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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고 의미 없는 순간 순간의 과정을 즐겨라
하찮고 의미 없는 순간 순간의 과정을 즐겨라
  • 의사신문
  • 승인 2017.02.2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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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의학문인회 독후감 공모전 수상작 〈6〉 : 장려상 -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정인순 인천기독의원

유방·갑상선암 겪고 사소한 일상의 가치 중요하게 느껴질 때
이제껏 나를 지배했던 삶에 대한 사고 체계 넓혀 주는 기회돼

`무의미의 축제'에서 작가는 세상 속에서 거창한 무언가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기 보다는 의미없고 하찮은 일상이 존재의 본질임을 깨닫고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도 이 존재의 본질을 인정하고 사랑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방법까지 제시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무의미를 들이마셔봐요. 그것은 지혜의 열쇠이며 좋은 기분의 열쇠”라고.

19년간의 개원 생활에 진력이 나있었고 습관적인 우울감에서 나를 변화시켜야겠다는 절실함과 자유를 갈망하며 3년간의 기간을 예정하고 진료실을 탈출했던 것이 유방암과 몇 년후 갑상선암까지 겪으며 어느덧 15년이 흘렀다. 

삶은 진지하고 의미를 가져야한다고 믿었던 내가 유방암 3기 진단을 받고나서야 비로소 의미없고 하찮은 사소한 일상의 가치가 최상위임을 깨달았다. 그런데 요즘 죽음의 공포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와지니 하찮고 의미없는 삶, 시골 전원생활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점점 커진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는 하찮고 의미없는 삶의 가치가 절실하지만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 속에서는 진지하고 의미있는 삶이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니 아이러니다.

우리 삶 속에서 의미를 찾는 키네시스적 인생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즐기는 에네르게이아적 인생, 즉 의미있고 진지한 삶의 목적 뿐 만 아니라 하찮고 의미없는 순간순간의 과정을 즐기려는 깨어있음이 이상적이리라. 
지금 이 순간, 작가의 말대로 하찮고 평범한 일상을 깊게 들이마셔 본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삶에서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한 작품 속의 주 등장인물인 테레자와 토마시, 사비나와 프란츠의 각각의 상반된 사고(思考)와 삶의 방식에 대해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작가의 심리적 예리함과 통찰력에 놀라움이었다

테레자는 세상일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매사를 비극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육체적 사랑의 가벼움과 유쾌한 허망함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반면 토마시는 사랑과 성행위는 서로 별개라는 생각을 그녀에게 이해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테레자는 토마시의 바람기에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느꼈고 무거운 의무를 밀쳐버리려는 토마시의 삶의 방식을 가볍다고 생각하며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더 이상 강하지 않아 그녀 품에서 토끼로 변할 때까지 매번 그에게 타협을 강요했던 스스로 공격적인 약함을 선택하곤 했다. 유명한 외과의사였던 토마시를 유리창 닦는 노동자, 트럭운전사까지 더욱 낮은 곳으로 끌고 갔음을 자책하며 `나는 잃은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당신은 모든 것을 잃었는데“라며 토마시 삶의 추락을 애통해 하는 테레자의 넋두리에 가슴이 아려왔다.

반면 사비나는 자신의 모든 은밀한 삶 또는 친구들의 은밀한 삶까지 까발리는 문학을 경멸하며 자신의 내밀성을 상실한 자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라는 견고한 프라이버시 소유자다. 사비나가 느끼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비밀없는 유리집에서 살고자 하는 프란츠에게서 자신의 사생활의 문을 깨고 무단침입한다는 느낌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더 그녀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사람들이 그녀의 삶을 가지고 만들어내려고 했던 키치였다. 언젠가 독일에 있는 어떤 정치집단이 사비나를 위해 전람회를 마련, 카탈로그에 그녀는 갖은 고생을 했고, 부정에 대항해 싸웠고, 고문당한 그녀의 조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러고도 계속 항쟁했다고 했을 때 그녀는 화를 내며 “내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고 키치예요”라며 후에 미국에서 살 때도 그녀는 자기가 체코인이라는 것까지도 비밀로 하며 키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처절히 노력 했다. 하지만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의 키치를 가지고 있었는데 사랑하는 어머니와 현명한 아버지가 이끌어 나가고 있는 조용하고 유화하며 조화로운 집안의 이미지를 키치로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과연 내 마음속에 품고 있는 나의 키치는 무엇이며 타인이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키치는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한다. 그래서 나의 키치를 솔직하게 노출하려니 사비나가 나타나 “그건 가벼움이야`라며 눈을 흘긴다.

밀란 쿤데라의 두 작품에서는 하찮고 의미없는 일상의 행복을 느끼는 조용한 삶이 가치가 있는가?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삶이 진정 가치있는 삶인가?
그리고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는 시간이 참 유익했다.

니체는 진지함과 무거움을 `중력의 악령'이라고 혹평하며 가볍게 즐겁게 춤추듯 살라고 했으나 각자의 관점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작가의 파격적이고 다양한 시각은 이제까지 나를 지배해왔던 사고체계를 확장해주었고 삶의 수용성을 키울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하찮은 나이든 여자'라는 키치를 거부하고 의사로서 존중받는 타인의 키치를 원하고 있는가? 이제는 진정 환자의 아픔을 공유하고 헌신할 수 있는 의사가 될 수 있다는 내 맘속의 키치 때문일까? 90여세 가까이 환자진료 보는 일을 놓지 못하셨던 아버지를 보며 그 집착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최근 아버지가 평생동안 기록해 놓으신 10권의 진료노트를 주셔서 정독하며 아버지의 키치가 내 마음 속에 키치의 불씨를 지피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작가는 거창한 삶의 의미보다는 의미 없고 하찮은 일상을 인정하고 사랑해야한다고 말하니 혼란스럽다.

【요약 ①】 `무의미의 축제'(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에서는 일상과 비일상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일상은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우리가 기억하지도 못할 만큼 사소하다. 밀란 쿤데라는 그런 일상에야말로 존재의 본질이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허례허식을 위해 유한한 자신의 삶을 낭비하는 것을 경계하고 그보다 더욱 자유롭고 순수한 일상을 즐기는 것을 권한다. 

무의미함은 즐거움이다. 가벼운 깃털과도 같은 일상은 소설 속의 주인공들 포함해 모두를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어느 누구도 해칠 일 없는 소소한 거짓말, 자유로운 언행과 작은 미소들, 이 모든 것을 건네는 무의미의 축제가 바로 우리들의 인생이다. 〈민음사 간/152쪽/값 1만3000원/2014년 7월23일 출간〉

【요약 ②】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저)

사랑과 성(性), 역사와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는 주인공들의 방황을 통해 현대인의 분열을 묘사하고 있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이분법적 측면에서 조명하고 있는 작품이다. 

체코 태생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밀란 쿤데라는 1929년 체코 동부의 브르노에서 태어났다. 1953년 처녀 시집인 `인간 : 드넓은 정원'을 발표하고 작가로서의 생활을 시작해서 1967년에 그때까지의 그를 총결산했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인 장편 `농담'을 발표함으로써 `체코의 귀재'로 부동의 위치를 확보했다. 

1975년에 해외로 추방되어 프랑스로 이주했으며, 1978년에 발표한 `웃음과 망각의 책' 때문에 체코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쿤데라가 경험했던 체코 시절의 작품 검열과 판매 금지, 그리고 파리로의 망명 등은 그에게 `죽음'과 `재생'을 자각시킨 일이었을 것이다. 쿤데라 작품의 특징은 사회주의에 대항하는 입장이 무겁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민음사 간/484쪽/값 1만1000원/2009년 12월 2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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