운 `암'…가혹한 내 운명 
유 원장은 서울 대학병원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진료날짜를 잡고 서울로 향했다. 이후 여의도성모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고 `악성 종양'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불과 4개월 전, 양성 혹이라 생각했던 암세포가 인두를 지나 후두까지 자라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유 원장은 의사인 자신을 한탄하기 시작했다. 

유 원장은 “암이라고 했을 때 아무생각이 나지 않았다. 단지 양성 혹이라 했을 때 판정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신경을 쓰지 않았던 내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이물감이 느껴졌을 때 조금 더 관심을 갖고 검사를 했다면, 아니면 판독한 것이라도 봤다면 암을 키우지 않았을 것”이라며 “1기로 끝났을 병을 3기로 키워 가족은 물론 내 자신에게 큰 아픔과 상처를 안겼다”고 덧붙였다.

유 원장은 “대학 때 B형 간염이 발견돼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간에 좋지 않은 술, 담배는 하지 않았고 나름 몸 관리도 하고 살았는데 `암' 선고를 받고 보니 내 운명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다”며 당시 마음을 표현했다. 

유 원장의 `암 선고'는 가족들까지도 힘들게 했다. 가족들은 유 원장의 암 선고를 듣고 “처음엔 사실이 아닌 줄 알았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조건 나아야 하고 함께 헤쳐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앞으로 내가 살 수 있는 시간은 5년
유 원장은 편도암 진단을 받은 후 장장 10시간에 걸쳐 오른쪽 림프절과 편도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수술 후 조직검사 결과 림프절에서만 암세포가 발견됐다. 방사선 치료는 5주에 걸쳐 25회만 받았고 그 동안 몸무게가 15kg나 빠졌다. 

유 원장의 몸과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목이 부어 있다 보니 얼굴은 보통 사람의 3배 이상 커져 있었고 방사선 치료 후유증으로 얼굴은 새까맣게 변해있었으며, 치아도 모두 망가진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던 병원을 쉬면서 치료에만 전념했다. 그러나 오래 쉬지는 못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텃밭에 갔다 병원에 출근해 환자들을 진료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하루를 마감했던 바쁜 일상이 하루아침에 바뀌어 병만 생각하고 사려니 갑갑했다.  

유 원장은 수술 후 3달 만에 병원에 출근해 환자를 진료했다. 목은 스카프로 가려가며 즐거운 마음으로 환자들을 진료했다. 가끔 아파서 찾아온 환자들이 오히려 괜찮냐며 걱정을 했고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환자들도 있었다. 유 원장은 개의치 않았다. 지금의 시간이 그에겐 너무 소중했기 때문이다.

유 원장은 편도선 암세포를 제거하고 방사선치료도 모두 했지만, 암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는 병이었다. 그에게는 어쩌면 살 수 있는 날이 길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앞으로 5년 정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살았다고 한다.

■삶에 대한 두려움, 소설로 극복 
유 원장은 앞으로 살 날이 5년 남았다 생각하니 두려움이 앞섰다. 그는 두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며 한 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삶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유 원장은 어린 시절 자라난 성장기, 동네 풍경 등 자서전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자서전을 쓰다 보니 좀더 재미있게 글을 써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허구'를 섞어 소설형식의 글을 섰다. 그렇게 시작된 일이 12권짜리 `귀향'이라는 자전적 소설을 만들어 냈다. 귀향은 일제시대인 1943년부터 2009년까지 시대적 사건이 총망라되어있는 소설로 6.25, 인민군 포로수용소, 새마을운동, 월남 파병, 경제개발 등을 겪으며 변모하는 통영을 무대로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삶과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유 원장은 “글을 쓰면서 아픔과 삶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지고 글을 쓰는 재미에 빠져 살았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또 2014년 조선일보에서 진행한 `one-korea New-Eurasia 자전거 평화 원정대' 참가해 7박 8일간 `자전거 횡단'에 성공하기도 했다.

유 원장은 “2012년에 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건강과 체력을 테스트 해보고 싶어 원정대 참가서류를 냈는데 내 사연이 독특했는지 참여할 수 있었다”며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을 출발해 폴란드, 발트 3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몽골, 중국을 거쳐 서울에 입성하는 100일간의 대장정이었는데 이중 3구간을 횡단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전거 횡단을 하면서 외국의 이국적인 풍경과 조용하고 평온한 시골길, 끝도 없이 펼쳐진 벌판과 산을 보니 심신이 안정이 되면서 내가 아픈 사람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좋은 경험이었다”고 했다.

■아내의 지극 정성…녹차 가글, 야채수 비결
유 원장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던 건 `아내' 덕분이다. 유 원장은 아내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유문두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암 수술 후 5년 정도 살았으면 했던 꿈을 꿨는데, 올해로 10년째 살고 있으니 말이다.

유 원장은 아내의 지극정성으로 편도암에 좋다는 것은 다 해봤다고 한다. 우선 그는 철저하게 식단조절을 했다. 삼시세끼는 꼭 챙겨먹고 외식은 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참석할 때도 아내는 정성이 담긴 도시락을 챙긴다. 몸에 좋지 않은 인스턴트 음식이나 과자 등은 먹지 않는다. 

그는 `5가지 야채를 넣고 끓인 야채 물'을 즐겨 마신다. 이 물은 뿌리채소인 우엉, 당근, 표고버섯, 무와 무청을 달인 것으로 하루에 3번씩 식간에 마시고 있다. 이와 함께 편도암에 좋다는 `녹차 가글'을 즐겨하고 있다. 유 원장은 “방사선 치료로 입안이 다 헐었었다. 녹차가 항암 효과가 높다고 해서 많이 했다”며 “녹차가 항생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암이 완치될 수 있던 건 통영의 깨끗한 공기 덕분이라고 말한다. 

■암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건강관리 `중요'
`암'은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터닝포인트'였다. 그는 “암에 걸리면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절망과 두려움이 가득해 힘들 수밖에 없다”며 “아프고 나니 건강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질병은 내가 방심하고 있을 때 찾아온다”며 “의사들도 주기적으로 건강검진도 받고 운동과 취미생활도 하면서 질 높은 삶을 누려야 한다. 내가 건강해야 환자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유 원장은 틈만 나면 자전거는 물론 등산을 즐겨하고 있다. 

유 원장은 “2007년 수술을 한 후 아직 암이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있다. 암 발병 이후 하루하루를 더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나 혼자가 아닌 가족이 있었기에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나는 복 받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홍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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