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극복기 <15> 순천향대 부천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이유경 교수
암 극복기 <15> 순천향대 부천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이유경 교수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7.02.06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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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의 도움으로 `일과 치료 병행' 두려움 극복 

목 디스크 수술 후 잦은 기침에 CT 검사 중 우연히 유방암 발견
하루 하루에 감사하는 긍정적 마음자세와 걷기로 건강 되찾아

최근 고령화시대에 들어서면서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삶의 질보다 중요시되고 있다. 21세기 시대는 음식의 서구화로 인한 잘못된 식습관과 운동저하, 바쁜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암은 흔한 질병중 하나가 됐다. 암은 나이순이 아닌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질병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왜?'라는 물음표를 달며 나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이유경 교수도 그랬다. 더욱이 가족력도 없었고 특별한 증상도 있지 않았기에 암 선고를 받고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당시 4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유방암이 잘 생기는 나이도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충격이 더 크게 다가왔다. 

■가장 춥고 힘들었던 2007년 12월 
2007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가 하루 지난 추운 겨울, 바람은 매서웠지만 봄처럼 따뜻한 날이었다. 하지만 이유경 교수에게는 이 날이 가장 춥고 힘들었던 날로 기억되고 있다. 달갑지 않은 `암'이 불연 듯 찾아 왔기 때문이다. 

순간 이 교수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는 온몸에 기운이 빠져 일어날 힘조차 없어 검사실에 얼마나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 교수에 따르면, 암에 걸릴 것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고 유방에서 멍울이 만져지지도 않았다. 때문에 암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충격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40년을 살면서 가졌던 `나는 건강해'라는 자부심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그리고 당시 40대 초반이었기에 유방암이 잘 생기는 나이도 아니라고 생각해 면밀하게 진찰해 보지도 않았던 것이 후회됐다. 

그는 정신을 차리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가족'들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잃어버려야 할 것(가족)에 대한 생각으로 가족의 소중함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깊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폐렴인가?…의료인 `눈물'
암은 이유경 교수의 신체의 일부였던 것처럼 떡 하니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 교수를 놀리듯 아무런 통증도, 증상도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려 하지 않던 `암'은 우연찮은 검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2007년 이유경 교수는 목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디스크 수술 후 감기에 걸렸는데 기침이 낫지 않았다. 그는 “폐렴인가 의심할 정도였다”며 “목 디스크 수술 후 보형물이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러 간 김에 기침의 원인을 찾기 위해 흉부 CT촬영을 했다”고 말했다.

검사 결과, 폐 여러 군데 뭔지 모를 반점들이 발견됐다. 그녀와 의료진은 반점이 기생충이라 생각했지만 호산구(백혈구) 수치가 올라가지도 않았고 몸에 아무런 변화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녀와 의료진은 폐에서 다수 관찰된 GGO(간유리음영)을 역으로 추적했다. 

의료진들은 GGO가 전이성병변이라 생각했고 여성에게 전이 가능성이 높은 암에 대해 검사를 진행, 유방암 초음파 검사를 했다.

이 교수는 “당시 초음파 검사를 해주시던 분이 제 스승이었는데 검사를 하시다 눈물을 흘리셨다. 그래서 그때 `아 내가 암이구나'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당시 이 교수는 유방암 2기 판정을 받았다. 

이 교수는 “어떻게 생각하면, 목 디스크 수술 후 잦은 기침으로 우연히 암이 발견돼 다행”이라며 “암이 더 진전된 후에 발견됐다면 더 힘든 치료의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며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쪽 가슴 상실…“아픔 반복 No”
이 교수는 자신이 의사라는 것이 감사했다. 이는 의사였기에 기침을 단순한 질병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세부 검사를 추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사이기에 수술과 항암제 치료 과정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이 교수는 “암 선고를 받고 보름 만에 수술을 진행했다. 당시 좌측유방전절제술과 감시림프절및액와부림프절절제술 그리고 직복근을 이용한 유방재건수술을 받았다”다고 밝혔다. 이어 “수술 후 2008년 3월부터 5월말까지 항암제를 4차에 걸쳐 맞았고 이후에는 1년간 한 달 간격으로 표적항암제 치료를 12회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다행히 폐에 있던 반점들은 유방 조직에 많이 퍼져 있지는 않았다. 한쪽 가슴 유방 상피조직 밑으로 암세포가 1cm 정도 침습해 있었고 주변 림프절까지 암세포가 퍼지지 않아 안심했다”며 그때 상황을 이야기 했다. 

하지만 이 교수의 긍정적인 생각은 쉽지 않았다. 가족이 없는 곳에서 일과 치료를 병행하기엔 몸도 마음도 약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홀로 사투…가족·동료 `감사'
이 교수는 암 선고 직후 혼자 암과 싸우기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남편과 아이들은 미국 연수·유학 중이었고 일과 치료를 병행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이 교수는 “항암치료를 받은 직후 음식도 못먹고, 구토는 물론 가만히 누워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휴직서를 냈는데 당시 병원장이 `혼자 집에 있으면 아픈 것만 생각해 더 힘들 것'이라며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다니라'”고 했다고. 그리고 동료들이 금요일 저녁 퇴근 후 항암제를 맞고 토요일에 병원을 나가는 걸로 스케줄을 잡아 치료를 진행했다고 했다. 그래도 암 환자에게 항암제 치료는 고통일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온몸이 아프고 백혈구 수치가 0으로 떨어지는 합병증을 겪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닌 여러번 겪었다”며 “원래 항암제도 3주 간격으로 맞아야 하는데 합병증 때문에 한 달 간격으로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동료들이 내가 퇴원할 때 집에 데려다 주며 서로 챙겨주고 보호해 줬다고 웃으며 이야기 했다. 

이 교수는 “당시 아이들도 남편과 함께 미국에 있을 때였다. 아이들은 엄마가 암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집안 곳곳에 `엄마를 위한 기도'라는 글을 붙여 놓고 기도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학생이던 어린아이들에게 `암'은 큰 충격과 슬픔으로 다가왔을 것”이라며 그때를 생각하면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짧은 모유 수유와 비만이 부른 `암'
이 교수는 자신이 유방암을 겪게 된 이유는 `짧은 모유수유'와 `비만'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고 한다. 이 교수는 전공의 시절 결혼한 뒤 두 아이를 출산했다. 20년 전만해도 지금처럼 전공의들에게 육아휴직 3개월이라는 배려는 없었다. 단 한 달 밖에 쉴 수 없었고, 모유수유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암 발병전인 2004∼2005년 허리디스크 수술을 두 번 받았는데, 당시 몸무게가 현재보다 20∼30kg 더 나갔었다. 이 교수는 “허리디스크나 목 디스크도 살이 원인이었다”며 “지방이 암세포를 증식시키는 여성 호르몬을 만들어 내 암 발생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성격'도 암을 부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성격이 급하면서도 긍정적으로 일을 많이 하는 `워커홀릭'이다. 그는 “우리집은 암 유전력도 없고 고혈압도 없는 반면 나는 고혈압도 있다”며 “인간적인 캐릭터도 암 발생에 한 몫 한 것 같다”고 했다. 

■음식은 `골고루', 운동은 `걷기'가 최고
이 교수는 암에 걸렸다고 해서 음식을 가려먹지 않는다. 대신 2013년부터 자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기록을 하고 있다. 그녀는 “암에 좋다는 음식만 먹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며 “어떤 음식이든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일을 갈아먹지 않고 껍질 채 그대로 먹으며 계란도 매 식사 마다 챙겨먹고 있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끼 모두 잘 챙겨먹고 먹고 싶은 것은 충분히 먹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는 입장을 펼쳤다. 

이 교수는 자신의 건강을 되찾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걷기'라고 말한다. 그는 허리춤에 만보기를 차고 매일 걸어다닌다. 이 교수에게 엘리베이터는 사치다. 그는 하루에 만보 이상을 걷고 있다. 그리고 같은 병원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는 남편인 김진국 교수(신장내과)와 주말이면 국내 여행지를 돌며 걷기를 시행하고 있다. 

■지금 이순간을 즐기자 
그는 암 투병이후 `현재 시간과 일, 행동' 중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생각하거나 보내지 않는다. 이 교수는 암 발병 전에는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이 교수는 “암을 겪고 난 이후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즐기자'가 삶의 목표”라며 “오늘과 내일이 있을지, 일이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아프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에 행복하고 감사해 하며 즐겁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는 입장이다. 

이 교수는 “유방암에 기죽을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병에 걸리고 나면 `왜 나만 이런 불행을 겪지', `나만 하늘로부터 벌 받는건가', `이 세상에 나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는데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나에게 유방암은 하늘이 준 선물이다. 유방암이 아니였다면 생활습관도 개선되지 않았을 것이고 사계절이 변화하는 나뭇잎 색의 변화도 몰랐을 것이며, 길거리에 널려있는 쥐똥나무의 향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교수는 “내 주변에 나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라며 “암은 발견하는 즉시 받아들이고 수술하면 마음도 정리되고 더 빨리 치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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