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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건강<44>
의사의 건강<44>
  • 의사신문
  • 승인 2010.02.0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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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의 과로 때문인지 몸이 적신호를 보냈다. 각막 혈관이 터진 것이다. 아프지는 않은데 눈 흰자위에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빨간 혈점이 생기면서 각막이 붉게 물들었다. 생각해보니 그전에도 연말에 이런 적이 있었다. 잠을 많이 자고 눈을 감고 있으라는데 진료하려면 컴퓨터를 안 볼 수 없고 검토할 자료도 많고 참석할 회의도 많았다. 다행히 며칠 지나 핏기가 깨끗이 가셨다. 밤새도록 분만하고 늦게까지 책을 읽어도 짱짱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몸의 이곳저곳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미루고 미루다가 건강 검진을 받았다. 너무 무심한 것 같아 딱한 마음도 들었고 주변에 아픈 의사들이 많아지면서 한번도 건강 검진을 받지 않은 것이 불안하기도 했다. 가끔 온몸이 아프고 쉬고 싶다고 느껴도 누구든 이 나이 되면 지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불량 의사가 되면서 살아 왔다. 검사 결과 특별한 문제가 없고 당분간은 안심해도 된다니 마음이 놓였다. 그 동안 충실했던 몸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고 씩씩하게 살아준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불가능하겠지만 이젠 아프지 않고 늙어가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 탈 없던 몸의 어느 부위가 불편해 지면 왜 이럴까 생각하다가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하기는 이렇게 오랫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사용하면서 수리 보수 한번 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사실 내 몸은 내가 관리하지만 내가 만든 것은 아니므로 임대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언젠가 창조주가 돌려 달라고 할 때 깨끗이 쓰다가 반납해야 하므로 아끼고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항상 혹사하게 된다.

의사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더 심각한 질환을 앓고 있다는 통계는 없지만 아무래도 감염성 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많고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면 병에 걸릴 위험도 높을 것이다. 개원의인 경우 진료실 비우기가 어려워 건강 검진도 제대로 못 받고 병이 진전된 후에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예민하게 자신의 건강을 우려하여 자주 건강 진단을 받는 의사들도 있지만 대부분 설마하면서 자신에게는 소홀하게 된다.

10여년을 서로 환자 의뢰하면서 지내던 같은 지역 내 여의사가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확장 개원까지 하고 의욕적으로 환자를 보다가 전이된 암 진단 후 1년이 못되어 마흔 아홉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것이다.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고운 영정 사진을 보면서 문상을 갔던 동료 의사들은 모두 슬픔을 삼켜야 했었다. 그런데 오늘 방문한 동네 환자가 그 여의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같이 눈시울을 붉혔다. 언제나 세심하게 진찰하고 자상하게 설명해주었다면서 한참을 애도했다. 의사들은 환자에게는 열심히 건강 검진하라고 하면서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않나보다고 아쉬워했다.

암을 진단받고 투병하면서 환자들에게 공감과 희망을 주는 의사들의 이야기가 감동을 준다. 환자가 되면서 환자의 아픔과 고통을 진정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병 관리도 힘들고 어려운데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면 더욱 눈물겹다. 암을 앓고 있는 의사들이 모두 암을 이겨내서 자기가 이겨낸 것처럼 환자들을 살려내길 바란다.

최근에 개원의들의 시간 내기 어려운 것을 감안하여 휴일을 이용해 건강검진을 해주려는 종합병원과 의료단체의 협약이 지역마다 활성화되고 있다. 건강 검진을 받지 못했던 개원의들이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라도 스스로 건강을 챙겨야 할 것이다.

김숙희<관악구의사회장ㆍ김숙희산부인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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