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돌이와 갑순이는 한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했더래요?
그러나 둘이는 마음뿐이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모르는 척 했더래요?
그러다가 갑순이는 시집을 갔더래요
시집간 날 첫날 밤에 한없이 울었더래요
갑순이 마음은 갑돌이 뿐이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안 그런 척 했더래요
갑돌이도 화가 나서 장가를 갔더래요
장가간 날 첫날 밤에 달 보고 울었더래요
갑돌이 마음은 갑순이 뿐이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고까짓 것 했더래요
1965년 미모의 김세레나 가수가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불러 인기가 많았던 〈갑돌이와 갑순이〉 노래이다. 여전히 지금도 들을 수 있는 이 노래는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이 혼합된 신민요로 일제 시대 전기현 선생(1909-1945?)이 작곡한 〈온돌야화〉를 다듬은 것이란다.
어릴 때 나는 이 곡을 듣고 노래가사가 석연치 않다고 생각했다. 잘못한 결혼에 대한 내용 때문이었다. 서로 좋아하던 남녀가 마음을 감추고 있다가 각자 다른 사람과 부부가 된 슬픈 사연이었다. 더욱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다는 결말에 해당되는 4절이 없었다. 그런데도 여가수는 예쁜 한복을 입고 날아 갈듯이 흥겹게 춤추며 노래하였다.
어떤 가요가 유행했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공감을 한다는 뜻이다. 노랫말도 마찬가지 이어서 여러분과 함께 이유를 살펴 보기로 한다. 우선 두 사람은 얼마나 사랑을 했을까? 사실 마음뿐이고 서로 모른 척하는 관계는 성숙한 애인 사이가 아니다. 한 마을에 사는 청춘끼리 갖는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다. 작은 시골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같이 놀고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우정 같은 애정이다.
사람은 만 6세가 되면 성호르몬 분비가 잠시 증가한다. 진화론으로 해석하면 이 때가 원숭이 사춘기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잠시 이성에 끌리나 곧 송과샘에서 나오는 물질이 성호르몬 분비를 막아 사춘기가 늦게 나타난다. 따라서 이 시기에 또래 남녀가 특별한 감정을 가질 수 있으나 아직 진정한 사랑은 아니다. 여러분에게 친숙한 황순원 선생의 단편소설 〈소나기〉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이 노래 주인공은 각자 다른 남녀와 짝이 되었다. 옛날에는 어른들이 결혼상대를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까닭에 마음 속으로 울고, 한밤중에 달을 보고 울었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일반적인 선남선녀를 뜻하나, 형제자매 중 맨 위 첫째를 일켰는 말이기도 한다. 장남, 장녀는 부모가 예뻐하고 동생에게 모범을 보이도록 교육을 받기에, 온순하고 집안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여 결혼했을 것이다. `을돌이와 을순이' 경우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갑돌이와 갑순이가 정말 마음 깊이 서로 좋아하고 있었다면? 원래 인생이란 뜻대로 안 되는 괴로운 바다이다. 부처님도 2600년 전에 “보고 싶은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가장 큰 괴로움이다.”라고 하셨다. 이 가요는 우리가 겪어 공감할만한 상황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중매결혼을 했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목석 같이 살면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요즘 옛무덤에서 간간히 발견되는 부부 간의 편지를 보면 지금의 연애편지 못지않게 열정적이다. 선남선녀는, 즉 갑돌이와 갑순이는 처음에는 화가 낫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각자 짝과 서로 적응하고 화합하여 아들 딸을 낳아 기르면서 잘 살았을 것이다. 그 옛날 사랑은 점차 희미해지면서 잊어지고…
나중에 이 두 부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원본에도 잘못된(?) 결혼을 노래한 3절 까지만 있고 결론인 4절이 없다. 나는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민요를 듣는 사람은 옛 사랑이 떠오르면서 자기 처지에 빗대어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띠거나, 또는 가슴에 찡한 아픔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어쩌란 말인가? 김세레나의 흥겨운 노래와 예쁜 춤사위가 위안을 준다. 이 가요의 매력 포인트이고 오랫동안 인기 있는 이유다.
뜨거운 불길 같던 정념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사그라지니 인생사가 참 허무하고 속절없다. 영원한 첫사랑이란 고전문학에서만 찾을 수 있게 되었는가! 그래서 인터넷에 다음과 같은 4절 노랫말을 덧붙인 글이 있었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딴 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평생토록 그리워 했더래요
두 사람 마음은 변함이 없었대요
결국에는 음-음-음- 하늘의 별이 되었더래요
여기에 이 황량한 세상에서 가슴 찡한 해피엔딩 버전도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며 실은 댓글도 찾아내었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못보고 살았더래요.
늙어 늙어 두 사람 다 홀몸이 되었더래요.
그러다 다시 만나 같이 살았대요.
결국에는 음-음-음- 사랑을 이뤘더래요.
독자 여러분도 이런 아련한 추억이 있나요? 어떤 내용의 4절이 되었으면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