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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의료분쟁조정법이 갖는 의미…개정부터 시행까지
〔총론〕 의료분쟁조정법이 갖는 의미…개정부터 시행까지
  • 이지선 기자
  • 승인 2017.01.02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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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거부해도 분쟁중재원 조정절차 `개시'

중환자 기피·소진 진료 위축 우려 불구 지난해 11월 시행
분쟁 건수 2배 증가로 불필요한 소송 등 대책마련 필요

지난해 5월 개정·공포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 11월 30일부터 시행됐다. 

의사들은 사망이나 일부 중상해에 한해 피신청인의 동의 없이도 조정 절차를 자동 개시하게 되면, 중환자 기피현상 등 진료 위축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우려하며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법 시행으로 의료계가 뒤숭숭하다. 개정부터 시행까지 법안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법안 개정 배경에는 예강이와 신해철의 죽음이 있었다. 지난 2014년 1월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은 전예강(당시 9세)의 사망 사건이 개정안 발의의 계기가 됐고, 그해 10월 유명 가수 신해철이 송파구의 한 병원에서 장협착증 수술을 받은 뒤 세상을 떠나면서 국민의 관심이 모아졌다.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이 대표발의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은 일명 `예강이법', `신해철법'으로 불리며 지난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 과정에서 의료인의 소극적 의료행위에 대한 목소리도 있었으나, 조정개시 대상범위를 사망과 일부 중상해로 축소된 절충안으로 의견이 수렴됐다.

이로써 기존에는 피신청인이 동의해야만 조정 절차가 개시됐다면, 이제는 사망이나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장애인복지법 제2조에 따른 장애등급 1급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 피신청인인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이 조정 참여를 거부해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절차가 개시된다. 

의료계는 해당 개정안에 대해 우려 섞인 반발을 드러냈다. 의료인의 소신진료를 위축시키고 건전한 진료환경을 저해하며 이는 곧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게 된다는 것. 결국 당초 의도와는 달리 국민의 피해를 가중시킬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심지어는 `의료분쟁 조장법', `중환자 기피법'으로 명명돼 해당 법안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의료행위는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부터 시작된다. 꾸준히 사랑받는 메디컬 드라마만 보더라도 큰 사고를 당해 당장이라도 사망할 것만 같은 환자를 외과의사가 긴급 수술을 통해 살려내며, 이는 사망확률이 높을지언정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선한 동기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제는 의사의 치료가 더 필요한, 상태가 위중하거나 사망에 가까워지는 환자일수록 의사들이 선뜻 나서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됐다.

법 개정 직후 어느 외과의사는 SNS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1년에 약 5∼10명의 사망환자가 나온다는 외상외과 세부전문의인 그는 “법에 따라 사망환자가 강제 의료분쟁조정 신청을 한다면, 1년 내내 자료 준비하고 진료보다는 절차에 얽매여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며 “응급실에 깔려 있는 외상환자들 누군가 조금만 도와주면 살 수도 있는 죽음들을 막아보자는 의도에서 시작했다. 지금도 (전문가가) 얼마 없지만 앞으로 누가 이 방면에 나서겠나”며 토로하기도 했다. 또 그는 “중환자를 맞이하는 의사들이 초진 후 상급기관으로 환자들을 토스(toss)하는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전망했다. 

국회 또한 법 통과 이후 뒤늦게 방어진료 등 부작용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이슈페이퍼를 통해 “분쟁절차에 휘말릴 것을 우려한 의료인이 방어적, 소극적으로 진료에 임하거나 응급환자 등 고위험군 환자를 기피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면서 “이는 입법과정에서 법의 흠결보다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절차적 노력이 기대만큼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외과, 흉부외과 등 생명과 직결된 외과계열의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안 그래도 전공의 지원율이 저조한 외과계열이 암초를 만난 셈이다. 정부 지원책으로 인기를 되찾았던 응급의학과를 비롯해 당장 외과계열의 지원율 추락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학문적인 발전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의료 최전선에 있는 전공의들은 자신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현명한 고려대학교 내과 전공의는 최근 대한전공의협의회 기고를 통해 “가장 큰 직격탄을 받을 의사로 내과·외과·신경과·신경외과·산부인과·소아과·응급의학과 등 소위 중환자를 보는 3차 병원 이상에 근무 중인 전공의”라며 “가장 만만한 전공의가 그 첫 번째 타깃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나아가 그는 “한 전공의 당 2∼3개의 소송에 휘말려 조정 위원회와 법원을 수시로 들락거리게 되는 것이 곧 있을 우리네 풍경일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반면 법조계 일각에서는 법에 대해 오해가 크다는 주장도 있다. 법 개정 내용이 강제조정절차의 개시에 관한 것뿐이며, 조정결정을 강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조정결정이 나오더라도 의료기관이든 환자 측이든 15일 내에 이의를 제기하면 조정결정은 아무런 법적인 효력이 없다는 게 그 해석이다.

그럼에도 법률 개정으로 의료분쟁 조정건수가 지금보다 2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관측이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과거 3년간 사망 및 장애로 인한 상담신청인 평균 수치가 957명이라는 근거에 따라 최소 900건 이상의 사업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머지않아 의료계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날지도 모른다. 일선 개원가나 중소병원에서 조금이라도 문제될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들을 3차 병원으로 전원의뢰 하는 것은 물론, 강제 개시로 조정건수가 폭발적으로 늘 것이며 어쩌면 생명과 관련된 진료과의 의사들이나 전공의들이 여러 개의 소송에 휘말려 연구와 진료에 매진하기 보다는 조정위원회와 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의료분쟁 조정법은 의료사고의 피해자 구제와 함께 안정적인 진료환경 구축을 위해 제정됐다. 법안의 활용도를 높이고 의료 현장에서의 왜곡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의료계의 우려 목소리 역시 귀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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