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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의학과 따뜻한 공감 사이의 `외줄타기'
냉정한 의학과 따뜻한 공감 사이의 `외줄타기'
  • 의사신문
  • 승인 2017.01.0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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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의학문인회 독후감 공모전 수상작 〈4〉 : 우수상 - 헨리 마시의 `참 괜찮은 죽음(Do No Harm)'을 읽고

삶과 죽음이 경계하는 치열한 일상 속 외과의사의 고독한 싸움
의사의 사명과 가족·인생·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할 기회 제공

변세진 세브란스병원 류마티스내과

책의 첫 페이지를 열고 서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처음 만나는 구절은 “첫째, 해치지 마라…”는, 바로 이 책의 부제이자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요약으로, 이 한 문장이야말로 평생을 존경받는 의사로서 살아온 저자의 삶의 가치관을 축약한 문장이다. 단지 권위있고 존경받는 베테랑 의사로서의 독특했던 경험 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메스를 다루며 환자들의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버티어내고 있는 외과 의사로서의 고민을 한 보따리 내어놓는가 하면, 사랑하는 어머니를 결국 보내드리고 마는 다정한 아들의 역할까지. 세련된 문장을 통해 한 권의 책에서 모두 담아내는 저자의 실력은 명성높은 문필가라는 그의 독특한 이력을 쉽게 수긍하게 만든다.

매년 3월, 의사로서의 시작점에 서는 의대생들은 모두 좋은 의사가 되고자 하는 욕심과 기대로 첫발을 내딛고, 열심히 공부해서 환자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고자 하는 욕심을 가져보지만, 많은 이들은 스스로의  능력 부족에, 질병 그 자체의 무거움에, 때로는 손발이 잘 맞지 않는 동료들과 감히 손을 내밀기도 두려운 선배 의사,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만 같은 환자, 보호자들로 인해 열정이 서서히 마모되고 마는 좌절스런 성장을 하게 된다. 평범하고 싶지 않았던 젊은 우리들은 결국 그렇게 `존경'이란 단어를 더 이상 좇지 않고 더 이상은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이쯤이면 됐다' 싶은 곳에 단단하게 벽을 둘러버리고 만다.

어느 외과의사의 말처럼, 자기 안에 이따금씩 찾아가 기도할 쓰라린 회한의 장소로서 작은 공동묘지를 지니고 다닌다는 저자는 소작기와 흡인기, 메스로 뇌병변을 치료하는 신경외과 의사이다. 저자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드문 케이스의 환자들을 번뜩이는 판단력과 빈틈없는 수술로서 완치시켰다는 연승의 기록이 아니다, 오히려, 특별한 사고 없이 잘 끝났다고 생각되었던 수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알 수도 없는 이유로 후유 장애를 남겨버린 불행했던 경험들 또한 꾸밈없이 드러냈다는 점에 이 책의 매력이 있다.

인간의 앎은 불완전하므로 질병에 대해서도 불완전하게 이해할 수밖에 없고, 치료에 대한 접근 또한 불완전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겸손하고 솔직한 고백을 저자는 담담히 밝히고 있다. 그 뿐 아니라, 경험많고 존경받는 의사가 되었지만, 때로는 레지던트의 서툰 프리젠테이션에 짓궂은 농담을 하기도 하고, 환자와 질병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후배 의사에게 벌컥 화를 내고 또 위로해주는 모습은 인간적이고 내가 수련 과정에서 만났던 경험 많으신 교수님들을 닮아 있다. 그런 반면에 또 다른 에피소드도 있다. 수련의의 근무 환경에 대한 이견으로 길어진 병원측과의 회의, 그와 동시에 수련의 단독으로 이루어진 수술, 신경근이 절단되고 엉망이 된 상황. 교수님은 화를 버럭같이 내고 있다. 이 또한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장면이다.

저자는 우리의 희망대로 “경험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난 더 이상 아무도 가르치고 싶지 않아, 수련제도 따위 엿이나 먹으라고!”라고 거침없이 불만을 가감없이 토해내는 모습에는 역설적으로 유머러스함에 더해서 친근감마저 느껴진다. 

책의 제목인 [참 괜찮은 죽음]은 전이된 유방암으로 생을 마감한 저자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챕터이다. 유머감각을 간직한 채로 사랑하는 사람에 둘러싸여 `서서히 닳아 없어지면서' 죽어가는 어머니를 돌보는 다정한 아들에게는 권위도 딱딱함도 찾아볼 수 없다. 저자의 어머니는 “멋진 삶이었어. 우리는 할 일을 다했어”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과 이별하고, 어머니를 특히 닮은 아들은 임종의 그 순간에 바로 우리 자신이 되어서 가족의 소중함과 인생의 가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저자는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왔고, 삶을 지켜주었고, 그로 인해 이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지만, 치료자로서의 교만함은 단호히 경계하고 있다. 그 대신 삶이란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으로서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소박한 깨달음을 세련되고 몰입감있게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외과의로서의 저자는 매 순간 환자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고통스러울 만큼 무겁고 고독한 싸움을 해야 하지만, 장기 생존의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만나면 무리한 수술 따위는 하지 않는다. 나쁜 일은 벌어지기 마련이고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불필요한 위로는 하지 않는다. 구원자가 아닌 조력자로서 그저 환자와 그의 가족을 위해 침묵해주고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그는 종양을 절제하고 뇌출혈을 치료하는 첨단의 기술을 가진 외과의로서만이 아니라,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는 상담자, 신경세포에서 의식의 조각을 찾아보려는 엉뚱한 상상의 소유자, 환자의 보호자, 환자 본인 등 다양하게 변하는 시선 속에서도 따뜻하고 세밀한 관찰을 놓치지 않는 섬세함을 가졌다. 죽음을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치열한 현장 속에서 담담하게 써내려간 일기장과도 같은 이 책은, 의사는 죽음을 삶으로 돌리는 권능은 갖지 못했지만, 삶이 죽음으로 가지 않도록, 가야만 한다면 보다 인간적인 삶의 마감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생생하게 일깨워주었다. 

【요약】 `참 괜찮은 죽음'(헨리 마시 저, 김미선 옮김)

저자 헨리 마시는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신경외과 의사이자 섬세한 문필가로 알려져 있다.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본 삶과 죽음, 그에 대한 깨달음을 써내려간 데뷔작 `참 괜찮은 죽음'으로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여럿 수상하며 화려하게 이름을 알렸다. 

그는 국내외 방송상을 수상한 `Your Life in Their Hands'와 `The English Surgeon'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환자의 최선만을 생각하기에 의미 없다고 판단한 치료를 과감히 포기한 적도 있다. 그러나 환자의 실낱같은 희망을 위해서라면 가망이 없어 보이는 수술도 감행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는,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신념으로 30년 가까이 냉정한 의학 지식과 따뜻한 공감 사이에서 고독한 외줄타기를 해왔다.

옥스퍼드에서 정치와 철학, 경제를 공부한 그는 이과 공부를 해본 적도 없었지만, 굳은 의지 하나로 뒤늦게 의대에 입학하여 의사의 길을 밟게 됐다. 1987년부터 런던의 앳킨슨 몰리 병원에서 일하고 있으며 신경외과 분야에서 첫손에 꼽히는 명의로 이름이 높다.

`참 괜찮은 죽음'은 삶과 죽음에 대한 색다른 고백을 담고 있다. 
1인칭 시점으로 쓰인 이 책은 `죽음'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매우 다정하고 친절한 접근방식을 취한다. 그리하여 스스로 `내가 죽는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면?'이라는 상상을 차분히 하게 된다. 〈더퀘스트 간/376쪽/값 1만6000원〉

【미니 서평】 `참 괜찮은 죽음'

참 괜찮은 죽음은 영국 신경외과 의사인 헨리 마시의 저서로, 삶과 죽음에 대한 색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독자가 읽기에 부담이 없도록 편안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모든 외과 의사의 마음 한구석엔 공동묘지가 있다 - 송과체종 △수술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 동맥류 △의사에게 당당하게 질문한 적 있습니까 - 혈관모세포종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 멜로드라마 등으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누구나 한 번은 맞이하고 의사로서 수도 없이 보았을 내용들이어서 한번쯤은 꼭 일어보아야 할 도서로 추천하고 싶다.

〈의학문인회 김석연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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