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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사회장단 칼럼] 고도를 기다리며
[구의사회장단 칼럼] 고도를 기다리며
  • 의사신문
  • 승인 2017.01.09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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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주 동작구의사회 회장

타임(TIME)지는 올해의 인물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를 선정했다. 트럼프는 지난 11월 8일 미국의 제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전문가들은 막판까지도 그의 당선을 예측하지 못했다. 언론은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의 당선을 확실시 하며 트럼프를 이단아로 취급했다. 소속 정당인 공화당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하지만 모두의 무시와 경멸을 비웃듯 그는 당당히 승리했고, 결국 세계의 대통령인 미국 대통령 자리를 꿰찼다. 도무지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그가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가. 그것은 그의 솔직성이었다.

그의 승리는 그동안 미국 정치가 얼마나 위선적이였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미국 정치인들은 오랫동안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덕목을 요구받았다. PC는 공적인 자리에서 발언을 할 때, 차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PC는 위선적인 정치인을 비꼴 때 사용되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국민의 편에 서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월가를 비롯한 자본가들에게 `부역'하는 정책을 발의하고 표를 던지는 정치인들의 민낯을 비판하는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들의 존재는 국민들에게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만을 초래했다.

트럼프는 인종주의자이자 남성우월주의자이지만, 적어도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독보적 지지층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트럼프는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았다. 대중의 귀에 가장 쉽게 들릴 수 있는 자극적이고 평범한 단어를 사용해 직설적으로 말했다. 위선밖에 없었던 기성 정치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온갖 달콤한 말로 뒤범벅된 정치인들의 거짓말 대잔치에 지친 대중들은 트럼프가 뿜어내는 날 것 그대로의 발언에 매료됐다. 그것이 비록 보편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었더라도 말이다. 대중의 단어로 대중의 말투를 써가며 투박한 언술을 구사하는 트럼프는 그렇게 반지성주의의 대표주자가 됐고, 이른바 샤이-트럼프(shy-Trump)층을 만들어내며 기성 정치의 대명사 클린턴을 누를 수 있었다. 반-위선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저급한 트럼프는 위선의 정치가 만들어낸 부작용의 결과가 됐다.

지난 3개월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나타난 우리나라의 정치 토양은 미국과 달리 품위 있는 정치 환경인가 하면, 단연코 아니다. 더하면 더했지. 고위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은 겉으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입 발린 말을 하면서 실제로는 국민들을 무시했다. 새로 선출된 대통령은 겉으로는 개혁을 부르짖으면서 뒤로는 조악한 술수들로 자신들의 배 불리기에만 열중했다. 선량한 국민들의 주권과 세금은 타락한 그들에 의해 기만됐다. 지금까지 드러난 추악한 진실들만으로도 우리 정치가 주권자인 국민을 배반해왔다는 것은 명확하다. 

때문에 트럼프의 승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승리는 가벼운 `이변'이 아니다. 기성 정치를 탈피하기 원하는 대중의 선택이었다. 대중의 선택에 그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가는 이제 그가 선택해야 한다. 아직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지 않았지만 당선 후 지금까지 그의 행보는 기성 정치에 반기를 든 파격 그 자체여서 전 세계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다. 특히 친인척의 정치참여를 금기시한 미국에서 그가 딸과 사위를 정치에 깊숙이 개입시키고 있어 과거 대통령 친인척 비리에 진절머리가 난 우리나라 국민은 앞으로 그의 행보에 관심이 없을 수 없다. 

정부수립 후 지금까지 70여 년 동안의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은 암울했다. 역대 대통령 모두가 임기 말년을 비참하게 끝냈고,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고 갈 차기 대통령 또한 개혁하지 않으면 4년 후 똑같은 길을 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아직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희망이 곳곳에 남아 있고 그 기회가 곧 다가올 대선이다. 촛불을 든 국민의 힘을 믿고, 정치인 또한 이번 게이트를 계기로 자성의 길을 갈 거라 믿기에 우리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재건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나는 대학생 시절 사무엘 베게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책과 연극까지 보았지만 작가가 말한 `고도'를 끝내 알아내지 못했고 지금도 `고도'를 기다리며 살고 있다. 그것은 아마 희망일 것이다. 또 현재 우리 국민들의 `고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변화와 개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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