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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사회장단 칼럼]여행 이야기
의사신문 | 승인 2017.02.13 10:26
고영진 송파구의사회 회장

진료실에서 환자와 씨름하며 지친 심신을 달래는 데는 여행만한 활력소가 없다. 혼자 개원하고 있어 장기간 여행이 쉽지 않기 때문에 나는 단기간의 국내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이다. 주로 공휴일 다음날 진료를 쉬고 일박이일의 여행을 다녀올 때가 많다. 도로사정이 개선되고 곳곳에 깨끗한 호텔이 많이 생겨 일박이일로 가지 못할 곳이 거의 없다. 리조트 회원권이 없어도 평일 전날의 공휴일은 웬만하면 숙박이 가능하고 주중요금이라 비용도 절약된다. 돌아오는 날은 평일이므로 교통혼잡도 피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 아니할 수 없다. 여행의 단상 몇을 떠올려 본다.

■담양 명옥헌 원림(鳴玉軒 園林)과 배롱나무
담양의 관광지로 흔히 손꼽는 곳은 소쇄원과 죽록원이다. 그러나 두 곳 모두 인파에 떠밀려 여유있게 관광을 즐기기 어렵다. 관광책자 끄트머리에나 간단히 소개되고 지도에서도 찾기 어려운 한적한 곳이지만, 나는 명옥헌 원림을 담양 제일의 명소로 감히 추천한다.

십여년 전 어느 해 여름 고속도로에서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명옥헌 원림을 찾았다. 초록이 무성한 정원과 조그만 연못, 정원 위쪽 얕으막한 언덕 위에 자리잡은 정자가 전부였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철쭉이나 진달래보다 더 붉은 진분홍색 꽃이 만개한 여러 그루의 배롱나무들이었다. 사방이 미닫이문으로 된 정자에 올라 앉아 열린 미닫이문을 통해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맛보며 기대치 않았던 호사(豪奢)를 잠시 누려 보았다. 이 바람 소리를 구슬이 우는 소리에 빗대어 정자 이름을 명옥헌이라 했나보다. 명옥헌에 앉아 푸르른 수풀속에서 홀로 붉은 자태를 뽐내는 배롱나무꽃이 만개한 원림을 완상(玩賞)하는 것이 옛 선비의 고고(孤高)한 풍류(風流)였을까. 배롱나무꽃을 보려면 한여름에 가야 한다. 

■경주 감포 감은사지(感恩寺址) 삼층석탑
90년대 중반 어느 해 여름, 몇 년째 지속된 가뭄으로 경주 보문호는 밑바닥을 드러내었고 콘크리트 바닥의 열기로 인해 한낮에는 보문단지를 돌아다니는 것이 끔찍할 정도였다. 호텔에만 머무르기 아쉬워 감포 바닷가를 찾았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공전의 히트를 치고 고적 답사여행이 고개를 들던 시절이었다.

대왕암(大王巖)을 모터보트로 둘러보고 바닷가 정자 이견대(利見臺)에 올라 동해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에게는 지루했으리라. 경주로 돌아오는 길 옆 한 벌판이 감은사지, 감은사 옛 터였다. 아이들은 한여름 오후의 땡볕에 질려 내릴 생각도 하지 않았고 아내와 나만 차에서 내렸다.

전각(殿閣)은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졌으나 발굴흔적으로 보아 실로 엄청난 규모의 절이 여기 있었음을 짐작케 했다. 본당으로 추정되는 터전 양측의 삼층석탑 둘은 건재해 보였다. 너른 벌판에 거대한 두 탑만이 오직 남아 전각에 가려졌던 자신의 존재를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천년의 풍상(風霜)을 이겨낸 거대한 돌덩어리는 형언할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 앞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탑은 세월의 무상함을 내게 말하는 듯했고 아내 역시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탑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너른 벌판 눈부신 햇빛 아래 우리만 있었다. 낙엽지는 석양 무렵에 꼭 다시 오자고 약속했다.

2013년 봄, 이십년 가까이 지나 드디어 감은사지를 다시 찾았다. 가을이 아닌 봄이었지만 석양 무렵의 약속은 지켰다.

너른 벌판과 탑은 변함없었고 절터엔 예전처럼 우리 부부만 있었다. 탑 주변에 조명이 설치되어 어스름한 벌판에 여전히 건재한 탑을 밝히고 있는 것만이 예전과 달랐다. 아,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과 함께 오직 달빛 아래에서만 탑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이번엔 탑이 말을 하지 않았다. 전편을 뛰어넘는 속편은 역시 없는 것일까? 장성한 아이들에게 예전에 경주에 갔던 것을 기억하냐고 물으니 더웠던 것만 기억난다고 한다. 

■수질(水質)은 전국 최고입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덕산온천에 아내와 함께 다녀오기로 했다. 온천장의 몇 안되는 호텔을 검색해 그나마 나아 보이는 호텔에 전화할 때부터 뭔가 좀 이상했다. 온라인예약도 없고 예약금을 요구하지도 않고 그냥 오시면 된다고 할 때 그만두었어야 했다. 아무리 시골 호텔이라지만 장터같은 호텔 로비(?)를 보더니 아내는 고개를 흔들며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하루 있다 가자고 달래 방에 들어왔다. 중앙난방이 안되는지 이동식 전기온풍기와 함께 침대밑엔 전기장판이 있었다. 순간 나도 흔들렸고 그 때 돌아갔어야 했다. 투숙객은 무료인 호텔 온천탕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기상천외한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한다. `시설은 부족하지만 수질은 전국 최고입니다' 그걸 보고 발길을 돌렸어야 했다. 물때로 얼룩진데다 깨어지고 금간 타일이 곳곳에 보였던 온천탕은 더도덜도 아닌 70년대 동네 목욕탕이었다. 전국 최고라는 약간 미끌미끌한 온천수를 어떻게 즐겨야 할지 좀 난감했다. 보통 여자들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나름대로 시간맞춰 나왔더니 아내가 나보다 먼저 나와 있었다. 지저분해서 도저히 못 있겠단다. 그 날 아내에게 단단히 혼이 났다. 지금은 좀 나아졌으려나? 그래도 가끔 그 플래카드를 얘기하며 둘이 웃곤 한다.

■눈 덮인 대관령 고갯길
일박이일의 원칙대로 삼일절을 강릉에서 지내고 다음날 서울로 돌아오던 3월 2일 오후였다. 예기치 않았던 폭설이 갑자기 쏟아지며 끝없이 차량이 늘어섰다.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것조차 몇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체인이라도 사려고 샛길로 빠졌는데 어쩌다 보니 대관령 국도로 들어섰다. 차를 돌리기도 어려워 어디 한번 가보자고 운전을 하는데 대관령 고갯길을 체인도 없이 올라가는 게 신통했다.

헛바퀴를 굴리며 움직이지 못하는 다른 차들을 뒤로 하고 늠름하게 저단기어와 snow mode를 써서 대관령을 넘었다. 뽀득뽀득한 함박눈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내려오는 길은 스키슬로프를 타고 하강하는 기분이었다. 횡계에서 좀 쉬었다가 다시 고속도로에 들어왔다. 한동안 무용담처럼 자랑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건 목숨을 내건 미친 짓이었다. 과속도 안하는 내가 그 날은 무엇에 씌어서 겁도 없이 미친 짓을 저질렀을까? 눈덮인 대관령을 탈없이 넘어 우리 부부의 목숨을 지켜준 차는 SUV도 아니고 고급이라고도 할 수 없는 국산 전륜승용차이다. 워낙 튼튼하고 고장이 없어 2002년식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컨카로 잘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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