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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오 알레그리 '미제레레'
그레고리오 알레그리 '미제레레'
  • 의사신문
  • 승인 2010.02.0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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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아름다워 교황청도 봉인한 음악


오 하느님, 당신의 사랑으로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당신의 부드러운 자비의 충만함으로 나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하느님,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편 51:1',10)

알레그리는 1582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다. 1591년 로마에 있는 산타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합창학교에 들어가 1596년 변성기로 소프라노 목소리를 낼 수 없을 때까지 머물렀다. 1607년경 로마를 떠나 1628년까지 교황청 외곽의 페르모에 있는 성당에서 가수 겸 작곡가로 활동했으며, 1629년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교황청 합창단에 들어갔다. 그후 1652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수의 미사곡, 모테트, 초기 형태의 현악 4중주라고 할 수 있는 현악 합주를 위한 4부 소나타 등의 기악곡을 작곡했다. 1638년 이전에 작곡한 그의 걸작 `Miserere Mei, Deus'는 해마다 성주간 동안 시스티나성당에서 5부 아카펠라 합창단(five-part a cappella choir)이 부르는 성가로 유명하다.

가톨릭계에서 이 음악은 교황청 시스틴 성당에서 행해지는 성 금요일날 저녁예배에 불린다. `테네브레'라는 이름의 이 예배는 촛불을 하나씩 꺼나가다가 `미제레레 메이'의 신비로운 합창 속에 마지막 촛불이 꺼지며 완전한 어둠 속에서 마무리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가사를 시편 51에서 발췌했다는 점이다. 한 점 얼룩 없는 천상의 음악이 정작 담고 있는 줄거리는 다윗이 바세바와 통정한 뒤 참회하는 속세의 죄악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는 수도사 윌리엄이 바로 그런 이유로 교황청에서 이 노래가 불리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장면이 나온다.

음악 자체가 가지고 있는 환상적인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이 합창이 유명해진 이유는 교황청이 이 음악의 악보를 봉인했기 때문이다. 1870년까지 교황의 명으로 시스티나성당에서만 불렸다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 로마에서 태어나 훗날 교황청 음악악장이 된 알레그리는 오로지 단 한 작품 `미제레레 메이(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로 자신의 이름을 고전음악계에 불멸로 등록하게 된다. 당시 폐쇄적이었던 교황청은 이 음악의 악보가 외부에 공개된다든가, 시스티나성당 바깥에서 연주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시켰다. 이로 인해 악보가 정식으로 공개되기 전인 1770년까지 이 음악을 듣고자 하는 이는 바티칸까지 일부러 찾아와야만 했다. 이러한 칙령으로 인해 수많은 거장들이 시스티나성당에 몰려들었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었던 괴테는 그의 수필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이 곡에 대한 경험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던가를 묘사하고 있다.

신동 모차르트도 `미제레레 메이'와 관련해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유감없이 과시한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열네 살의 나이로 아버지와 함께 시스티나성당에서 10분간에 걸쳐 진행되는 이 음악을 들은 모차르트는 단 두 번만에 바로 이 곡을 암기해 악보로 옮겨 적었다. 훗날 모차르트는 이 작품에 크게 영향을 받은 자신의 `미제레레 작품번호 85'를 작곡하기도 했다.

그후 1770년 알레그리의 `미제레레 메이'는 바티칸의 다른 악보들과 함께 마침내 영국 음악학자 찰스 버니에 의해 세상에 공개됐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이 악보의 사보는 흔하게 떠돌고 있었다. 대부분 암보에 의한 것이어서 성부라든가 멜로디에 차이가 있는데 사보가 더 흔하게 돌다 보니 결국 정통 작곡가에 의한 최초의 원본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너무도 고귀하고 아름다워 교황마저 숨기고 싶은 음악…. “하나님 저를 가엾게 여기소서.”

■들을만한 음반 : 피터 필립(지휘), 탈리스 스콜라스(Gimell Records 1980); 사이먼 프레스턴(지휘), 웨스터민스터 대성당 합창단(Archiv 1985); 스테판 클레오베리(지휘), 웨스터민스터 대성당 합창단(Argon 1983); 데이비드 윌콕스(지휘), 킹스 칼리지 합창단(Decca, 1985); 앤드류 패롯(지휘), 테버너 콘소트(EMI, 1986)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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